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10일 개막한 극단 마방진의 '홍도' 울음과 갸웃 사이, ‘홍도’가 멈춰 선 자리 공연은 26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희생과 순정, 그리고 한(恨)이라는 한국적 정서를 전면에 내세운 연극 ‘홍도’는 신파의 원조다.
주인공 ‘홍도’는 오빠의 학업을 위해 스스로 기생의 길을 택하고, 명문가 자제 광호와 운명적으로 사랑에 빠지지만 그 운명에 의해 파국을 맞는다.
연극 ‘홍도’는 극단 마방진 창단 20주년을 기념해 10여년만에 다시 무대에 올랐다. 배우 예지원, 박하선, 최하윤이 번갈아 홍도로 변신하며 극을 이끌고 있다. 1930년대 신파극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불운한 여인의 희생과 사랑, 그리고 전형적인 비극을 그린다.
막장 드라마같은 서사와 달리 무대는 극도의 절제미를 뽐낸다. 새하얀 공간 위에 ‘사람 인(人)’ 자를 형상화한 구조물 하나로 지붕을 대신하고 여백을 통해 정서를 환기하려는 의도다. ‘사람이란 무엇인가’를 곱씹게 만드는 장치다. 여기에 디자이너 차이킴의 한복 의상이 더해지며 색채감 있는 한국적 미장센을 완성한다.
다만 공연은 형식과 리듬 사이에서 다소 엇박자를 드러낸다. 고선웅 연출의 장기인 속사포처럼 이어지는 대사는 마방진이라는 극단의 고유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비극 속에서 잔재미를 추구하는 일이 너무 잦아 서사 안에 쌓이는 골계미로 작용하기엔 그 힘이 약했다.
인물의 구성 역시 오늘의 시선에서는 다소 단선적으로 읽힐 수 있다. 흥부와 놀부만큼이나 평면적인 캐릭터는 서사를 보다 직선적으로 이끌지만 그만큼 예측 가능성도 커진다. 더 나아가 여성 인물에게 가해지는 모욕적인 언사나, 기생이라는 존재를 줄곧 천하다며 욕설을 섞어 비난하는 방식은 지금의 관객에게는 불편하게 다가오는 지점이다. 지난 10년간 한국 사회에는 미투 운동이 있었고 이후에도 사회적 이슈로 인해 사용하는 언어도 많이 달라졌다. 홍도라는 인물이 살았던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더라도 원색적 표현이 비판적 거리가 없이 반복될 때엔 당위성이 사라진다.
물론 무대를 지탱하는 힘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홍도뿐 아니라 정보석, 이도유재 등 베테랑 배우들의 안정적인 연기와 의상과 미장센은 독보적이다. 특히 마지막씬, 붉은 꽃길 장면은 홍도란 이름이 가진 의미(붉은 길)은 작품이 지닌 정서적 핵심을 응축해 보여준다.
관객들의 반응은 양분됐다. 머리 희끗한 관객들이 눈시울을 붉히는 한편 그런 시대와 대접을 받아볼리 없었을 관객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는 모습이 대비던 것. 그러나 간극 자체를 공연의 실패로 규정하기엔 ‘홍도’는 많은 질문과 여운을 남긴다. 붉은 꽃길 위를 쓸쓸히 걸어 퇴장하는 홍도를 통해 한국적 신파와 비극의 정서가 동시대의 감성에도 유효한지 되묻게 된다.
2026년 봄에 만난 ‘홍도’는 이에 한 가지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무대 연출만큼이나 수많은 여백을 남기며 관객 스스로 작품을 다각적으로 들여다보게 만든다. 공연은 26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이어진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