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향 뒤의 청년 노동 [세상읽기]

한겨레 2026. 4. 16.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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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한 카페의 커피. 연합뉴스

전수경 |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오늘도 커피를 마신다. 커피 열매는 먼 곳으로부터 오고 재배와 유통의 모든 여정에 사람의 노동이 안 닿는 곳이 없겠지만 우리는 거의 마지막 단계에서 커피 잔에 담기는 음료로서 커피와 커피를 마시는 카페의 분위기를 소비하고, 그건 그 일을 하는 노동자가 있어서 가능하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싶어서 사람들이 찾는 도시, 강릉에서 책자가 한권 도착했다. 강릉의 시민과 노동자들이 꾸려가는 ‘강릉노동인권센터’에서 지난해 커피 내리는 바리스타와 커피를 서빙하고 카페 공간을 가꾸는 청년 노동자 20여명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 ‘강릉, 커피향을 채우는 사람들’이라는 인터뷰집으로 엮어낸 것이다.

‘강릉노동인권센터’에서 엮어낸 인터뷰집 ‘커피노동자 20인의 기록-강릉, 커피향을 채우는 사람들’.

인터뷰에 참여한 사람들 중에는 커피가 좋아서 커피를 전문적으로 공부한 뒤 강릉으로 이주한 이들이 여럿 있었다. 바리스타라는 직업을 좋아하고 커피 맛에 진심인 이들은 고가의 도구에 투자하고 바리스타 경연대회에도 나간다고 했다. 물론 막연히 커피를 배우기 위해 강릉으로 온 이들과 그저 아르바이트로만 카페에서 일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경연대회에 나가는 바리스타와 아르바이트로만 일하는 이들이 겪는 카페 노동자로서의 고충은 거의 비슷했다. 개인 카페에서 일하던 바리스타 노동자는 박봉에 휴가나 복지가 없는 환경에 지쳐서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로 이직했다고 했다. 기업형 대형 카페는극소수 정규직만 주 40시간 노동을 할 수 있을 뿐 대부분은 주 25시간 계약의 비정규직으로 일하는데, 그래도 근로계약서가 있고 4대 보험이 있어서 개인 카페보다는 만족스럽다고 했다. 사실 기업형이 아닌 경우, 지역 유명 카페들도 휴가나 4대 보험이 없는 형편은 비슷했고, 주 15시간 미만의 쪼개기 계약으로 주휴수당이나 퇴직금을 주지 않는 곳, 근로계약 대신 3.3% 사업소득세를 떼는 개인사업자 계약을 하는 곳도 많았다.

카페들은 관광객이 몰리는 성수기에는 근무시간을 늘리지만 초과 수당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고, 비수기에는 근무시간을 줄이는 유동적인 스케줄 근무를 도입해서 인건비를 줄이는 경우가 많았다. 노동자들에게 알리지 않고 키오스크부터 설치해서 갑자기 일의 강도가 높아지기도 했다. 키오스크가 생기고부터 주문 속도가 빨라지고 줄이 길어져서 고객 응대도 힘들어졌는데 카페 사업주가 노동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거나 협의를 하는 경우가 없었다. 커피 내리는 법을 배우고 싶어서 대형 카페에 들어갔지만 도제식 시스템 때문에 수개월에서 길게는 1년까지 설거지와 서빙, 청소를 하다가 버티지 못하고 나오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이는 강도 높은 육체노동을 청년들의 저임금 노동으로 메우는 악순환에 대해서 말한 것으로 이해됐다. 저가 커피 브랜드 카페에서 일하면서 텀블러 보증금 300원을 500원으로 착각해서 계산하는 바람에 잘렸다는 청년도 있었다. 200원의 손실 때문에 해고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기계로 커피를 추출하는 일은 숙련이 없어도 가능한, 언제라도 대체될 수 있는 일이라서 잘린 것 같다고 스스로 분석을 덧붙이기도 했다.

‘강릉, 커피향을 채우는 사람들’에 실린 이야기들은 특정 도시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그래도 강릉시에는 커피와 커피 연계 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커피산업 육성 및 지원을 위한 조례’가 있다. 조례가 있을 만큼 커피산업 성장의 의지가 있다면 당연히 그 안의 노동자 처우에 관심을 둬야 한다. 인터뷰에 참여한 청년들은 조례에 대해서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부분 처음 들었다고 했다. 조례가 있는데 그 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에 대한 교육이나 지원이 왜 없는지 반문하기도 했다. 커피 산업의 외형이 커지고 커피값이 올라가는 이면에, 개인사업자 계약으로 위장된 ‘가짜 3.3 노동’처럼 노동조건을 악화하는 관행만 확산되고 산업의 밑바닥을 지탱하는 노동은 왜 소모품으로만 보는 것인지 답답해했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자체만의 청년 일자리를 만든다는 공약들이 발표되고 있다. 그러나 단시간 노동을 초단시간 노동으로 쪼개고, 노동법에 따라 응당 주어야 할 수당, 휴게시간, 4대 보험도 안 챙기는 나쁜 일자리를 그대로 둔다면 어떤 지원정책을 낸들 의미가 있을까. 이미 존재하는 노동을 존중하고 성장하도록 돕지 못하는 일자리 공약이 의미가 있을까. 강릉으로부터 온 청년노동자들의 이야기에서 배우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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