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 시대 MZ의 식비 절약법 '거지맵'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만 원짜리 한 끼가 사치가 된 시대
[우먼센스] 냉면 1만 2,538원. 비빔밥은 1만 1,615원. 외식 물가가 사상 최고치를 갱신하는 가운데 '1만 원 이하 식당만 모아놓은 지도'가 등장했다. 이른바 '거지맵'이다.
지난 3월 20월 출시된 거지맵은 출시 18일만에 누적 사용자 94만 명을 돌파했으며, 하루 최대 방문자는 25만 명을 넘어섰다. 동시에 온라인에서는 '무지출 챌린지(하루 혹은 일주일 동안 지출을 하지 않거나 최소화하는 것)' 같은 절약 관련 콘텐츠가 확산되며서 소비 패턴이 부를 강조하고 한번에 큰 돈을 쓰는 것을 자랑하는 '플렉스'에서 함께 절약하는 흐름으로 바뀌고 있다는 신호로 봐야한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거지맵, 그게 뭔데?
거지맵은 한 끼 1만 원 이하인 가성비 식당을 위치 기반 지도 위에 모아놓은 웹 서비스다. 회원가입 없이 거지맵.com을 직접 입력하면 공식 사이트를 바로 이용할 수 있고, iOS 앱스토어에서는 앱도 설치할 수 있다.
거지맵의 시작은 카카오톡 오픈채팅 '거지방(참여자들이 지출 내역을 공유하고 서로 평가·조언하며 소비를 줄이려는 공간)'이다. 개발자 최성수(35) 씨가 거지방에서 활동하면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핵심 구조는 맵(지도), 거지방, 핫딜로 나뉜다. '맵'은 현재 위치를 기반으로 주변의 저렴한 식당을 지도에 표시하는 기능이다. 1,000원부터 1만원 사이로 가격 필터를 설정할 수 있고, 기본값은 1,000원~7,000원이다. '거지방'은 절약 노하우와 식비 기록, 마감 할인 정보 등을 공유하는 커뮤니티 공간이며, '핫딜'은 식품·생필품 특가 정보가 올라온다.
맵의 가장 큰 특징은 일반 이용자들의 후기가 쌓여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식당 이용자가 식당 정보(상호명, 가격, 메뉴 등)를 올리면, 또 다른 이용자들이 '가성비 ↑' 또는 '가성비 ↓'로 평가하고, 댓글로 후기를 남긴다. 이용자 반응을 기반으로 한 식당 '랭킹' 이 화면 좌측에 표시되며, 등록 1주 이내 식당은 '심판대' 목록에 별도로 분류돼 추가 검증이 필요한 대상으로 안내된다. 운영진은 8,000원이 넘는 음식을 파는 식당의 후기는 광고인지 확인 과정을 거친다.
운영진과 이용자들의 자정 작용이 병행되면서 등록된 가게 수는 현재 5,000여 개 이상이다. 일반 식당뿐만 아니라 외부인이 이용할 수 있는 기업 및 관공서 구내식당 정보도 등록되어 있어 선택지가 다양하다.

3고(高)ㆍ절약 문화ㆍ압축소비 영향
거지맵이 인기를 얻은 이유엔 3고(高) 현상이 가장 큰 영향을 줬다. 미-이란 전쟁 발발 이후로 더 '3고(고물가·고금리·고환율)현상'이 일상을 덮쳤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외식비는 5% 이상 상승했다. 서울 김치찌개 백반 가격은 8,654원으로 10년 전(5,769원)보다 2,885원 올랐다. 서민 음식이라 불리던 칼국수, 냉면, 비빔밥도 대부분 1만 원 안팎까지 가격이 치솟았다.
김승욱 중앙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삼고 현상에 유가폭등으로 배달비도 상승했다. 청년들이 가장 먼저 아낄 수 있는 항목으로 식비를 택하게 된 것"이라고 전했다. 월세나 통신비, 교통비는 줄이기 어려운 고정 지출인 상황에서 식비는 유일한 조절 변수가 됐다.

3고 상황은 일상에 절약 문화가 스며들도록 영향을 미쳤다. 거지맵의 뿌리는 카카오톡 오픈채팅 '거지방'이다. 2023년부터 전국적으로 유행이 시작된 거지방에서는 소비내역을 공유하고, 이를 평가한다. 예를 들어 "퍼스널 컬러 진단에 4만 원을 썼다"고 하면 "얼굴 옆에 색종이 대 보세요"라거나 "택시를 탔다"고 하면 "고물상에 괜찮은 자전거가 많아요"라는 식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평가가 돌아온다. 절약을 유머로 풀어내는 정서가 MZ세대를 사로잡았다.
거지맵 커뮤니티에서도 절약 문화는 이어진다. "신입 거지입니다, 반갑습니다"라는 가입 인사부터, "올리브영 포인트를 써서 지출 0원 달성"이라는 챌린지 인증, "남들이 놀 때 나는 식비를 아낀다. 미래를 위해 산다"는 다짐도 볼 수 있다. '거지라고 굶으면 되겠습니까? 건강한 거지가 됩시다'라는 거지맵의 슬로건은 커뮤니티 이용자들의 생각을 대변한다. 또 앱 설치나 회원가입, 로그인이 필요 없는 UX와 가격을 전면에 내세운 식당 큐레이션은 거지맵 확산에 동력이 됐다.
YOLO, 소확행에서 '압축소비'로 이어지다
쓸 땐 쓰고 아낄 땐 철저히 아끼는 MZ세대의 압축 소비는 거지맵 트렌드 확산을 도왔다. 과거 한 번뿐인 인생이니 즐거운 일을 하며 살아야 한다는 YOLO 기조는 일상에서 작지만 확실하게 실현할 수 있는 행복을 추구하는 소확행으로 이어졌다.
이 흐름은 돈, 시간, 에너지와 같이 한정된 자원을 나에게 가장 큰 효용과 만족을 주는 곳에 집중하는 고밀도 소비 행태 '압축소비'로 이어졌다. 가성비를 따지면서도, 자신의 취향과 만족을 위한 소비에는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
김승욱 교수는 "평소에는 거지맵으로 가성비를 따져 최소한의 지출을 하다가도, 데이트나 여행 같은 특별한 상황에서는 맛집을 찾아가는 양극화된 소비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에서 전국 15~55세 남녀를 대상으로 실시한 소비가치에 대한 조사에 따르면 Z세대는 소비에 '저렴한 가격(76.0%)과 '취향,취미,덕질(75.3%)'을 우선한다는 응답이 높게 나타났다. 실제로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거지맵 사용 후기에는 '점심값 아끼고, 여윳돈 생기면 퇴근 후 자기 계발해야지'라는 반응도 있다.

MZ세대의 절약, 생존을 넘어 전략이 되다
MZ세대의 절약 열풍은 거지맵 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확산되고 있다. 유통기한 임박 식품을 할인가에 구매할 수 있는 라스트오더, 떠리몰 등 같은 앱이나 출석체크, 광고 시청, 걸음 수 적립 같은 활동으로 소액을 버는 캐시워크, 간단한 퀴즈를 맞히면 소액을 받는 토스 행운퀴즈 같은 앱테크의 이용자도 늘어나고 있다. 무지출 챌린지, 가계부 작성하기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이 흐름에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절약하는 소비를 공유하고 격려하는 구조라는 것과 절약을 스마트한 소비를 위한 전략적 행위로 재정의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거지방의 인기는 단순히 돈이 없어서 시작된 게 아니다"라며 "최소한의 비용으로 생활해보려는 실험 정신이 기반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내 집 마련처럼 분명한 목표를 달성하기 전까지 지출을 최대한 줄이는 태도와 일상 소비를 줄여 취미 등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곳에 소비하려는 경향이 함께 작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거지방, 거지맵, 무지출 챌린지, 앱테크로 이어지는 흐름은 오늘 날 절약은 선택과 집중의 기술이며, 각자의 목표와 가치에 맞춰 소비를 재구성하는 생활 전략이 됐음을 보여준다.
MZ에게 '거지맵'이란?
서울에 거주하는 25세 A씨에게 물었다.
Q. 거지맵을 사용하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A. 나를 위한 지도라고 생각했다.(웃음) 인스타그램에 '요즘 유행하는 웹사이트 5', '요즘 젠지들이 모이는 사이트'와 같은 게시물이 자주 보였다. 그 게시물에 거지맵이 항상 껴 있길래 호기심이 생겨서 들어가봤다.
Q. 거지맵을 쓰게 된 이유는?
A. 서울에서 자취하면서 높은 고정지출에 허덕였다. 그러다보니 정작 내가 하고 싶은 PT나 보고 싶은 뮤지컬, 체험하고 싶은 원데이 클래스에 갈 여력이 없었다. 고정비용을 줄여야 했는데, 그 중 줄일 수 있는 건 식비뿐이었다. 그래서 거지맵을 쓰게 됐다.
Q. 가장 만족스러운 점은 무엇인가?
A. 거지맵을 사용하기 전엔 '가성비 식당'을 검색해서 찾았는데 내가 찾지 않아도 내 주변의 가성비 식당 리스트를 보여주니까 시간이 절약됐고 편했다. 특히 설정한 예산에 따른 식당만 모아 보여주는 기능이 유용했다. 용돈이 적은 대학생이나 자취하는 사회초년생에게 추천한다.
Q. 거지맵을 이용해 선별한 식당의 만족도는 어땠나?
A.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주변 식당을 찾아 방문했다. 돈까스가 4,000원인 꼬숑돈까스는 생각보다 고기 질이 좋았고 양이 넉넉했다. 또 김치찌개를 3,000원에 판매하는 청년밥상문간은 양은 많지 않았지만 맛있고, 식당 종업원이 친절했다. 5,000원짜리 제육컵밥이 유명한 지니네컵밥은 양과 맛을 모두 잡은 가성비 맛집이다.
Q.또 다른 절약 습관이 있나?
A. 앱테크를 주로 한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손목닥터 9988은 8000보에 100원, AI 채팅앱 뤼튼은 뉴스레터 읽기, 미션 수행 등 간단한 활동을 하면 캐시를 주는데, 이를 기프티콘이나 실물 굿즈로 바꿀 수 있다.
가짜 배달앱(음식만안와요.com)을 보며 음식을 배달시키고 싶은 욕구를 참는다. 가짜 배달앱은 점점 더 UX가 디테일해져 주문시 맛을 선택할 수 있고, 라이더 위치 현황도 확인할 수 있다. 화면을 보고 있으면 배달을 시키고 싶은 충동이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정주원 기자 jungjuwon0525@naver.com
Copyright © 우먼센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