“나도 혹시 ‘당뇨 권태기’?”…10년 지나니 관리 귀찮고, 대충 살고 싶어

김영섭 2026. 4. 16.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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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후 10~15년이면…눈(당뇨병성망막병증)·콩팥(신부전)·발(당뇨발) 등 ‘위험 구간’/죽음보다 더 무서운 장애의 시간 막는 데 힘써야
여성 당뇨병 환자가 혈당을 측정한 뒤 피곤한 표정을 짓고 있다. 당뇨병 진단 8~12년 후 식단과 운동에 대한 피로가 심해지고, 복용하는 약물 종류가 늘거나 합병증의 초기 신호가 나타나면서 심리적 부담이 부쩍 늘어난다. 하지만 포기해선 안 된다. 진단 후 10~15년은 당뇨병성망막병증, 신부전, 족부괴사(당뇨발) 등 합병증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는 때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결혼 생활이나 부부 관계에만 권태기(Seven-year Itch)가 있는 게 아니다. 당뇨병을 앓는 사람에게도 '당뇨 권태기(당뇨 번아웃, Diabetes Burnout)'가 있다. 당뇨병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은 지 10년이 지나 권태기를 맞는 사람이 꽤 많다.

제1형당뇨병 환자들의 권익 보호에 앞장서는 비영리단체 티원인터내셔널(T1International)은 전 세계 당뇨병 환자 약 1500명을 대상으로 삶의 질 등에 관한 조사(2020년)를 벌였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97%가 평생 동안 최소 한 번 이상 당뇨 권태기(당뇨 번아웃)를 겪은 적이 있다고 답변했다.

특히 10년 이상 당뇨병을 앓은 사람의 55% 이상은 "거의 매일 또는 매우 자주 관리를 포기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고 밝혔다. 이는 당뇨 관리가 뇌에 과부하를 주는 인지적 노동이라는 일부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한때 '모범 환자'로 불리던 이들에게도 '당뇨 권태기'가 불쑥 찾아온다. 진단 후 초에는 의사의 칭찬에 힘입어 식단을 조절하고 계단을 오르내리며 혈당을 잡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제 할 만큼 했다"는 식의 무력감과 함께 당뇨 관리를 내팽개치고 싶은 유혹에 빠지고 싶어한다.

"나도 이제 당뇨 권태기?"…10년 지났더니 만사 귀찮고, 대충 살고 싶은 심정

전문가들에 의하면 당뇨병의 유병 기간이 길어질수록 당뇨 권태기(당뇨 번아웃)의 위험은 높아진다. 대부분의 당뇨병 환자들은 매일 삼시 세끼 식단을 따지고, 식후 운동을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한다.

당뇨병 환자들의 '10년 고비'는 임상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진단 후 8~12년에 접어들면 식단과 운동에 대한 피로가 매우 심하고, 복용하는 약물 종류가 크게 늘고, 합병증의 초기 신호가 나타나면서 심리적 부담이 부쩍 커진다.

이 시기의 환자들은 "적당히 맛있는 것도 먹고, 술도 좀 마시며 즐겁게 살다 좀 일찍 가는 게 더 낫지 않겠나"라는 식의 '방임형 사고'에 빠지기 쉽다. 심리학계에서는 이를 단순히 의지의 문제로 보지 않고, 질병 관리에 따른 스트레스가 임계점을 넘어서 뇌와 마음이 보내는 일종의 항복 신호로 분석한다. 특히 10년 동안 별다른 합병증이 없었다면 "나는 조금 관리 안 해도 괜찮은 체질"이라는 식의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길 수 있다. 이 때문에 약을 제때 잘 먹지 않거나 혈당 측정을 중단하는 행동을 하게 된다.

'즐겁게 살다 가기'의 함정…죽음보다 무서운 장애의 시간 맞을 수도

문제는 마음이 풀어지는 진단 10년 이후가, 합병증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는 때라는 점이다. 당뇨병성 망막병증, 신부전, 족부괴사 등 미세혈관 합병증은 대개 진단 후 10~15년에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

일부 당뇨병 환자는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빨리 가겠다"고 얼핏 호기롭게 말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혈당 관리를 포기한 대가는 그냥 일찍 죽는 게 아니다. 시력을 잃거나 이틀에 한 번 투석을 하거나 오랜 기간에 걸쳐 병상에 누워 지내는 등의 큰 고통이다. 환자 멋대로 즐거운 여생을 꿈꾸면서 혈당 관리를 소홀히 하면, 가장 고통스럽고 긴 유병 기간을 맞을 수 있다.

당뇨 관리의 비결, '완벽'보다는 '지속'이 매우 중요

전문가들은 당뇨 권태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의지박약'이라고 자책하기보다 누구나 겪는 과정임을 인정하는 자세가 오히려 필요하다고 말한다. 당뇨 관리를 아예 포기하기보다 관리의 강도를 잠시 완화하더라도 '지속성'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예컨대 철저한 저탄수화물 식단이 힘들다면 '채소→ 단백질→ 탄수화물' 순으로 먹는 '거꾸로 식사법'만이라도 지키면서 식단을 다소 유연하게 바꿀 수 있다. 또한 근육을 저축한다는 마음가짐으로 계단 오르기, 스쿼트 등 근력 운동을 계속하고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는 노년'이라는 구체적인 목표를 세울 필요가 있다.

한국의 30세 이상 당뇨병 환자는 약 533만~600만 명으로 추산된다. 당뇨병 유병률은 15%다. 진단 10년 차 이상 당뇨병 환자는 10년 뒤에도 내 발로 걸을 수 있게 건강을 지켜내야 한다.

[자주 묻는 질문]

Q1. 당뇨 권태기가 온 것을 어떻게 자가 진단할 수 있나요?

A1. 혈당 수치를 확인하는 것이 두려워지거나 귀찮아지고, 당뇨 관련 진료 예약을 자꾸 미루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또한 "어차피 관리해도 소용없다"는 무력감이 2주 이상 지속된다면 권태기를 의심해 봐야 합니다.

Q2. 술을 도저히 끊기 힘들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A2. 무조건 참다가 폭주하는 것보다는 주치의와 상의해 '허용 범위'를 정하는 것이 낫습니다. 당질이 적은 증류주를 선택하고, 안주로는 채소나 단백질 위주를 섭취하며 식후 혈당 변화를 면밀히 관찰하는 '타협적 관리'라도 이어가야 합니다.

Q3. 10년 동안 큰 문제없이 적당히 먹고 마셨는데, 이제 와서 엄격하게 관리해야 할 이유가 있나요?

A3. 당뇨 합병증은 '침묵의 살인자'라 불릴 만큼 초기 10년 전후까지는 아무런 전조 증상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혈당 수치가 높으면 혈관은 마치 설탕물에 절여진 것처럼 서서히 망가집니다. 10년 차는 그동안 누적된 혈관 손상이 임계점에 도달해 망막, 콩팥, 신경 등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문제가 터져 나오기 직전의 '폭풍전야'와 같습니다. 지금 관리를 놓는 것은 9회 말 투아웃 상황에서 경기를 포기하는 것과 같으며, 남은 노년의 20~30년을 병상에서 보낼 것인지 내 발로 걸어 다닐 것인지를 결정하는 마지막 갈림길입니다.

김영섭 기자 (edwdkim@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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