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방은 있는데 약이 없다”…거점도매로 약국 ‘유통 혼란’

최재경 기자 2026. 4. 16.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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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기다리라 할 수밖에”…환자 돌려보내는 상황까지
불공정 거래·독점 유통 구조 등 단순 우려 아냐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거점도매 운영 이후 일부 약국 현장에서는 우려됐던 사안이 구체적인 피해 사례로 드러나고 있어 주목된다.

일각에서는 제약사의 거점도매  운영 시스템에 대해 "약국에 별다른 문제는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으나, 현장 약국 약사 대상 설문조사에서는 단순한 배송 지연을 넘어 조제 공백과 환자 이탈, 약국 운영 부담까지 이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약사들이 직접 제기한 사례를 보면, 현장의 체감은 "약이 없는 게 아니라, 있어도 못 구하는 상황"에 가깝다.

약사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이하 약준모)이 전국 약국 678곳을 대상으로 지난 4월 6일부터 11일까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대웅제약의 거점도매 도입 이후 약국 약사들의 피해 사례가 확인됐다.

약사들이 직접 기술한 대표 피해사례 181건을 살펴보면, 거점도매 운영으로 발생한 가장 큰 문제는 '당일 투약 불가' 상황으로 나타났다.

기존에는 오전 주문 시 당일 수령이 가능했지만, 더샵 주문 시 현재는 배송이 하루 이상 지연되면서 타지역 처방 환자가 약을 받지 못하고 돌아가는 사례가 발생했다. 약국을 전전하다 2일간 복약하지 못하고 다음날 재방문한 사례도 확인됐다.

서울의 한 약사는 "급하게 약을 지어드려야 하는 환자인데, 빠른 도매에는 재고가 없고 느린 유통만 남아 결국 다음날 오시라고 안내했다"며 "환자가 한참을 기다리다 돌아갔다"고 전했다.

도서지역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올메텍정 10mg'의 경우 제주 내 모든 도매 재고가 소진되고, 거점도매(제주백제)마저 품절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육지에서 공급받을 경우 빨라야 3일, 길면 4~5일이 소요돼 처방이 있어도 조제가 불가능했다.

제주 지역 한 약사는 "거점도매까지 품절되면 육지에서 약을 받아야 하는데 3~5일이 걸린다"며 "처방이 있어도 조제를 못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권역 거점도매 이전에는 이런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대표적 피해사례 - 약사 직접 기술 181건 중. 약준모 설문조사.

배송 지연은 환자 치료 공백으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 사례에서는 혈압약과 당뇨약이 하루 이틀 늦어지면서 환자가 복약을 중단하는 상황도 발생했다.

한 약사는 "걸음이 불편한 노인 환자가 처방전을 들고 왔는데 약을 구하지 못해 돌려보냈다"며 "이건 단순 불편이 아니라 환자 건강 문제"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약사는 "약이 없어 환자가 여러 약국을 돌아다니다 결국 다음날 다시 방문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환자 이탈도 현실화되고 있다는 응답도 있었다.

인천·경기 지역 한 약사는 "약을 구하지 못해 대체 안내를 했더니 환자가 불만을 표시하며 다른 약국으로 옮겼다"며 "회사 정책 때문에 피해는 약국이 떠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같은 처방이라도 약국마다 약 보유 여부가 달라지면서, 환자가 '약 있는 약국'을 찾아 이동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대웅제약의 다이아벡스·크라틴·우루사 등 다수 품목에서 사전 안내 없이 제형·성상 변경이 이뤄지면서 현장 혼란을 가중했다는 지적도 있다.

카세트 교체 비용(6만원)이 발생하고, 제작 기간(약 2주) 동안 수작업 조제로 대기시간이 급증하는 등 사전 안내 없이 약의 모양과 성상이 바뀌면서 환자 문의가 늘고 이에 대한 설명을 약사가 모두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서울의 한 약사는 "약 모양이 달라졌다고 '가짜 약 아니냐'는 질문까지 받는다"며 "왜 바뀌었는지 설명 자료도 없어 답변하기 난감하다"고 말했다.

"돈은 묶이고 약은 쌓인다" 운영 부담 가중

유통 구조 변화는 약국의 재정 부담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배송 지연에 대비해 필요 이상의 재고를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약국 공간 부족과 자금 압박이 동시에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약사는 "필요하지 않은 약까지 미리 사야 하고, 선결제로 자금이 묶인다"며 "수천만 원 단위 부담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또 "유통기한이 짧은 기존 재고와 신규 재고를 동시에 관리해야 해 부담이 크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약사들은 이번 문제를 단순한 물류 지연으로 보지 않고 있다. 한 약사는 "약이 없는 게 아니라 유통 구조가 막혀 있는 느낌"이라며 "특정 경로로만 공급이 이뤄지다 보니 선택 자체가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약사는 "제약사가 처방을 유도하고 공급까지 특정 채널로 묶는 구조라면 의약분업 취지가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