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익준 더봄] 이 시대의 적과 흑, 그리고 백(白)
아르테미스호 성공에 가려진 전쟁의 비극
스탕달 고전 속 주인공이 던지는 실존 고민
국경 없는 의사회 뉴스 접하며 기부에 동참
내가 만약 21세기판 <적과 흑>을 쓴다면···

미국 항공우주국 나사(NASA)가 플로리다주 케네디 우주 센터의 발사대에서 쏘아 올린 탐사선 아르테미스(Artemis) 2호가 무사히 달 궤도에 진입했다는 승전보 같은 뉴스가 봄바람을 타고 전해집니다.
이번 여정의 본질은 단순한 영토 확장이 아니라, 인류를 태운 우주선이 심연의 공간을 얼마나 안전하고 정밀하게 유영할 수 있는지 검증하는 고도의 시스템 점검에 있다고 합니다.
자정 무렵 아르테미스 2호의 렌즈를 통해 전송된 우주의 정적 속에서 홀로 빛나는 지구의 영상을 지켜보다가 소파 위에서 졸다가 그만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꿈속의 나는 중력의 사슬을 끊어낸 우주선의 탑승객이었습니다. 네 명의 동료 우주인과 함께 작가 칼 세이건이 그토록 경이롭게 묘사했던 '푸르고 창백한 점 지구(Blue and Pale Dot Earth)'를 응시하며 우주라는 거대한 캔버스 위에 점 하나로 존재하는 인류의 운명을 신비롭게 목도했습니다.
잠에서 깨어 마주한 현실의 속보는 참혹하기 그지없습니다. 천자문의 첫 구절 '하늘 천 따지 검을 현 누를 황'이 함축하는 저 광대하고 깊은 흑색의 질서 아래 평온해 보이던 행성 지구에서는 놀랍고 잔인하고 비극적인 전쟁의 실상이 연출되고 있습니다.
지구라는 좁은 바둑판 위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자각은 나를 초라하고 무력하게 만듭니다. 미국과 이란의 충돌로 고대 인류의 유적이 맥없이 파괴되고 민간인들의 생명이 스러져가는 광경을 목격합니다.
전쟁은 갈등하는 인간들이 존재하는 한 결코 떨쳐낼 수 없는 불행한 테마라는 사실에 가슴이 저려옵니다. 국가 간에 평화란 고속도로 휴게소처럼 잠시 머무르다 떠나는 착시이거나 위장된 안식에 불과한 것일까요.
깨진 사기그릇처럼 파편화된 전쟁이 일상이 되어버린 이 시대 폭격의 포화 속에서 절규하는 이들을 치료하는 '국경 없는 의사'들의 고군분투 뉴스를 접합니다. 나는 바닷물에 스포이드 용액 한 방울을 떨어뜨리는 심정으로 소액의 기부를 실천했습니다. 덕분에 진통제 한 알을 삼킨 듯 작은 위안을 얻고 간신히 새벽잠을 억지로 붙잡았습니다.
달을 향해 검은 허공을 가르며 나아가는 아르테미스호를 바라보던 의식의 흐름은 19세기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의 정점인 스탕달의 소설 <적과 흑>으로 옮겨갑니다. 민주화의 뜨거운 열기에 투신했던 부류와 최루탄 연기 자욱한 도서관 한구석에서 생존을 위한 취업 준비에 매진하던 친구들.
극명한 두 부류 사이에서 어느 쪽으로도 온전히 발을 내딛지 못한 채 방황하던 청년 시절의 나는 도서관 서가에서 주인공 '줄리앙 소렐'을 만났습니다. 그는 야망과 현실 사이에서 안절부절하던 내 젊은 날의 내면과 닮았는지 모릅니다.
스탕달이 은유한 적(Rouge)은 당시 프랑스 군대의 제복 색깔로, 나폴레옹 시대에 평민이 권력의 사다리를 오를 수 있는 가장 화려하고 역동적인 수단이었습니다. 반면 흑(Noir)은 사제들이 입던 제복의 색으로, 왕정복고기에는 군인의 명예보다 더 강력하게 권력의 핵심에 접근할 수 있었던 위선적이고도 은밀한 수단이었습니다.
줄리앙 소렐은 붉은 야망의 사다리를 타다가 시대의 조류가 바뀌자 검은 사제의 길을 선택하지만 결국 계급적 사회 구조의 모순에 부딪혀 추락하고 맙니다. 그러나 그는 죽음의 문턱에서 비겁한 타협 대신 정의로운 항거를 선택함으로써 비로소 보편적 인간으로 구원받았습니다.
나는 그의 몰락을 읽으며 소설가 최인훈의 <광장> 속 주인공 이명준을 떠올렸고 그의 실존적 방황을 공감한 독서의 기억을 더듬었습니다.
이제 시선을 돌려 이 시대의 적색 제복을 입고 지상의 전쟁을 호령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젊은 시절을 상상해 봅니다. 진정으로 궁금한 것은 과연 그에게도 줄리앙이나 명준처럼 밤잠 설치며 가치관의 균열을 겪어본 치열한 내적 번민의 흔적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현재의 그는 확증 편향이라는 견고한 장갑차를 타고 직진하는 지도자의 이미지로 보입니다. 그러나 미래의 역사가들은 올해 2026년을 평가할 때 말 많고 소란스러운 지도자보다 우주선 스타십(Starship)을 띄운 나사와 일론 머스크를 시대의 주인공으로 부각할 지도 모릅니다.
스탕달이 묘사한 붉은색이 영토와 국경을 나누는 지상의 낡은 권력이라면 검은색은 경계가 존재하지 않는 무한한 우주의 질서를 예고합니다. 우주비행사들이 스타십을 향해 저 고요한 정적 속으로 나아가는 순간 지상 권력의 유통기한은 자연스럽게 마감될 것입니다.
인류의 탐욕이 저 광활한 흑색 우주의 자원을 향해 시선을 돌릴 때 지상의 한 뼘 땅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의 총구를 겨누던 소모적인 '적색 전쟁'은 역사의 폐허 속으로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미국의 미래를 추동하는 엔진은 영토 점령의 야욕이 아닌, 자본주의적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과 창의적 도전정신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만약 제가 21세기판 <적과 흑>이라는 소설을 쓴다면, 주인공 줄리앙을 미국 공군 소속의 정밀 폭격기 조종사로 설정하겠습니다. 승전보를 울리던 야심 찬 장교인 그는 자신이 수행한 폭격의 포화 속에 남겨진 부서진 생명들과 민간인의 눈물을 목도하며 깊은 실존적 균열을 겪습니다.
화성 탐험대라는 영광스러운 '우주조종사 티켓'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상의 고통받는 이들을 향해 퇴역의 길을 선택합니다. 진정한 영웅이란 파괴 아닌 치유에 있으며, 정복이 아닌 상생에 있음을 증명하고 구원받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는 평화 봉사단이 되어 '핵무기 없는 지구' 재단을 설립하고 인생 2막의 위대한 여정을 시작합니다. 그로부터 10년 후, 그의 헌신은 인류를 움직여 마침내 핵무기 보유국들이 '2036년 핵무기 동시 폐기 협정'에 서명하게 만드는 기적을 일궈냅니다. 미국의 고향으로 돌아와 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지구촌의 새로운 시대를 선언하며 이렇게 외칩니다.

적과 흑의 갈등이 끊임없이 반복하며 변해가도 인류의 보편적 희망과 꿈은 영원합니다. 우리 생이 다하기 전에 저 달나라의 흙을 한 번 밟아보는 상상을 해봅니다. 일론 머스크가 로켓의 연료를 재생할 기술을 개발하면 우주 관광객이 되어 달 여행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올 수 있다니 부지런히 저축하고 건강을 유지해야지요.
설령 달에 못 가도 좋습니다. 알래스카 우주 천문대를 찾아가 하얀 별이 벚꽃처럼 쏟아지는 밤하늘은 볼 수 있을 테니까. 적과 흑의 시대를 사는 오늘 핵무장한 강대국들이 우주를 넘볼 때 나는 미래를 위해 틈틈이 글 쓰고 기부하며 전쟁 없는 지구를 꿈꿉니다.
역사는 반복하며 시대의 색깔은 끊임없이 탈색되고 다시 칠해지겠지만, 다음 세대에 물려줄 평화의 꿈은 포기할 수 없으니 나는 기도하듯 백색의 화면에 평화의 글을 쓰겠습니다.
☞확증 편향= 자신의 신념이나 가치관에 부합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정보는 무시하거나 부정하려는 심리적 경향을 말한다. 이는 객관적인 판단을 흐리게 하고 집단 간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
sebastianchoi@hanmail.net

최익준 산업정책연구원(IPS) 연구교수
부산대학교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핀란드 헬싱키 경영경제대학원(Aalto University)에서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취득했다. 독일에 본사를 둔 글로벌 기업 '칼 자이스 비전(Carl ZEISS Vision)' 한국법인 대표이사를 12년간 역임하며 시장 지배력을 혁신한 전략가형 CEO로 평가받았다. 현재 경영학 박사로서 기업 강연과 경영 자문을 활발히 펼치고 있으며, 집필과 봉사 활동에도 매진하고 있다. 격변하는 세상 속에서 독자들과 진실하고 따뜻한 공감을 나누며 함께 성장하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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