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욕하다니” 멜로니마저 트럼프 손절나서

파리/원선우 특파원 2026. 4. 16.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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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납할 수 없어” 이틀 연속으로 비판
이스라엘과 국방 협정 연장 거부도
“‘트럼프는 우리의 적' 여론 절반 넘어“
佛·英 등 유럽 우파들도 거리두기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FP 연합뉴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최근 이란 전쟁과 관련해 교황 레오 14세를 비판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해 14일(현지 시각) “종교 지도자가 정치 지도자의 말대로 행동하는 사회라면 매우 불편할 것”이라며 “교황에 연대를 표한다”고 말했다. 전날 트럼프의 교황 비판을 겨냥해 “용납할 수 없다. 교황이 평화를 촉구하고 전쟁을 규탄하는 것은 옳고 정상적인 일”이라고 한 데 이어 이틀 연속 트럼프를 비판한 것이다.

트럼프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그녀”라며 “멜로니는 이란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기회가 된다면 이탈리아를 2분 안에 날려버릴 수 있다 해도 개의치 않기 때문”이라고 받아쳤다. 그는 이탈리아 일간 코리에레델라세라 인터뷰에서 “그녀에게 용기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틀렸다”며 “미국이 이탈리아 대신 일을 해주길 바라는 것”이라고 했다.

멜로니는 유럽 정상 가운데 트럼프와 가장 가까운 인물로 꼽혔다. 그런 멜로니마저 트럼프와 공개적으로 각을 세우면서, 이란 전쟁을 계기로 트럼프와 유럽 강경 우파 진영 사이의 균열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때 트럼프를 ‘이념적 동지’로 여겼던 유럽 우파 인사들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촉발된 경제 악화와 반(反)트럼프 여론을 의식해 트럼프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교황 둘러싸고 공개적 충돌

멜로니는 유럽 정상 중 유일하게 지난해 1월 트럼프 취임식에 참석했다. 트럼프는 지난해 10월 연설 도중 멜로니를 가리켜 “아름다운 젊은 여성”이라고 했고, “모두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친구”라는 표현도 썼다. 그러나 지난 2월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하자 멜로니는 “국제법 범위를 벗어났다”며 “이 위기가 우리 국민과 기업에 미칠 경제적 영향에 우리 정부의 책임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멜로니는 전쟁 초반 미군 항공기가 시칠리아의 공군 기지에 착륙한 뒤 중동으로 비행하는 내용의 계획안을 거부했다. 최근엔 이스라엘과의 국방 협정 연장을 거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7월 2일 바티칸에서 교황 레오 14세가 조르지아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와 만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여기에 연일 반전(反戰) 메시지를 발표하는 레오 14세를 트럼프가 공격하면서 멜로니와 트럼프의 갈등이 본격화했다. 앞서 교황은 “하느님은 어떤 전쟁도 축복하지 않는다” “‘전능하다는 망상’이 전쟁을 부추긴다”며 이번 전쟁을 비판했다. 트럼프는 “내가 아니었으면 교황이 되지 못했을 것” “이란 핵무기 보유를 용인하는 교황” “레오는 정신을 차리고 급진 좌파 영합을 멈춰야 한다”며 교황을 거칠게 비난했다.

이에 교황이 “트럼프 행정부가 두렵지 않다. 나는 복음을 전할 뿐”이라고 하자 바티칸과 밀접한 이탈리아에선 교황을 옹호하는 여론이 분출하고 있다. 가톨릭 보수층을 지지 기반으로 하는 멜로니가 트럼프를 비판한 데는 유권자 정서를 의식한 측면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탈리아에선 멜로니의 트럼프 비판에 찬성한다는 여론이 81%라는 조사 결과가 보도되기도 했다.

◇유럽 우파도 트럼프와 ‘거리 두기’

유럽 우파 진영 전반에서도 유사한 기류가 감지된다. 트럼프를 ‘동지’로 불렀던 프랑스 강경 우파 정당 국민연합(RN)의 마린 르펜 의원은 최근 “트럼프는 이란 개입의 파급 효과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며 “이란 국민을 해방하겠다는 목표는 달성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트럼프가 호르무즈 해협 개방에 참여하라고 동맹국에 요구한 데 대해서도 “프랑스는 이 분쟁의 발발에 관여하지 않았다. 참여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영국개혁당 나이절 패라지 대표도 “(전쟁의) 출구 전략이 기대만큼 명확하지 않다”고 했다. ‘미국이 세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답한 개혁당 지지자가 지난 1월 26%에서 지난달 35%로 증가했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독일에서는 트럼프 지지층 매가(MAGA) 진영과 밀착해온 강경 우파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알리스 바이델 공동대표가 “이번 전쟁은 ‘재앙’”이라고 했다. AfD는 최근 소속 의원들에게 “매가 진영과 접촉을 줄이고 미국 방문도 가급적 자제하라”고 지시했다.

외신들은 “이란 전쟁 이후 에너지 위기, 난민 발생 우려 등으로 우파 지지자들이 트럼프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다”며 “지도자들이 유권자의 정서에 반응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현재 유럽 주요국에선 ‘트럼프는 우리의 적’이라는 여론이 절반 이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신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 이란 전쟁은 ‘트럼프 개인의 전쟁’이라는 인식이 점점 퍼지고 있다”며 “‘다자 외교’ ‘미들 파워’ 등 유럽이 지켜 온 가치와 이익을 분명히 하려는 모습”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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