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기준법’이다

이번에 새 책을 출간하며 가장 쉬웠던 작업은 제목을 정하는 일이었다. 책을 펴내는 목적을 곧바로 제목으로 삼아 <근로기준법이 행방불명된 세계에서 권리찾기>로 정했다. 출간 시점이 '일하는 사람 기본법' 제정 및 근로기준법 개정 논의와 맞물리다 보니 정책적 대응을 염두에 둔 것이냐는 질문도 받는다. 시기를 일부러 맞춘 것은 아니나, 얽힌 실타래를 풀어내려는 이들에게 이 책이 긴요한 텍스트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간절하다.
최근의 입법 과정은 과거의 노사 대립과는 사뭇 다른 양상으로 흐른다. 노동 가치를 옹호해온 지식인들이 정부 안의 홍보대사를 자처하는 풍경이 펼쳐지는가 하면, 정작 노동법 없이 일해온 당사자 조직들이 그 법안에 격렬히 반대하며 사회적 투쟁을 주도한다. 이러한 '기묘한 불협화음'은 우리 사회가 노동자성과 근로기준법의 본질에 대해 얼마나 깊은 혼란에 빠져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근로기준법이 행방불명된 세계'에서 권리를 찾아나가는 당사자들은 '가려진 노동'의 실체에 다른 방법으로 접근한다. 먼저, 노동권이 닿지 않는 곳을 '사각지대'라 부르며 마치 어쩔 수 없는 물리적 한계인 양 치부해온 관행을 성토한다. 책에서 날카롭게 짚어내듯, 그곳은 거울이 비치지 않는 각도가 아니라 국가가 의도적으로 거울을 돌려버린 '차별지대'다.
현행 근로기준법 11조는 사업장 규모가 5명 미만인 사업장에 대해 부당해고 구제신청이나 연차휴가 같은 핵심 조항을 적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명시한다. 물론, 노동자의 이름 자체를 지워버리면 근로기준법의 모든 조항을 회피할 수 있다. 세금의 종류(사업소득세 3.3%)를 활용해 노동자를 사업자로 둔갑시키는 '가짜 3.3' 수법이 모든 산업으로 확산된다.
이렇게 사업장 규모와 세금 종류라는 장벽 뒤에 갇혀, 근로기준법 없이 일하는 노동자가 천만을 넘었다. 취약한 노동조건에 처해 있어 법적 보호가 더욱 절실한 이들을 법의 울타리 밖으로 밀어낸다. '사각지대'라는 용어는 이런 제도적 차별과 조직적인 배제를 '불가피한 소외'로 세련되게 포장한다.
근로기준법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헌법에 따라 근로조건의 기준을 정함으로써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향상시키며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근로기준법 1조의 내용이다. 그러나 근로기준을 정해 보호해야 할 노동자의 절대다수를 배제하면서, 이 법의 이름은 여전히 '근로기준'법이다.
근로기준법이 행방불명된 세계에서 사업주는 최저기준 미만의 근로관계를 운영하며 법 없이 사업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릴 수 있다. 사업장 규모를 위장하는 '가짜 5명 미만'과 세금의 종류를 악용하는 '가짜 3.3'이 대표적 수법이다. 이 책의 주인공들이 공동법률구제에 나서며 처음 명명했던 이 이름들은 이제 근로기준법 없이 일하는 노동자를 향한 사회적 연대의 주제가 되었고, 국정과제의 표제어로까지 올라섰다.
정부도 이러한 '가짜들'을 뿌리 뽑겠다고 천명한다. 단속 결과를 대대적으로 발표하며 엄정 대응을 예고하지만, 위장고용의 기세는 좀처럼 꺾이지 않는다. 일부의 탈선을 넘어 산업 전반의 고용구조로 깊숙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방향을 전환하려면 근로기준법에 대한 관점부터 바꾸어야 한다. 특정 요건을 갖춘 자만 누리는 특권이 아닌, 노동하는 모든 이가 누려야 할 당연한 기본권이다.
근로기준법 없이 일하는 노동자들은 자신들을 위해 새로운 기본법을 만들어 주겠다는 이들에게 따져 묻는다. '근로기준법을 적용하기 힘든 노동자' 같은 것은 없다. 근로기준법이 낡아 새로운 고용형태를 담아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근로기준법을 회피하는 '위장고용'이 진화하며 활개치도록 국가와 법제도가 방조해 왔을 뿐이다. 근로기준법을 회피하는 노동관계를 사라지게 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근로기준법을 도입한 목적이다.
사업장 규모가 위장돼 근로기준법을 빼앗겼던 '가짜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 노동자 추정제와 근로기준법 2조 개정안의 입법 제안자로 나선 '가짜 3.3' 노동자들의 절박한 목소리가 책의 원고로 새겨졌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모든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법을 준비했다는 책임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당신들을 위한 법이 아니니, 이제 그만 근로기준법을 포기하라"는 식의 냉소적인 조언도 사라지길 기대한다.
권리찾기전국네트워크지원센터 대표 (redr40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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