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냄새’ 나는 스포츠, AI시대 ‘돈냄새’ 난다[줌-인 딜리전시]

박지영 2026. 4. 16.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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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사모펀드, 스포츠산업 투자 활발
유럽 축구·美 풋볼, 금융자본에 개방
AI 물결 속 ‘라이브 콘텐츠’ 가치 부각
OTT 경쟁에 스포츠중계권 몸값 급등
韓시장 협소, 되레 미디어산업은 기회
인공지능(AI)이 콘텐츠산업을 빠르게 바꾸고 있는 시대에 예측 불가능한 경기 결과와 강렬한 현장 경험을 제공하는 스포츠산업이 투자처로 급부상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9월 KBO리그 경기가 펼쳐진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 모습. [연합]

#. 국내 굴지의 사모펀드(PEF) 운용사가 프로야구 구단과 디지털 중계권 사업에 동시 투자하기로 했다. 경기 중계 데이터를 활용한 개인화 영상 서비스와 팬 플랫폼 사업을 묶어 새로운 수익 모델을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이는 머지않은 미래를 가정해본 사례다. 한국에서는 낯설 수 있지만, 글로벌 투자업계에서는 그렇지 않다. 스포츠가 억만장자의 취미나 기업 홍보 수단을 넘어 콘텐츠, 미디어 산업이 결합한 ‘투자 자산’으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불과 몇 년 후에는 한국에서 위와 같은 내용의 기사를 보게 될 수 있다. 글로벌 사모펀드가 스포츠산업에 대거 진입하고 있어서다. 중계권 수익 확대, 라이브 콘텐츠의 희소성을 바탕으로 해당 영역은 사모펀드의 핵심 투자처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이 콘텐츠 산업을 빠르게 바꾸고 있는 시대에 예측 불가능한 경기 결과와 강렬한 현장 경험을 제공하는 스포츠의 가치가 오히려 높아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글로벌 사모펀드, 스포츠에 앞다퉈 투자

글로벌 사모펀드 KKR은 아크토스 파트너스(Arctos Partners)를 우리 돈 약 1조9000억원(14억달러)에 인수했다. 아크토스 파트너스는 2019년 설립된 스포츠투자 전문운용사로, 유럽 축구클럽의 리버풀과 파리 생제르맹, 미국 프로야구 LA다저스, 미국 프로풋볼 LA차저스와 버팔로 빌스, F1 애스턴 마틴 등에 투자한 곳으로 유명하다.

또 다른 글로벌 사모펀드 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는 지난해 9월 ‘아폴로 스포츠 캐피털(ASC)’을 신설했다. ASC는 최근 스페인 라리가(LaLiga)의 프로축구클럽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경영권을 인수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지분 55%를 2조원가량에 사들인 것으로 전해진다. TPG 또한 지난해 5월 스포츠전문 투자플랫폼 ‘TPG 스포츠’를 출범했다.

이런 흐름은 스포츠산업이 사모펀드의 새로운 대체투자 영역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 스포츠구단은 개인자산가나 기업오너가 장기 보유하는 ‘트로피 에셋(자산)’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금융자본이 구단 지분을 사들이는 모습이다.

투자 방식도 다양해졌다. 구단 직접 투자 외에도 리그 상업권, 중계권을 기반으로 한 스포츠 미디어산업 등 다양한 영역에 진출하고 있다. 글로벌 사모펀드 CVC캐피털은 2021년 스페인의 프로축구 리그 라리가에 약 3조원(21억유로)을 투자했다. CVC캐피털은 향후 50년간 라리가에서 발생하는 수익의 8%를 가져갈 수 있게 됐다.

콧대 높은 미국 풋볼도 빗장 풀었다

‘투자 고수’인 사모펀드가 스포츠산업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스포츠산업이 꾸준히 고성장세를 유지하고 있어서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리서치앤마켓에 따르면 글로벌 스포츠시장 규모는 2024년 약 635조원(4778억달러)에서 지난해 약 675조원(5077억달러)으로, 6.3% 성장했다. 향후 5년간 연평균 성장률은 5.8%로, 2029년에는 약 845조원(6354억달러)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사모펀드는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딜로이트의 분석 결과, 2018년 50건에 불과했던 사모펀드의 글로벌 스포츠산업 투자는 2023년 96건, 2024년 190건, 2025년 192건으로 7년 사이 4배 가까이 증가했다. 사실 그동안 스포츠구단은 투자 자산보다 ‘억만장자의 취미’ 또는 ‘지역 상징’ 이미지가 강했다. 개별 스포츠구단이 참여하는 ‘리그’는 스포츠구단 사이의 협회가 운영했기에 공공적인 성격이 짙다. 리그 차원에서 구단 수나 구단의 지분구조를 제한하는 규정을 두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자금난을 겪은 구단과 리그들이 금융자본에 문을 본격적으로 개방했다. 유럽보다 폐쇄적인 운영으로 금융자본 진출이 막혀있던 미국의 5대 리그도 2024년 NFL(미국프로풋볼) 이후 모두 문을 개방했다.

이제 사모펀드들은 NFL 소속 팀의 지분 최대 10%를 매입할 수 있다. NBA(미국프로농구), MLB(미국프로야구), NHL(미국프로하키), MLS(미국프로축구)는 최대 지분 30% 보유가 가능하다.

투자 회수 사례도 있다. 이탈리아의 명문구단 AC밀란이 대표적이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는 1986년 AC밀란을 인수해 구단주가 됐다. 그는 2017년 약 9000억원에 중국의 바이두-헝다그룹 컨소시엄에 구단을 매각했다. 바이두-헝다 컨소시엄은 인수 대금의 절반가량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로부터 차입했으나 원리금 상환에 실패해 1년 만에 구단 소유권을 넘겼다.

엘리엇매니지먼트는 대대적인 자본 확충과 비용 절감을 통해 AC밀란의 성적을 끌어올렸다. AC밀란은 2021-22 시즌 세리에 A 우승이라는 성과를 거뒀고, 2022년 스포츠투자 전문운용사 레드버드 캐피털 파트너스에 약 1조6000억원(12억유로)에 팔렸다. 5년 만에 몸값이 2배 가까이 뛴 것이다.

AI시대 ‘경험자본’ 눈길…중계권 수익 급상승

최근에는 AI가 투자 매력도를 높이고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AI가 일상에 침투할수록 역설적으로 ‘인간의 스포츠’가 갖는 콘텐츠로서 가치가 높아진다는 분석이다.

이언 찰스 아크토스 파트너스 창업자는 AI가 생성한 콘텐츠의 범람을 배경으로 꼽았다. 그는 2월 CNBC와 인터뷰에서 “AI의 부상은 스포츠팀과 중계권의 가치를 더욱 높이고 투자자들은 스포츠를 더 매력적인 ‘자산’으로 느끼게 될 것”이라며 “AI 생성 콘텐츠가 흔해질수록 라이브 스포츠는 더 많은 주목을 받는다. 팬들이 현장 경험과 경기 관람에 더 많은 비용을 낼 의향이 있기에 높은 수익률을 창출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세계 최대 스포츠마케팅기업 IMG의 아담 켈리 대표 또한 2월 파이낸셜타임즈와 인터뷰에서 “AI는 다양한 미디어 분야에서 실제에 근접한 수준에 도달하겠지만 스포츠는 모방할 수 없다”며 “AI는 이미 체스에서 인간보다 뛰어나지만 2대의 컴퓨터가 대결하는 모습을 보는 사람은 없다. AI의 한계”라고 했다.

실제 스포츠 중계권의 가치는 폭증하고 있다.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킬러 콘텐츠’ 확보전이 심화하면서 스포츠 중계권 시장이 전통 방송 중심에서 OTT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드라마, 예능 등은 흥행 여부가 불확실하지만 스포츠 경기는 안정적인 시청층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한 PEF 관계자는 “OTT 경쟁 심화로 중계권이 주목을 받았는데 AI로 더욱 가치가 높아질 것”이라며 “AI를 활용해 스포츠 콘텐츠를 개인화하는 것도 떠오르는 전략”이라고 했다.

아마존은 자사 OTT 아마존프라임을 통해 목요일 NFL 경기를 독점 중계하고자 연간 1조3000억원(10억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애플은 2026년부터 5년간 F1(포뮬러원) 경기를 자사 OTT 애플TV에서 독점 중계하기 위해 연간 2000억원(1억4000만달러)을 지불한다. 기존 ESPN이 독점 중계를 위해 연간 1200억원을 투입했던 것과 비교하면 2배 가까이 값이 뛴 것이다.

스포츠 콘텐츠는 이용자 ‘록인(lock-in)’ 효과뿐 아니라 광고 수익 증가로도 이어지고 있다. 아마존 프라임은 2025년 목요일 NFL 경기 중계에서 광고를 집행한 브랜드들의 구매율이 기존 미디어 대비 27% 높았다고 밝혔다.

한국 시장은 ‘시기상조’…해외 펀드와는 자금줄 달라

한국은 어떨까. PEF업계에선 국내 스포츠산업의 투자매력에 대해 비교적 신중한 평가가 많다. 시장 규모가 작아 구단이나 리그 투자 위험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몇 년 전 해외 스포츠구단 지분투자를 검토한 적이 있다는 한 PEF 관계자는 “가장 큰 문제는 엑시트 가능성이다. 선수 영입에 돈이 많이 드는데 기대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큰 손실”이라며 “스포츠시장 규모가 작은 한국에서는 사모펀드가 적극적으로 진출할 유인이 크지 않다”고 평가했다.

스포츠 리그 투자도 쉽지 않다. 한국에서 사실상 유일한 대형 리그라 할 수 있는 KBO리그의 지난해 입장료 수익은 약 2046억원 수준이다. 대형 PEF 관계자는 “규모가 큰 국내 스포츠는 프로야구 정도인데 투자금 회수가 쉽지 않다. 티켓값을 올리면 저항이 클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국내 PEF의 투자구조도 영향을 준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내 PEF 자금 상당 부분이 연기금이나 공제회 등 공적 성격 기관에서 나온다. 이런 자금을 변동성이 큰 영역에 투자하기는 쉽지 않다”며 “해외 스포츠투자 전문사들의 자금은 중동계 국부펀드 등에서 온다. 국가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려는 의도도 있어 한국과는 상황이 다르다”고 했다.

다만 스포츠중계권 가치가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는 점은 변수다. OTT 플랫폼 경쟁이 심화하면서 스포츠 콘텐츠의 희소성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투자업계에서는 구단 지분투자보다는 중계권, 스포츠 데이터, 팬 플랫폼 등 스포츠 미디어산업을 중심으로 투자 기회가 먼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로 CJ ENM의 OTT 티빙은 KBO리그 유·무선 독점 중계권을 확보하면서 연간 약 450억원을 지급해왔지만 최근 계약을 2031년까지 연장하며 연간 약 900억원 수준으로 중계권료를 두 배가량 높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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