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제일 싸다" 5년 만에 80% 폭등한 샤넬백..그래도 지갑 여는 한국인 [에루샤 불패공화국]
글로벌 중산층 명품 소비 위태
루이비통 실적 감소...주가도 출렁
투자심리에 가격 인상이 소비 부추겨



[파이낸셜뉴스] "화이트골드는 2110만원, 베이지골드는 2010만원입니다."
지난 14일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본점의 샤넬 매장 직원은 샤넬 대표 주얼리인 '넘버5 뱅글' 가격을 이렇게 소개했다. 작년에 비해 가격이 얼마나 올랐는지 묻자 "현재 가격으로만 안내드리고 있다"며 인상폭은 알려주지 않았다. 비교적 저렴한 패션 주얼리 코너는 손님이 없었다. 반면, 수 천만원대의 파인 주얼리가 전시된 공간에는 커플이나 중국인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3대 명품인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의 국내 실적이 고공행진하고 있다. 명품 가운데서도 고가에 속하는 에루샤가 지난해 한국에서 역대급 실적을 달성하며 불황에도 굳건한 성장세를 보여줬다. 급격한 가격 인상으로 중산층은 선뜻 구매하기 어려워진 수 천만원대 명품을 소비하는 부유층의 탄탄한 수요가 가장 큰 요인으로 분석된다. 혼인율 반등과 함께 원화 가치 하락에 따른 외국인 매출 수요도 국내 명품 매출 성장을 이끌고 있다.
부유층뿐 아니라 중산층의 고가 명품 소비가 에루샤 매출 증가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경기 불황이 지속되면서 가성비 소비처를 이용하다가도 예외적으로 고가 제품을 사려는 심리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중간 가격대 소비가 위축되면서 다이소, 올리브영, 무신사와 초고가 명품이 동시에 역대급 실적을 내는 양극화 결과를 낳고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한국 소비자들은 소품이라도 명품을 구매하는 대열에 합류하려는 성향이 있다"며 "자신이 명품을 살 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구가 여전히 높은 것이 다른 나라와의 차이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글로벌에서 에르메스를 제외하고 루이비통, 샤넬 실적은 부진을 겪고 있다. 지난해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매출은 5% 줄어든 808억700만유로로 2년 연속 감소했다. 중국 소비 둔화와 중산층 수요 감소로 LVMH 주가는 올 들어 30% 가까이 떨어졌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베인앤컴퍼니는 2024년부터 2년간 전 세계 소비자 5000만명이 럭셔리 시장을 이탈한 것으로 보고 있다. '가격을 올릴수록 잘 팔린다'는 '베블런 효과'가 흐릿해지고 브랜드보다 제품 가치를 따지는 소비자가 늘어나는 흐름이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 소비자들은 명품 가격을 인상해도 기꺼이 지갑을 열고 있다.
명품 가격 인상이 이런 소비 성향을 부추긴다는 분석도 나온다. 샤넬 클래식백 미디움 가격은 2021년 1000만원을 돌파한 후 올 들어 1790만원으로 5년 만에 80% 가까이 올랐다. 샤넬은 지난해만 4차례 가격을 올리는 등 'N차 인상'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명품 구매를 고려하는 소비자들은 가격 인상을 예상하고 소비를 미루지 않는 경우도 늘고 있다. 나중에 가격 인상을 고려한 이른바 '샤테크' 심리도 여전한 것으로 풀이된다. 샤넬 매장 직원은 클래식백을 보여주면서 "가격 인상 시기는 알 수 없다"고 했다. 다만, "계속 올랐기 때문에 곧 1800만원이 되지 않을까요"라고 반문했다.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소비자가 양극화되면서 해외에서는 프리미엄 시장이 흔들리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가격 인상으로 희소성을 극대화시키는 전략이 여전히 통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원화 가치 하락으로 중국인 등 외국인의 한국 명품 소비 흐름도 뚜렷해졌다. 올 1·4분기 롯데백화점의 명품 카테고리 매출은 30% 늘어난 데 비해 외국인의 명품 매출은 125% 증가했다. 항저우에서 온 20대 중국인 A씨는 "199만원짜리 루이비통 스니커즈를 구매했는데, 중국에서는 60만원이 더 비싸다"며 "한국에서 훨씬 싸기 때문에 쇼핑을 하기 위해 왔고, 다들 한국에서 명품을 사간다"고 말했다. 경제력을 갖춘 30대 후반, 40대 초반 혼인율이 높아지면서 주얼리를 중심으로 예물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1·4분기 신세계백화점 명품 주얼리 매출은 55% 늘어 전체 명품 신장률(30%)을 뛰어넘었다. 한국 매출이 늘면서 지난달 말 악셀 뒤마 에르메스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국내 매장을 둘러보는 등 명품 기업 CEO들의 방한도 잇따르고 있다.
unsaid@fnnews.com 강명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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