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북한 '외화벌이 돈세탁' 이렇게 했다... 암호화폐 회사 SNS로 모객

정지용 2026. 4. 16.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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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객→텔레그램 거래→암호화폐 환전 3단 구조
美 제재에도 계정 방치…250만 달러 북한으로
“디지털 환치기 네트워크, 국제 공조 없인 차단 어려워”
북한 자금 세탁 구조

“미국인 명의 페이오니어 계좌 구합니다. 단 본인 인증 완료해야 함.”

베트남 소재 온라인 금융업체 '콴비엣드앤비지 인터내셔널(콴비엣)'이 지난해 9월 22일 텔레그램 채널에 올린 글이다. 전자 결제 플랫폼 페이오니어의 실명 계좌를 사겠다는 ‘대포통장’ 매입 공고다. 콴비엣은 북한 자금 세탁에 가담한 불법 업체다.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지난달 12일 평양 소재 '압록강 기술개발회사(압록강)'와 콴비엣을 대북제재 목록에 올렸다. 압록강은 해외에 북한 정보기술(IT) 기술자를 위장 취업시켰고, 콴비엣은 기술자들이 받은 임금을 세탁해 북한으로 송금했다.

콴비엣드앤비지 인터내셔널의 페이스북 공식 계정. 북한 자금세탁 가담 업체라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화려하고 전문적으로 기업을 홍보하고 있다. 페이스북 캡처

재무부는 “콴비엣과 회사 대표 응우옌 콴비엣은 북한을 위해 250만 달러(약 37억 원)를 암호화폐로 환전해 줬다”며 “조직적으로 미국 기업을 속여 대량살상무기(WMD) 자금을 조달하는 사기행각을 벌였다”고 했다. 제재로 이들의 미국 내 자산은 모두 동결됐고, 관련된 모든 거래도 금지됐다.

15일 본보 취재 결과 베트남 당국은 미국 제재 직후 콴비엣의 사업자등록을 말소했다. 그러나 이들이 운영하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스북 계정과 텔레그램 채널은 접속 가능한 상태로 방치됐다. 이 SNS 게시물을 분석해 본보가 재구성한 콴비엣의 활동은 ‘페이스북 모객→텔레그램 거래→암호화폐 환전 후 송금’의 3단계로 요약된다. 누구나 접근 가능한 SNS 공간이 북한 핵 개발 자금 조달 통로로 활용된 정황이다.

콴비엣이 텔레그램 채널에서 '페이오니어 대포통장'을 구하는 모습. 미국 재무부는 콴비엣이 이 같은 방식으로 250만 달러를 북한으로 송금했다고 밝혔다.

'전문 기업' 가장하고 암호화폐 환전

페이스북은 이들의 ‘모객 창구’였다. 콴비엣은 해맑게 웃는 아이 사진을 내걸고 자사를 “페이오니어-암호화폐 거래 허브”, “업계에서 신뢰받는 전문적 선두 기업”이라고 포장했다. 이어 페이스북에 연결해 둔 텔레그램 채널에서 실제 거래를 이어갔다. 북한은 미국 제재로 국제 금융망에 접근할 수 없어, 자금 세탁을 거쳐야 해외에서 돈을 받을 수 있다.

텔레그램 채널은 운영자만 글을 남길 수 있는 ‘공지 전용’ 구조였다. 가입자는 1,345명. 운영자는 2022년 9월 첫 글로 암호화폐 거래를 알렸다. 이후 암호화폐 보유량, 환전 수수료, 거래 내역 등을 공개하며 신뢰를 쌓았다. “(암호화폐 거래 플랫폼) 팍스풀 피드백 1만 건을 달성했다”며 “1,000달러 이상 거래한 10명에게 10달러씩 증정하겠다”고 ‘감사 이벤트’도 했다.

콴비엣이 암호화폐 거래 플랫폼 '팍스풀' 거래 1위를 했다고 공지하고 있다.
콴비엣이 자신들의 '페이크 계정'이 발견됐다면서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콴비엣이 어린이들에게 자전거 50대를 기부했다고 선전하고 있다.

동시에 ‘대포통장’ 매입에도 적극 나섰다. 이들은 “페이오니어 계좌를 대량으로, 정기적으로 판매할 공급책을 찾는다”고 공고했다. 페이오니어는 구글·아마존·에어비앤비 등이 해외 직원에 임금을 지급할 때 사용하는 계좌를 제공한다. 미국인 명의 대포통장이 추적을 피하는 데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콴비엣의 활동 어디에서도 북한을 떠올릴 흔적은 없었다. 대신 소외계층에 자전거를 기부한 영상을 올리거나, 창업 2주년 기념 파티 사진을 올리며 건실한 IT업체 행세를 했다.

전문가의 평가는 달랐다.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당국의 허가 없이 이뤄지는 디지털 환치기”라며 “북한 IT기술자가 벌어들인 수익을 중간에서 세탁해주는 고위험 자금 중계 업체, 즉 환전 브로커 역할로 보인다”고 했다.

페이스북 계정에서 '페이오니어 계좌를 60달러에 판매한다'는 글. 페이스북 캡처

대담한 행각에도 추적 어려워..."국제 공조 시급"

콴비엣의 대담한 자금 세탁은 베트남이 암호화폐 관리 사각지대라 가능했다. 베트남은 암호화폐 사용률이 세계 2, 3위권이지만 공식 거래소가 없어 페이스북, 텔레그램 등을 통한 개인 간 거래가 일상적이다. 북한은 이 같은 음성적 거래 환경에 침투해 자금 세탁 통로를 구축한 것이다.

문제는 북한으로 유입되는 자금은 커지고, 추적은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미국 재무부는 콴비엣 제재를 발표하며 “북한은 2024년에만 약 8억 달러(약 1조1,800억 원)에 달하는 자금을 빼돌렸다”고 했다. 북한이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사용하는 외화 상당수가 암호화폐 탈취·사기·세탁으로 조달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본보가 페이스북에서 ‘페이오니어 익스체인지’를 키워드로 검색한 결과 200여 개의 관련 계정이 나타났다. “본인 인증을 마친 페이오니어 계정을 60달러에 판매한다” 등의 글도 쉽게 확인됐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미국 정부는 북한을 추적하기 위해 현상금을 거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계정 확인 등 (절차가 복잡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어렵다"고 했다.

국경을 넘은 북한의 자금 세탁을 차단하기 위해선 국제적인 협조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황 교수는 “북한은 자금 세탁을 위해 베트남뿐만 아니라 라오스, 스페인 등 전 세계에 서버와 운영 인력을 분산시켜 추적을 피하고 있다”며 “개별 국가의 단속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한 만큼, 국제적인 실시간 공조망 구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하노이= 정지용 특파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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