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간호사들의 파업

안진이 2026. 4. 16.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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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진이 독립연구자·활동가
▲ 안진이 독립연구자·활동가

"닉은 왜 의사가 되지 않았지?" 미국 드라마 <더 레지던트>에서 남자 의사가 묻는다. 1년차 레지던트 생활을 갓 시작한 주인공의 눈에, 간호사 닉은 환자도 잘 챙기고 너무나 똑똑해 보였다. 그에게 동료 의사가 대답한다. "똑똑하니까. 간호사는 환자들이랑 시간을 보내는데 우린 그렇게 못하지. 노조가 강하고, 초과근무수당도 받고, 돈도 잘 벌잖아." 이 대사가 기억에 남은 이유는 한국 간호사들이 과로와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현실과 대비됐기 때문이다. 나중에 보니 한국에서는 '미국 간호사 취업이민' '퇴사 후 미국 간호사 이민' 등이 인기 검색어였다.

그 부러움의 대상인 미국 간호사들이 올해 1월부터 2월까지, 41일 동안이나 파업을 했다. 뉴욕시에서 3개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진행된 파업에 1만5천명 넘는 간호사가 참여했다. 혹한의 날씨에 간호사들이 피켓시위를 이어가자 뉴욕시 노동단체들은 물론이고 맘다니 뉴욕시장도 지지를 표명했다.

파업의 직접적인 이유는 뉴욕간호사협회(NYSNA) 소속 간호사들의 기존 단체협약이 12월31일에 만료됐고, 재계약 협상이 결렬됐기 때문이다. 간호사들의 주된 요구는 네 가지다. 적정인력 배치, 임금인상, 보안 강화, 복지혜택 유지였다.

적정인력 배치는 환자 대 간호사 비율을 계약으로 강제해서 과도한 업무 부담을 줄이라는 요구였다. 미국에서도 코로나 이후 의료 종사자의 대규모 이직과 번아웃으로 인력 부족이 심각해졌다. 최근에는 간호사 1명이 환자 14명을 담당했을 정도라고 한다. 인력 부족으로 간호사들이 쉴 새 없이 불려 다니는 상황은 필연적으로 환자들에게도 영향을 준다. 그래서 뉴욕시 파업에 참여한 간호사들은 '안전한' 인력 비율이라는 용어를 썼다.

또 하나의 중요한 요구는 병원의 보안 강화였다. 미국에서는 병원 내 폭력 사건과 총기 위협이 증가하는 추세인데, 병원들의 보안 조치가 미흡해서 현장에 불만이 쌓여 있었다. 간호사들이 제시한 해법은 간단했다. 병원 출입구에 금속 탐지기를 설치하고, 폭력 대응 전담 인력을 배치하라는 것. 다음으로 임금인상과 복지혜택에 대한 요구가 있었다. 뉴욕시의 높은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임금인상이 필요하며, 건강보험 등의 복지혜택은 삭감하지 말고 유지해 달라는 요구였다.

뉴욕시 간호사 파업과 함께 자주 언급된 또 하나의 쟁점은 AI였다. 파업의 대상이 된 병원들 중 일부는 AI 도입을 추진하거나 이미 AI를 활용하고 있었다. 특히 마운트 시나이 병원에서는 예측 모델(Predictive Models)을 시범운영하면서, 과거 환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환자의 중증도를 예측하거나 다음 교대근무에 필요한 간호사수를 자동으로 계산했다.

간호사들은 병원측이 환자 관리나 간호사 배치에 AI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현장 의견 청취와 안전 검토가 부족했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AI를 도입하기 30일 전에 노조에 사전 통보하고 간호사 발언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마운트 시나이에 근무하는 간호사 매기는 언론 인터뷰에서 "예측 모델을 아예 쓰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병원측은 우리의 일자리에 대한 보장을 해주지 않겠다고 합니다"라고 항의했다. 또 AI가 간호사를 감시하고 압박하는 도구가 될 것에 대한 우려를 표시했다.

간호사들이 일손을 놓으면 병원은 돌아가지 않는다. 파업의 결과는 어땠을까? 결국 3개 병원 모두 간호사들의 요구사항을 대부분 수용하고, 2026년부터 2028년까지 유효한 3년 계약을 제안했다. 인력 배치기준을 지키지 않는 병원에 과태료를 부과하고, 간호사 급여를 3년간 12% 또는 3년간 매년 4% 인상하고, 병원에는 금속 탐지기를 설치하고 보안을 강화하기로 했다. 건강보험 등의 기존 복지혜택은 유지하기로 했다. 또 3개 병원과의 계약 모두에 AI 기술에 대한 안전장치를 명시했다.

기업들은 돈벌이를 위해 뭐든 시도한다. 특히 미국에서는 마치 '가상 간호사'가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 것처럼 마케팅이 이뤄지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간호사들이 병원의 AI 기술 사용과 관련된 내용을 단체협약에 명시한 것은 2023년 미국 작가노조 파업에 이어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운 사건이다. 뉴욕간호사협회 회장 낸시 헤이건스는 이렇게 말했다. "AI는 도구일 뿐, 환자의 손을 잡고 상태를 살피는 간호사의 직관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중대한 치료나 수술을 앞두고 불안에 떨어본 사람이라면 이 말을 금방 이해할 것이다.

한국도 스마트 병원을 구축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하지만 기술이 인간 의료인을 보조하는 수단으로 사용될지, 아니면 기존 의료인력을 감시 또는 대체하는 수단으로 사용될지는 아직 불명확하다. 보건의료 노동자의 참여 속에서 꼼꼼한 윤리적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독립연구자·활동가(livewithal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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