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시론] 우주에는 중심이 없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대한민국에는 거대한 블랙홀이 있다.
컴팩트하게 뭉치고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폴리센트릭은 "우주의 중심은 어디에나 있고 동시에 어디에도 없다"는 현대 물리학의 성찰을 자치 행정에 적용한 개념이다.
우주에는 중심이 없다.
내가 선 곳이 우주의 중심이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는 거대한 블랙홀이 있다. 국토의 11.8%가 인구의 절반과 경제력의 70%를 독점하는 기형적 수도권 일극 체제. 이 강력한 중력의 중심인 서울은 지역의 자본과 인재는 물론 청년들의 미래마저 집어삼킨다.
이 절망적인 흐름 속에서 대구·경북(TK) 시도 통합이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통합으로 서울을 어설프게 베낀 '작은 서울'을 복제할 것인가, 아니면 서울이라는 중력권에서 완전히 벗어난 '새로운 우주'를 설계할 것인가.
지난 반세기 한국 사회를 지배해 온 수도권 단일 중력의 시대는 수명을 다했다. '재원의 배분'이 아니라 '공간의 재배치'로 새로운 지도를 그려야 할 때가 됐다. 통합이든 뭐든, 결국은 지자체 간 경계를 허물고 기능을 나누는 일종의 '다중 중심(폴리센트릭)' 구조여야 한다. 컴팩트하게 뭉치고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폴리센트릭은 "우주의 중심은 어디에나 있고 동시에 어디에도 없다"는 현대 물리학의 성찰을 자치 행정에 적용한 개념이다.
그동안 우리는 거대 질량(서울)이 주변 자원(지역)을 흡수하는 '중력의 시대'를 숙명처럼 받아들여 왔다. 이 구조에서 지역은 에너지를 뺏기는 위성에 불과했다. 하지만 다중 중심은 단일 중력의 수직적 체계를 거부한다. 밤하늘의 성단(星團)처럼 거대 행성 하나가 군림하는 대신 각자의 질량과 빛을 가진 여러 별이 상호 인력으로 결속되어 스스로 빛의 그물망을 형성하는 수평적 연대를 꿈꾼다.
대구 경북이 그려야 할 별들의 연합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대구는 '지능형 두뇌'로서 ABB 산업을 통해 메가시티의 신경계를 조절하고, 구미와 의성은 통합 신공항을 '글로벌 엔진' 삼아 세계로 뻗어간다. 포항과 경주가 SMR과 이차전지의 '에너지 요새'가, 안동과 예천이 행정의 뿌리 위에 세워진 '바이오 거점'이 될 때 대구 경북은 거대 도시의 힘과 개별 지역의 고유성을 동시에 지닌 강력한 유기체로 거듭날 수 있다.
물론 이 과정에 장밋빛 미래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각 지자체 간의 주도권 다툼, 인위적 통합에 따른 혼란과 비용은 피할 수 없는 현실적 난관이다. 더구나 대구가 결정하고 나머지가 수혜를 입는 식의 종속적 관계로는 실패가 필연적이다. 포항이 멈추면 대구의 소재가 끊기고, 안동의 행정이 마비되면 메가시티의 질서가 흔들리는 탄탄하고 촘촘한 상호 의존적 연대가 형성될 때 비로소 광역 생활권은 완성될 것이다. 이것이 통합 대구 경북이 그려내야 할 공간적 정의(正義)이자 실체다.
질문은 남는다. 대구라는 거대 도심에 인프라를 몰아넣는 편리한 집중의 유혹을 뿌리칠 자신이 있는가. 경북의 각 거점이 대구의 들러리가 아닌 독자적인 생태계의 주인으로 설 수 있도록 권한을 분산할 용기가 있는가. 스스로 법을 만들고 세금을 거두는 초광역 단위의 계획권과 집행권이라는 열쇠를 중앙 정부로부터 쟁취할 능력이 있는가. 이것이 20조 원의 예산보다 훨씬 강력한 통합의 실질적 동력이다.
우주에는 중심이 없다. 내가 선 곳이 우주의 중심이다. 대구와 경북이 각자의 자리에서 별처럼 빛나며 서로를 연결할 때, 비로소 우리는 지방 소멸이라는 멸망의 궤도에서 이탈할 수 있다. 통합 대구·경북의 성공은 서울만큼 커지는 것이 아니라 가장 우리답게 빛나는 법을 찾아내는 데 있다.
이은경기자 lek@yeongn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