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자랑 게시글 올리지 않기.”
고물가 시대, 온라인 커뮤니티에 등장한 이 한 줄 규칙은 요즘 소비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준다. 생활비 부담이 커지면서 ‘거지방’, ‘절약방’처럼 돈을 아끼기 위한 모임이 다시 빠르게 늘고 있다. 특히 지역 기반 플랫폼 당근을 중심으로 관련 커뮤니티가 크게 늘어나는 모습이다.
16일 한국경제신문이 당근에 의뢰해 분석한 결과, ‘절약·알뜰·가계부’ 키워드가 포함된 신규 모임 수는 3월 말보다 29.4% 늘었다. 같은 기간 신규 가입자 수는 298.4% 급증했다. 최근 ‘거지맵’ 같은 키워드가 퍼지면서 이용자가 빠르게 유입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거지맵’ 누적 이용자는 96만 명으로, 출시 3주 만에 100만 명 돌파를 앞두고 있다.
당근 내 절약 커뮤니티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수십 개 이상 새로 만들어졌다. 일부 모임은 가입자 1만 명을 넘기며 빠르게 커지고 있다. 여성 전용, 지역별, 연령대별 등으로 나뉘며 활동도 활발하다.
출처=당근
이날 기자가 직접 당근에서 ‘거지방’을 검색해보니 '절약 생존자 모집', '가난한 자취생 거지방' 등 관련 모임이 수십 개 확인됐다. 경기도 고양시에서 지난 2월 개설된 한 거지방 카페는 이날 기준 가입자 1만3121명을 기록했다. 최근 30일 동안에만 9610명이 새로 가입했고, ‘방금 전 활동’ 표시가 뜰 정도로 실시간 소통이 이어지고 있다.
이 방 소개글에는 “돈이 없는 거지들을 위한 방”이라며 “서로 얼마나 ‘거지’인지 소개하고 생활 방식을 나누자”는 내용이 적혀 있다. 내부에는 ‘오늘 나의 거지 레벨’, ‘절약 꿀팁 공유’ 같은 게시판이 있다. 이용자들은 자신의 신용점수를 공개하거나 밥값 줄이는 방법 등을 공유한다.
게시글 내용도 현실적이다. 한 이용자는 “점심에 국물 남기고 밥 말아서 저녁을 해결했다”며 사진을 올렸고, 다른 이용자는 “5만원 대출 받아 삼겹살을 먹었다”며 소비 내역을 공유했다. 자산 순위가 상위 100%라는 인증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여성 전용 방에서는 비싼 생리대 대신 저렴한 성인용 기저귀를 추천하거나 다양한 생활제품의 무료 나눔도 이뤄진다.
이처럼 거지방은 단순히 하소연하는 공간을 넘어 서로 절약을 도와주는 곳으로 운영되고 있다. 참여자들은 ‘오늘의 지출’, ‘무지출 인증’ 등을 올리며 소비를 기록하고 서로 조언을 주고받는다. 아르바이트 정보나 절약 팁도 활발히 공유된다.
출처=당근
이 같은 흐름은 카카오톡 오픈채팅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무지출 챌린지’, ‘거지방 수다방’ 등 관련 채팅방이 늘고 있으며, ‘십대 거지방’처럼 나이대별로 나뉜 방도 등장했다. 카카오 관계자는 “구체적인 수치는 공개하지 않지만, 관련 채팅방이 증가하는 추세는 맞다”고 말했다.
‘거지방’은 2022~2023년 고물가 시기에 확산된 ‘무지출 챌린지’에서 시작됐다. 당시에는 MZ세대를 중심으로 소비를 줄이고 이를 인증하는 문화가 유행했다. 최근에는 물가 부담이 이어지면서 다시 확산되는 모습이다. 특히 과거와 달리 메신저를 넘어 지역 기반 플랫폼까지 퍼지면서 규모가 더 커졌다는 점이 특징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고물가 속 ‘버티기 소비 문화’로 보고 있다. IT업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혼자 절약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지금은 커뮤니티 안에서 서로 확인하고 자극을 주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며 “이 흐름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유지희 기자 keep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