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은 총자산 800조원, 재계 서열 9위의 초대형 조직이다. NH농협금융지주는 당국의 감독을 받고 분기마다 실적을 공시하며 농협은행은 무디스·피치 등 국제 신용평가도 받고 있다. 금융 계열사에 한해서는 외부 감시 체계가 작동하는 셈이다.
그런데 지난달 범정부 합동감사에서 드러난 비위의 상당수는 금융 계열사가 아니라 농협중앙회에서 나왔다. 중앙회는 금융기관이 아니라 협동조합이다. 농림축산식품부의 감독을 받지만 이번 비위가 정부 감사 전까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았다는 점은 기존 감독 체계에 사각지대가 존재함을 나타낸다.
■ 감사위원회에 포함된 '무늬만' 외부 인사
강호동 농협중앙회장과 경영진이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본관에서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농협중앙회에 대한 특별감사 중간 결과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 인사를 하고 있다. / 제공=뉴스1
농업협동조합법 제129조는 중앙회에 감사위원회를 두도록 규정한다. 감사위원장을 포함한 5명으로 구성하되 3명은 외부 전문가 중 선출해야 한다. 여기서 '외부'란 조합, 중앙회, 자회사에서 최근 3년 이내에 임직원으로 근무한 사람을 제외하는 기준이다.
농협중앙회 감사위원은 김경수, 조용일, 박종학, 김광영, 함원호 등 5명이다. 이 가운데 조용일 금성농협(의성) 조합장과 함원호 대관령농협(평창) 조합장은 현직이고, 박종학 위원은 전직 맹동농협(음성) 조합장이다. 나머지 2명은 전직 대구고등검찰청 검사장(김경수), 전 감사원 공공감사운영단장(김광영)이다. 법이 요구하는 외부 전문가 요건은 형식상 충족되지만 감사위원 과반이 조합장 출신으로 채워져 있다.
준법감시인 제도는 2004년 도입됐다. 법 제125조의4에 따르면 임면 권한은 회장에게 있다. 정부가 올해 발표한 개혁안에 '준법감시인 외부 전문가 임명 의무화'가 포함된 것은 그간 이 자리가 외부 인사로 채워지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 제도는 쌓이고, 비위도 쌓이고
농협의 내부통제 강화 시도는 꾸준히 이어져 왔다. 2004년 중앙회에 준법감시인 제도를 도입했고 2008년부터는 감사시스템(NH-NAS)을 개발해 사고위험 대응력을 높이려 했다. 2012년 신경분리와 함께 농협금융지주는 윤리강령을 제정했다. 지난해에는 농협법 개정으로 전국 915개 지역농협에도 내부통제기준이 법제화됐고 자산 500억원 이상 조합의 외부 회계감사 주기를 4년에서 1년으로 단축했다.
그러나 1990년 민선 회장 시대 이후 역대 중앙회장 7명 중 6명이 수사를 받거나 사법 처리됐다. 한호선 전 회장은 비자금 조성, 원철희 전 회장은 횡령, 정대근 전 회장은 뇌물 수수로 각각 처벌됐다. 최원병 전 회장은 특혜대출 혐의로 수사를 받았고, 김병원 전 회장은 불법선거로 당선무효형이 확정됐다. 현 강호동 회장에 대해서도 수사가 진행 중이다. 제도가 추가될 때마다 '내부통제 강화'를 외쳤지만 비위는 반복됐다.
■ 시장에 노출된 크레디 아그리콜 지주사
앞서 1편 <<a href="https://news.mtn.co.kr/news-detail/2026041415292827250" target="_blank">프랑스 농협은 어떻게 권력을 쪼갰나>에서 다룬 크레디 아그리콜(CA)의 금융 계열사들은 유럽중앙은행(ECB)과 프랑스 금융당국(ACPR)의 감독을 받는다. CA는 국제 채권을 발행하기 때문에 신용평가를 받고 미국에 지점을 두고 있어 연방준비제도(Fed)의 감시 대상이다.
농협금융지주도 금감원 감독을 받고 농협은행 또한 은행채를 발행해 무디스·피치 등급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금융 계열사의 외부 감시만 놓고 보면 둘의 차이가 크지 않다.
핵심은 최상위 기구의 투명성이다. CA는 2001년 지주회사 자체를 파리 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조직의 꼭대기에 있는 지주회사가 분기마다 사업부문별 수익을 공개한다. 외부 주주가 전체 지분의 46%를 보유하고 있어 회사의 실적과 전략을 대외적으로 설명해야 하는 구조가 상시적으로 작동한다.
농협에서 이 위치에 있는 것은 중앙회다. 중앙회가 양대 지주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수조원 규모의 자금 배분 권한을 행사한다. 그런데 중앙회는 협동조합이라 금감원 관할이 아니고 공시 의무도 없으며 외부 주주도 없다. 특히 농업지원사업비나 무이자자금 등 자금 배분의 세부 내역이 정기적으로 공개되지 않는다. 정부 감사에서 주 타깃이 된 곳은 바로 중앙회였다.
■ 다층 감시 체제로 적발한 비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10년 넘게 이어진 크레디 아그리콜에 대한 제재를 종료한다고 지난달 9일 발표했다. / 연방준비제도 홈페이지 갈무리
CA도 비위에서 자유롭지는 않았다. CA는 지난 2003년부터 2008년까지 미국이 경제 제재를 건 국가들과 불법 달러 거래를 해온 사실이 적발돼 총 7억8700만 달러의 벌금을 물었다. 주목할 점은 이후의 경과다. 연준은 CA에 10년 넘게 분기별 컴플라이언스 보고를 의무화했고 미국 당국이 선정한 독립 컨설턴트를 상주시켜 내부 체계를 점검하도록 했다. 과거 위반 관련자의 재고용도 금지됐다. 지난달 연준이 제재를 해제한 것은 CA의 내부통제가 충분히 개선됐다고 판단한 결과다.
프랑스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프랑스 금융당국은 CA 지역은행에 대한 정기 현장검사에서 자금세탁 방지 체계 미흡을 적발해 2017년 아틀란티크 방데 지역은행에 200만유로, 2022년 랑그도크 지역은행에 150만유로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지난해에는 탈세 관련 합의금 8820만유로, 올 2월에는 기후리스크 공시 위반으로 755만유로가 추가됐다.
비위 자체는 어느 조직에서든 발생할 수 있다. 차이는 그 뒤에 있다. CA에서는 연준, 금융당국, 외부 주주, 시장 공시라는 복수의 경로가 문제를 적발하고 시정을 강제한다. 농협중앙회에서는 이번 비위가 내부에서 먼저 걸러지지 못했고 정부가 합동감사에 나선 뒤에야 수면 위로 올라왔다.
■ '감시 사각지대' 중앙회, 어떻게 고칠까
농협 내 금융 계열사의 외부 감시 수준은 CA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사각지대는 중앙회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대책으로는 다음 몇 가지가 거론된다.
첫째, 중앙회의 자금 배분 내역이나 주요 의사결정 등 경영 정보를 정기적으로 외부에 공개하도록 하는 것이다.
둘째, 중앙회 소속이 아닌 독립적인 외부 감사기구를 설치하는 방안이다. 정부가 추진 중인 '농협감사위원회'가 이에 해당한다.
셋째, CA처럼 지주회사를 상장해 시장 감시를 강화하는 안이다. 다만 CA는 순수 금융기관이고 농협은 금융·유통·축산·물류를 아우르는 복합 조직이라는 차이가 있어 단순 적용에는 한계가 따른다. 이에 대해서는 3편에서 상세히 다룬다.
농림축산식품부 농협개혁추진단의 일원인 김기태 한국협동연구소 이사장은 이 가운데 감사 기능 분리를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김 이사장은 "사업, 지원, 감사를 중앙회 한 조직 안에 통합해 놓으면 자신들에게 불리한 부분은 고치지 않게 된다"며 "지난해 말과 올해 초 특별감사에서도 지적 사항을 시정하지 않고 방치한 사례가 비일비재했다"고 언급했다.
상장에 대해 김 이사장은 "중앙회 100% 지분 체제를 시도연합회 등으로 분산하는 구조 개편이 선행되면 향후 위기 시 자본 확충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해 금융지주를 상장하는 가능성을 열어둘 수는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