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3만km 이동하는 '하늘의 마라토너'… '생존 쉼터' 수라갯벌 꼭 지켜내야
매년 3만㎞ 비행하는 '큰뒷부리도요'
새만금 간척으로 갯벌 파괴돼 떼죽음
'수라갯벌'에 여전히 생명들 숨 쉬지만
마지막 원형 갯벌, 신공항 탓 파괴 위기

큰뒷부리도요를 맞이하는 환영식이 4일 수라갯벌에서 열렸다. 전날부터 당일 아침까지 계속 내리던 비는 놀랍게도 환영식 바로 직전에 멈췄고, 날이 화창하게 개었다. 하늘도 도요새들의 무탈한 여정을 응원하는 것 같았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100여명의 사람들은 한 마음 한 뜻이었다. 수라에 이미 도착한 큰뒷부리도요들을 환영하고, 남반구에서 바다 건너 아직 날아오고 있는 큰뒷부리도요를 응원하고 환영하는 마음.
도요새는 지구상에서 가장 경이로운 이동을 하는 새이다. 뉴질랜드, 호주에서 출발해 한반도 서해안 갯벌로 날아와 1개월 남짓 쉬었다가 러시아 툰드라, 북미 알래스카까지 날아가 번식을 하고, 다시 남반구로 내려가는 수만㎞의 여정을 매년 이어간다. 많은 종의 도요새 중에서도 큰뒷부리도요의 여정은 더욱 놀랍다. 멈추지 않고 수만㎞를 날아가는 '하늘의 마라토너'로 알려진 큰뒷부리도요는 알래스카에서 번식을 마친 후 8월 말, 9월 초에 출발, 태평양을 종단해 뉴질랜드까지 논스톱으로 날아간다.

큰뒷부리도요가 도대체 어디로 이동하는지 그 비밀스러운 여행 루트를 알고 싶었던 미국 조류학자들은 2007년, 무선발신기를 피부밑에 장착한 큰뒷부리도요 9마리를 알래스카에서 날린 뒤 인공위성으로 이들의 경로를 추적했다. 알래스카에서 출발한 큰뒷부리도요 무리는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태평양을 종단해 뉴질랜드와 호주 동부로 날아갔다. 알래스카에서 8월 30일 이륙한 큰뒷부리도요는 8일 동안 1만1,680㎞를 쉬지 않고 날아 9월 7일 저녁 뉴질랜드 습지에 착륙했다. 평균 시속 60㎞의 속도로, 1만㎞가 넘는 망망대해 상공을 8~9일 동안 먹지도 않고, 쉬지도 않고 비행한 것이다.
큰뒷부리도요는 1년간 3만㎞가까이 비행한다. 뉴질랜드에서 서해 갯벌까지 1만㎞를 날아오고, 서해 갯벌에서 알래스카까지 7,000㎞를 다시 날아간다. 알래스카에서 번식을 마친 뒤 다시 뉴질랜드까지 1만2,000~1만3,000㎞를 날아간다. 각각의 여정은 모두 논스톱. 경이롭다.

내비게이션도, 지도도 없이, 이들은 과연 어떻게 정확하게 자신이 가야 할 곳으로 찾아갈 수 있을까? 별자리를 보면서 찾아간다는 설도 있고, 지구의 자기장의 흐름을 감지하여 이동 방향을 결정한다는 연구도 있고, 수만년에 걸쳐 이어져 오는 유전자 정보를 통해 이동한다는 연구도 있지만, 여전히 인간은 도요새들의 신비한 능력을 다 알지 못한다.
큰뒷부리도요는 알래스카에서 뉴질랜드로 남하할 때는 지상 2,000~3,000㎞에서 기류를 타고 논스톱으로 날아가지만, 뉴질랜드에서 알래스카로 북상할 때는 동아시아 황해 갯벌에서 쉬었다 간다. 몇 주 동안 쉬면서 충분히 먹이를 먹어야 번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서해안 갯벌은 도요새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중간 기착지, 휴게소이다. 만경강, 동진강 하구 갯벌은 세계 최대 갯벌 중 하나였고, 새만금간척사업으로 이 갯벌이 파괴되면서 수많은 도요새가 목숨을 잃었다. 과거에 흔히 볼 수 있었던 붉은어깨도요는 전 세계 개체수의 90%가 새만금 사업으로 인해 급감하여 멸종위기 2급이 되었다.

2006년 6월. 부안 계화도 갯벌에 갔던 때를 잊지 못한다. 새만금 방조제 물막이 공사가 완료된지 한달 뒤였다.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아 딱딱하게 굳어 쩍쩍 갈라진 갯벌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조개들이 입을 벌린 채 죽어 있었고, 곳곳에 도요새들의 주검이 있었다. 갯벌이 마르자 갯지렁이, 조개, 게들이 죽었고, 뉴질랜드에서 한국까지 일주일에서 열흘간 쉬지 않고 날아온 도요새들은 아사해 있었다.
계화도에 다녀온지 한달 뒤, 뜻밖의 비보를 들었다. 나에게 먹을 것과 따뜻한 잠자리를 제공해주었던 어민 류기화씨가 갯벌에서 익사했다는 소식이었다. 방조제 문이 예고없이 열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갯벌에 관한 영화를 만들려던 나는 충격과 상실감으로, 만들려던 영화를 포기했다. 당시 촬영한 영상 테이프를 캐비넷에 넣어둔 채 십 수년간 보지 못했다. 새만금은 나에게 트라우마였다.
그런데 9년이 지나, 잊어버리려 애썼던 새만금 한복판, 군산에 개인적인 사정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고, '수라'라는 갯벌이 아직 살아있음을 알게 되었다. 죽어가는 갯벌을 외면하고 잊고 있었던 미안함, 아직 살아있는 생명들에 대한 고마움이 가슴에서 소용돌이쳤고, 나는 수라에 간 첫날 무작정 촬영을 시작했다. 7년 반에 걸쳐 제작된 영화 <수라>의 시작이었다.

긴 시간 동안 이 영화를 만들면서 뉴질랜드 선주민, 마오리족을 많이 생각했다. 마오리족은 큰뒷부리도요를 따라가 육지를 발견했고 그래서 큰뒷부리도요, 마오리어로는 '쿠아카'를 조상으로 여기며 소중하게 여긴다고 했다. 2003년, 새만금간척사업으로부터 갯벌을 지키기 위한 운동이 한참 치열했을 때 마오리족은 한국에 와서 부안 해창갯벌에 장승을 세웠다. 쿠아카가 쉬었다 가는 한국의 갯벌이 반드시 지켜지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나는 한번도 만난 적 없는 마오리족과 강한 연대감을 느꼈다.

평화바람,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등 수라의 친구들이 3월 말 뉴질랜드로 가서 마오리족을 만나고 돌아왔다. 지구 반대편에서 온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마오리 분들이 건넨 첫 인삿말은 "집에 돌아온 것을 환영합니다"였다고 한다. '쿠아카는 우리의 조상이자 가족이므로 쿠아카가 머무는 지역에서 온 너희들 역시 우리에게는 가족과 다름없다'는 뜻에서 한 인사말이었다.
3월 말, 마오리족은 쿠아카가 한반도 서해안을 거쳐 알래스카에서 번식을 잘 마치고 무사히 뉴질랜드로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환송식을 열었다. 쿠아카에 대한 무한한 경외감과 사랑으로 가득한 그 자리에서 영화 <수라> 상영회가 열렸다. 수라의 친구들과 마오리족 공동주최였다. 이 영화를 통해 마오리족과 연결되고 싶었던 나의 오래된 꿈이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수라> 막바지 작업을 할 때 영화 제작비는 바닥이 나고 체력도 소진되어 너무나 힘들었다. 그러나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나는 내가 장거리 비행을 하는 도요새라고 생각하며 그 시간을 이겨냈다. 그렇게 완성한 이 영화를 보고 한 어린이 관객이 이런 소감을 남겼다. "도요새가 머나먼 여정을 날아가는 것을 보니까 우리도 도요새처럼 먼 길과 험한 길도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다른 어린이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객석 앞으로 뛰어나오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 영화를 보고 배운 것이 있어요. 포기하지 않는 힘을 배웠어요." 어린이들은 영화를 보고 힘을 내고, 나는 도요새, 쿠아카를 보며 힘을 낸다.
새만금 마지막 원형 갯벌, 수라갯벌이 새만금신공항으로 파괴될 위기에 놓여 있다. 새만금신공항 기본계획 취소 소송에서 수라의 친구들은 1심 승소를 이끌어냈다. 국토교통부는 항소했다. 길고 험난한 싸움이다. 그러나 우리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위대한 새, 쿠아카의 여정은 계속되어야 하고, 그 경이로운 비행을 멈추게 할 권리가 인간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황윤 다큐멘터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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