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자신을 지키는 배우, 송일국

김지은 기자 2026. 4. 16. 0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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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헤이그>를 끝내면 알을 깨고 나갈 것 같아요.” 데뷔 29년차에 꺼내 놓은 송일국의 진심. 
 사진 이종현(이오이미지)

[우먼센스] 배우 송일국을 설명하는 수식어는 늘 화려했다. 고구려를 세운 <주몽>이었고, 온 국민의 사랑을 받은 '삼둥이' 대한·민국·만세의 아빠였으며,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는 묵직한 이름표를 달고 살았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단순하다.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것. 1998년 데뷔해 29년 차 중견 배우이지만 여전히 "배우는 선택받는 사람"이라며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아버지로서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고 한다. 또 독립운동가 김좌진 장군, 정치인 김두한의 후손이니까 역사 선양사업에 정성을 쏟는다. 

그가 뮤지컬 <헤이그>에 오른다. 극은 1907년 일본의 부당한 침략을 알리기 위해 떠났던 헤이그 특사 파견을 기반으로 한다. 특사단 리더 '이상설(송일국·오만석·원종환 분)'을 돕는 또 다른 특사들이 있었다는 상상력이 더해졌다. 송일국에게 <헤이그>는 배역 이상의 의미다. 그에게 나라를 위해 스스로를 던진 인물들의 삶은 뿌리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기교보다 진심을 전하고 싶다는 그와 마주 앉았다.

송일국이 무대로 향한 이유

<헤이그>는 <맘마미아!>·<애니>·<브로드웨이 42번가>에 이은 4번째 뮤지컬입니다.  
제작사 대표님께서 <맘마미아!> 속 저를 보시고 출연을 제안하셨어요. <맘마미아!>에 출연하는 초반엔 "너무 힘들다"면서 했었는데, 무대 위 제 모습을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헤이그 특사를 모티브로 한 좋은 작품에 참여할 수 있게 돼 기뻤죠. 

그룹 'god' 멤버 김태우가 프로듀싱을 맡아 화제를 모았습니다. 음악에 대한 기대도 크고요. 
모든 노래가 좋아요. 물론 부르는 배우 입장에선 반음 사이를 오가는 구간이 많아서 음정을 정확히 하는 게 쉽지 않아요. 8마디를 하루 종일 연습한 적도 있을 정도죠. 뮤지컬을 하면서 보컬 부분이 아쉬워서 보컬 트레이닝을 받고 있어요. 뮤지컬 배우 홍지민에게 소개받은 성악가 선생님께 6개월 전부터 배우고 있는데 발성이 좋아졌고 음역대도 올라갔어요.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죠.

굉장한 노력파입니다. 
요즘 신인 때로 돌아간 느낌이에요. 저는 TV에서는 중견 배우라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테크닉들이 있는데 무대 에서는 테크닉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어요. 음정과 박자, 가사에 집중하고 등장하고 퇴장하는 순간까지 고려해야 하죠. <헤이그>는 트리플 캐스팅이라 배우마다 캐릭터를 다르게 표현해요. 다른 배우가 잘하는 부분을 따라 하기도 하면서, 알게 모르게 피 튀기는 경쟁이 있어요. 즐겁게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제 이름 앞에 '배우'라는 타이틀이 붙는게 부끄러웠어요.
천생 배우인 어머니 김을동을 보며 저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꼈거든요.
무대 위에서 연기하며 부끄럽지 않은 배우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29년차 중견 배우가 신인의 마음을 갖기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솔직히 말하면 저는 그동안 제 이름 앞에 '배우'라는 타이틀이 있는게 부끄러웠어요. 왜냐하면 어머니(배우 김을동)에 비하면 저는 부족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머니는 유동근, 전광렬, 전인화 배우의 연기 지도 선생님이셨고 배우로 활동하는 동안 연기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어요.
예전에 어머니가 촬영을 끝내고 밤늦게 집에 오셔서 드라마를 보고 계시더라고요. 걱정되는 마음에 "내일 새벽에 나가셔야 하니까 어서 주무세요"라고 했더니 어머니가 "연기도 트렌드야. 끈을 놓지 않으려고 보는 거야"라고 하셨어요. 천생 배우죠. 그런 어머니의 끼를 여동생(SBS 공채 2기 탤런트 송송이)이 물려받았어요. 운이 좋아서 동생보다 유명해졌지만 사실 저에겐 단 하나의 끼도 오지 않았어요.(웃음) 그래서 늘 "나는 연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했어요. 

집에 최고의 과외 선생님이 있었는데, 연기 지도를 받은 적 있나요? 
어머니는 선배들에게 연기를 가르칠 때 큰 소리를 내신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아들한테는 욕심이 나셨는지 엄격하게 지도하셨어요. 그러면 저는 기분이 상해 "엄마한테 안 배워요"라면서 자존심을 세웠고요. 좋은 기회를 뻥 차버린 거죠. 제가 갑자기 인기를 얻었다고 아는 분들도 있지만, 신인 때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현장에서 많이 혼났고 연기가 어려워서 1년 동안 활동을 쉰 적도 있어요. 운이 좋아서 <주몽>으로 연기대상을 받고 배우로 활동할 수 있었죠. 

그러다 2011년 고 윤석화가 연출한 연극 <나는 너다>를 통해 연극무대에 올랐죠.
<신이라 불린 사나이>를 마치고 "멋있는 역할을 했는데, 내면 연기는 없네"라며 허무함을 느낄 때 쯤이었어요. 윤석화 연출가님에게 연락이 왔어요. 안중근 선생님 관련 연극을 준비하시는데, 안중근 선생님의 발자취를 따라다니시다 제가 '청산리 역사대장정(중국 북만주 일대 항일독립투쟁 전적지와 고구려 발해 유적지 등을 탐방하는 역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걸 들으셨대요. 안중근 역으로 제격이라고 생각하신거죠.

 사진 이종현(이오이미지)

당시 사비로 모든 출연자를 중국 동북 지역으로 데리고 가셨다고요. 
사실 석 달 동안 받은 연극 출연료가 <신이라 불린 사나이> 한 회 출연료도 되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눈으로 보면 역사의식이 바뀐다는 걸 아니까 첫공연을 한 달 앞두고 무리해서 모두 데리고 갔죠. 그렇게 열심히 준비했는데 막상 리허설할 때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본 리딩은 완벽하게 했는데 야외 무대 위에 서니까 당황해서 동선이 꼬였어요. 당장 내일이 첫 공연인데 눈 앞에 깜깜했죠. 그 순간 어머니밖에 떠오르지 않았어요. 절박한 마음으로 어머니를 다시 찾아가 밤새도록 연습했어요. 그 작품을 하면서 저의 배우 인생이 180도 달라졌죠. 

배우로서 배움에 끝이 없다는 걸 깨달았군요. 
당시 박정자 선생님이 함께 무대에 올랐는데, 그 열악한 무대 위에서도 관객에게 대사가 '칼날' 같이 꽂혀요. 의미가 정확히 전달되도록 연기하시는 거죠. 배우가 감정이 과잉되면 관객이 감동하지 않고, 감정을 조절하면 감동한다는 말이 있어요. 의미 전달이 중요한데, 감정이 과하면 혀가 꼬여서 대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거든요. 그래서 저는 대본을 받으면 제일 먼저 국어사전에서 단어 하나하나의 발음기호를 찾아 적고, 아나운서처럼 정확한 발음으로 읽어요. 그 뒤 감정을 더하고, 음정을 익히죠. 노래가 부족해도 의미가 전달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무대 위에서 연기하며 부끄럽지 않은 배우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이번 공연을 통해 듣고 싶은 평이 있나요? 
아무런 평도 듣지 않고 싶어요. 아직도 저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는데, <헤이그>를 마치면 저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올 것 같아요. 발성이나 음역대 등 여러 부분에서 전보다 더 나아지고 있는 걸 느껴서, 더 자신감있게 하려고 합니다. 

사진 박정훈(이오이미지)

'삼둥이' 아빠가 말하는 좋은 육아

가족들은 <헤이그>를 관람했나요?
첫 공연날에 가족 모두 관람하는게 전통인데, 이번엔 스케줄이 맞지 않아서 아내가 먼저 보고 주말에 어머니와 삼둥이가 관람했어요. 어머니는 노래할 때 톤과 연기할 때 톤에 차이가 있다고 하셨어요.(웃음) 더 노력해야죠.

아내와 아들의 반응도 궁금합니다. 아내 정승연 판사는 광주지방법원과 솽주가정법원 순천지원에서 법원 밴드부 회장을 지냈고, 민국이는 작곡 공부에 관심 갖고 있죠. 
집에서 아내는 음악감독으로, 민국이는 음악 조감독으로 있습니다. 제가 연습하는 걸 듣고 음정이 조금이라도 안 맞으면 바로 피드백을 해줘요. 혹독하게 연습할 수밖에 없죠.(웃음) 아내는 음악적 감을 타고 났어요. 경연 프로그램을 보면서 툭툭 한마디씩 내뱉는데, 그 말을 심사위원들이 똑같이 하곤 해요. 저로서는 신기하죠. 아내의 피를 민국이가 물려받아서 작곡 공부를 하려고 해요. 처음엔 "공부를 더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민국이가 하고 싶다는 걸 지원하기로 했어요.

 사진 이종현(이오이미지)

부모로서 자식 일엔 걱정이 앞서죠. 
감사하게도 어머니는 늘 제가 하고 싶다는 걸 지원해주셨어요. 덕분에 저는 미대에 가려고 4수를 했죠. 지금 생각하면 어머니 속은 썩어 문드러지셨을 것 같아요. 저도 어머니처럼 아들들이 하고 싶다는 걸 믿고 지원하려고 해요. 누구나 좋아하는 걸 할 때 가장 행복하니까요.

대한이와 만세는 어떤 장래희망을 갖고 있나요? 
대한이는 사춘기가 세게 와서 한동안 공부를 안한다고 학원을 가지 않았는데 다행히 잘 수습됐어요. 만세는 <유퀴즈>에서 홍대 미대에 가고 싶다고 했는데 포기했어요.  대한이가 그림을 잘 그리는 편인데 "저렇게 잘 그리는 애도 미대에 간다는 소리를 안하는데…"라면서 꿈을 접었죠. 요즘엔 유튜버에 관심을 갖는 것 같아요.

좋은 육아를 하는 단 하나의 원칙은 부부가 행복해야 된다는 것이에요.
부부가 행복하면 아이들은 알아서 잘 자랍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통해 '국민 아빠'가 됐습니다. 송일국의 삼둥이 육아는 '아빠 육아'의 패러다임을 바꿨죠. 
저도 사실 삼둥이가 돌이 될 때까지 육아는 내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아내와 저는 4년동안 신혼을 보내며 단 한번도 말다툼을 하지 않았는데 삼둥이가 태어나고 사소한 싸움이 생기더라고요. 저도 은연 중에 "내가 이렇게 많이 육아를 돕는데 아내는 왜 화를 낼까?"라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아내는 임신과 출산으로 제 역할을 다 했잖아요. 그러면 육아는 나의 몫인 거예요. 이렇게 생각을 바꾸고 나니까 아내에게 건네는 한마디도 달라지더라고요. 퇴근 후에 "나도 좀 쉬자"가 아니라 "여보, 고생했어. 내가 아이들을 돌볼게"가 된 거죠. 

좋은 육아란 무엇일까요?
단 하나의 원칙은 부부가 행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부부는 신혼 때부터 만약 상대에게 날카로운 말이 나올 때 절대 반말로 하지 말고 존댓말을 하자고 약속했어요. 지금도 화날 땐 "여보님, 대화 좀 해요"라고 하는데, 만약 "이리로 와봐"라고 했으면 본질을 벗어나 부부싸움을 했을 거고, 지켜보는 아이들에게 영향이 갔을 거예요. 부부가 행복하면 아이들은 알아서 잘 자라요. 

 사진 이종현(이오이미지)

화라는 감정을 컨트롤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저는 "지는 게 이기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오랜 시간 동안 가정을 위해 감정을 컨트롤하는 절 지켜본 아내에게 '남편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이 생겼을 거예요. 시간이 만들어준 신뢰는 어떤 것도 이길 수 없다고 믿어요. 선대들이 잘 살아준 덕분에 제가 배우로 이름 석자를 알릴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선대에게 보답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은 이들에게 행복한 가정을 보여주는 것 뿐이에요. 많은 분들이 닮고 싶은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게 저의 소명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아내에게 좋은 남편이자 자식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돼야 하고, 내 일에 충실하며 살아야 해요. 이게 제가 열심히 사는 이유입니다. 

언제 가장 행복하나요? 
가족들이 다 모여서 밥 먹을 때요. '삼둥이'가 말도 안되는 농담을 주고받고, 그 대화를 들은 아내는 "깔깔깔" 웃는 상황이 좋아요. 어느 날엔 방 안에서 식탁에 마주 앉은 가족들의 대화를 듣는데 저도 모르게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어요. 많은 분들이 "어떻게 세 명을 키웠어요?"라고 묻는데, 정말 힘들었지만 정말 행복했어요. 만약 누군가가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절로 돌아갈래?"라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돌아갈 거예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송일국을 지탱하는 한 마디는 무엇인가요? 
"천국은 내 마음 안에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세요.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김지은 기자 a051903@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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