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권 강화가 곧 수익률 제고 아닌데”… 국민연금의 딜레마
일부선 “장기 수익률과 충돌 가능성” 우려
올해 정기 주주총회 시즌이 막을 내린 가운데,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전보다 한층 적극적으로 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국민연금은 주주대표소송 제도를 집행 가능 체제로 정비하면서 앞으로도 투자사에 대한 영향력 행사를 더욱 강화할 방침이다.
하지만 주주 권익을 앞세운 국민연금의 이 같은 행보가 “연금 급여를 통해 국민 생활 안정과 복지 증진에 이바지한다”는 설립 목적과는 점차 괴리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적극적 의결권 행사의 본래 목적은 장기적인 주가 부양을 통해 운용 수익률을 제고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지나치게 주주 권익 보호라는 명분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언뜻 수익률 개선과 주주 권익 보호는 동의어로 보이지만, 주주 권익 보호가 언제나 주가 상승으로 이어지진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주주환원이 단기적으로 주가를 끌어올릴 순 있지만, 기업의 투자 여력이나 경영 안정성을 훼손할 경우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기업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16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올해 정기 주총 시즌, 284개 기업 주총에 참여해 382건의 안건에 반대 의결권을 행사했다. 국민연금의 반대 의결권 행사는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국민연금이 반대 의결권을 많이 행사한 안건은 통상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던져왔던 ‘이사 보수한도액 승인’, ‘사내사외이사 등 선임’뿐 아니라 ‘정관 변경’, ‘자사주 보유·처분 계획 승인’도 다수 포함됐다. 이는 최근 강화된 상법 개정 취지를 한층 엄격하게 적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지난해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의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한 2차 상법 개정이 이뤄졌고, 올해 국회를 통과한 3차 상법 개정안에 따라 상장사의 자사주 소각이 의무화(신규 취득 자사주는 1년 내, 기존 보유 자사주는 1년 6개월 내 소각)됐다.
국민연금은 이러한 법 개정 흐름에 발맞춰 기업들이 경영권 방어나 보상 등을 이유로 자사주를 유지하려는 관행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수탁자책임실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이사의 임기를 일괄 변경하지 않고 3년 이내 등으로 변경하는 경우 ‘시차 임기제’로 활용될 여지가 많아 반대했다”라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이번 주총에 이사의 임기를 유연화하는 내용의 정관 변경 안건을 올렸는데, 국민연금은 이에 반대했다.
또 국민연금은 SK하이닉스와 현대차, 이마트, 미래에셋증권 등 다수 상장사 주총에서 ‘자기 주식 보유·처분 계획 승인’ 안건에 반대 의결권을 행사했다. 국민연금은 “상법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최대 주주 지분만으로 매년 자기주식 보유·처분 계획을 가결할 수 있는 정관 변경에 모두 반대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국민연금의 입장이 주주 권익 보호에는 부합하지만, 장기적인 주가 상승에는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상장사들의 경영권 방어 수단인 ‘시차임기제’다. 올 8월 집중투표제가 본격 도입되면 소수 주주가 적은 지분만으로도 이사회 진입이 가능해진다. 소수 주주의 목소리가 커지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경영권이 취약해질 우려가 그만큼 커지는 셈이다. 이 과정에서 시차임기제마저 무력화될 경우, 적대적 M&A 세력 등에 노출되어 기업 가치의 영속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국민연금이 일제히 반대한 자사주 안건도 마찬가지다. 자사주 소각이 당장 주가에는 긍정적이지만, 기업이 필요한 자금 마련 용도로 자사주를 활용하는 경우 역시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이다.

국민연금의 이 같은 딜레마는 개별 기업 사례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예를 들어 국민연금은 NH투자증권이 주주 외 특정한 자에게 신주를 배정할 수 있는 한도를 기존 발행주식 총수의 30%에서 50%로 확대하기 위해 상정한 정관 변경 안건에 반대 의결권을 행사했다. 특정인에게 신주를 몰아줄 경우 기존 주주의 신주인수권이 침해되고 주식 가치가 희석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NH투자증권이 해당 정관 변경을 추진하려는 이유는 신속한 자금 조달을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자본력이 곧 투자 수익으로 연결되는 환경에서 신속하게 외부 자금을 유치할 경우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다.
한 상장사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행사하는 최종 목표는 ‘주주권 강화’ 그 자체가 아니라 장기 주가 상승률을 끌어올리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 관계자는 “자사주를 소각하고 배당을 확대하며 일반 주주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은 모두 기업 가치를 높이는 일이지만, 이런 가치가 다른 경영적 필요와 충돌할 경우 협의가 필요하다”며 “기계적으로 한 기준만으로 경영 결정을 판단하면 오히려 장기 투자게 불리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광주·전남 반도체 공장’ 與의원 질문에 최태원 “전기가 보틀넥… 고민해보겠다”
- ‘스마트폰 D램’도 빨아들이는 AI… HBM 이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 효자 상품 ‘소캠2’
- “시험기간 날벼락”… 한예종 ‘전남광주 이전’ 법안에 술렁
- [동네톡톡] 출퇴근 지옥 대전의 승부수… 230명 태우는 ‘3굴절 버스’ 달린다
- “中 부호들은 벤츠 대신 자국 고급차를 탄다”… 지커 상하이 플래그십 스토어 가보니
- 엘베·주차장 공사마저 ‘2/3 주민동의’에 막힌 구축 아파트
- ‘1주에 390만원’ 초우량 황제주 등장…500만원 전망까지 나온 효성중공업
- 늦어지는 마일리지 통합 승인에… 아시아나항공, 태권V까지 내며 소진 박차
- [르포] 여의도 1.5배·세계 첫 3복층 팹… 용인 ‘600조 반도체 도시’ 가보니
- ‘전쟁 여파’ VLCC 발주 21배 폭증… 한화오션도 10척 반사이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