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만 앞세우고 산업은 빠졌다”… 탄소법 공론화 ‘편향’ 논란

이영빈 기자 2026. 4. 16.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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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국회에서 열린 기후위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창훈 공론화 위원장이 기후위기 대응 방안에 대한 공론화 결과를 보고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가 16일 탄소중립기본법 개정안을 소위원회에 상정한 가운데, 개정안의 근거가 된 공론화 절차를 둘러싸고 “특정 결론을 유도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커지고 있다. 공론화 전 과정에서 환경·노동 진영의 영향력이 과도하게 작용했고, 산업계 의견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이번 개정안은 2024년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른 후속 조치다. 당시 헌재는 기존 법이 2030년까지의 감축 목표만 제시하고,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구체적인 감축 경로를 두지 않아 미래세대에 과도한 부담을 전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국회 기후특위는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하고 시민대표단 300명이 참여하는 숙의·토론을 거쳐 감축 경로를 결정하도록 했다.

공론화의 핵심 쟁점은 감축 속도였다. ▲초반에 감축을 집중하는 ‘초반형’ ▲매년 같은 속도로 줄이는 ‘중간형’ ▲후반에 집중하는 ‘후기형’ 세 가지 경로 중 선택하는 방식이다. 공론화위원회는 시민 대표단 설문 결과 ‘초반형’이 77.9%로 압도적 선택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초반형은 선(善), 나머지는 악(惡)?

그렇지만 이 같은 결론이 유도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우선 시민 대표단 300명을 대상으로 한 감축 경로 설문에 가치 판단이 들어간 설명이 붙어 있었다는 논란이다. 설문지 속 ‘초반형’에 대한 설명에는 “유엔 기후과학기구(IPCC)가 지구 온도 1.5도 목표 달성을 위해 권고하는 감축 경로와 유사하다” “감축량에 대한 미래 세대의 부담이 적다”는 식의 긍정적 설명을 붙인 반면, ‘중간형’ ‘후기형’에는 “기후 피해 확대” “미래 세대 부담” “헌재 취지 저촉 가능성” 등 부정적 요소를 상대적으로 더 부각시켰다.

전문가 발표 역시 편향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시민 대표단에게 개정안 취지를 설명하기 위해 발표에 나선 전문가들은 조기 감축 필요성을 강조하며 ‘초반형’을 중심으로 설명했고, ‘후기형’은 정책적으로 선택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설명이 이어졌다. 토론에 참여한 엄지용 카이스트 교수는 본인 소셜미디어에 “비용 효과성 관점에서 경로를 비교·검토한 토론자는 사실상 한 명뿐이었다”고 썼다.

공론화 초기 여론조사 결과도 논란이다. 1만명을 대상으로 한 기초 조사에서는 ‘단계적 감축’이 58.6%로, ‘적극적 감축’(20.0%)보다 훨씬 높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공론화위원회는 이 결과가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이후 논의 과정에는 반영하지 않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의제 설정 과정에서도 균형이 무너졌다는 지적이다. 질문 문항을 설계하는 의제숙의단은 총 15명으로 구성됐지만, 시민사회·노동계와 미래세대 몫 10명에는 환경단체와 노조 인사가 다수 포함된 반면 산업계는 사실상 4명 수준에 그쳤다.

특히 철강·석유화학·시멘트 등 탄소 감축 부담이 큰 업종은 제외됐다. 이 때문에 논의는 전기요금 상승, 생산 차질, 설비 전환 비용 같은 현실적 문제보다 감축 필요성과 목표 수준에 집중됐다는 평가다. 한 의제 설정 과정 참석자는 “구성이 한쪽으로 기울었다는 문제 제기를 했지만 오히려 환경단체가 과소대표 됐다는 반응이 나왔다”며 “다수 의견으로 밀어붙이는 방식으로 의제를 정해선 안 된다는 지적만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후기형’은 위헌?... 전문가들 “해석에 따라 다르다”

일부 공론화 과정 참여자는 설문 문항에 ‘후기형’을 아예 넣지 말자고 주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헌법재판소가 “미래 세대에게 과도한 부담을 전가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한 취지와 배치돼 위헌 소지가 있다는 이유였다.

법조계에서는 이런 해석이 헌재 결정을 과도하게 확장한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헌재가 문제 삼은 것은 장기 감축 경로의 부재이지, 반드시 초기 집중 감축을 하라는 취지는 아니라는 것이다. 조수정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재는 미래 세대 부담을 줄이기 위해 경로를 명확히 하라는 취지였지, 감축 시점을 앞당기라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EU·일본은 중간형”… 산업 경쟁력 우려 확산

산업계는 이번 공론화 결과가 그대로 법제화될 경우 제조업 전반에 부담이 급격히 늘어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초반형’은 단기간에 대규모 감축을 요구하기 때문에 철강, 석유화학 등 에너지 다소비 산업의 비용 부담이 급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제조업계 관계자는 “탄소 중립 목표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속도와 비용으로 달성할 것인지가 문제”라며 “산업계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채 구체적인 감축 수치가 법에 명시될 경우 직격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일본과 유럽연합(EU) 등 주요국은 상대적으로 완만한 ‘중간형’ 경로를 채택하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에너지 안정성, 경제성, 산업 수용성의 균형을 고려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기후특위 소속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은 “이번 공론화는 국민의 자율적 판단을 확인한 절차라기보다 조기 감축 경로를 정당화하기 위한 과정에 가까웠다”며 “이를 곧바로 국민적 합의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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