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머릿속으로만 소설 쓰기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머리로만 책을 쓴 남자’를 처음 접한 것은 대학교 글쓰기 교양 수업에서였다. 이 단편소설의 주인공 ‘치버’는 아무에게도 내용을 알려주지 않고 오직 머릿속으로만 소설을 한 권씩 완성해 간다. 그는 이미 완성된 소설을 종이에 옮길 시간에 차라리 새로운 소설을 구상하고자 한다. 작중 치버의 심리가 직접적으로 제시되진 않지만, 그가 젊은 날에 쓴 소설이 여러 출판사에서 거절당하고 혹평을 받았다는 과거 서술로 인해 그의 기행은 ‘회피성 방어 기제’로 읽힌다.
나는 그 이야기를 종종 곱씹곤 했다. 소설을 쓰게 될 줄 몰랐던 때부터, 등단을 꿈꾸며 소설을 쓸 때에도, 심지어 등단 이후에도 치버는 종종 내게 말을 걸어왔다. 착상 단계는 재밌는데 말이야, 그걸 구체적인 형태로 옮기려면 귀찮고 힘들지 않아? 누군가에게 평가받는 것보단 미완의 걸작으로 남겨놓는 게 마음 편해. 나는 치버를 섣불리 조소하거나 연민할 수 없었다. 등단이라는 좁은 문 앞에서 소설을 쓰면서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읽히지 않는 소설은 소설이 아니야? 제도권에 편입되지 못하면 소설가가 아닌 거야?
등단이라는 관문을 통과했음에도 나는 여전히 그 남자에 대해, 그의 소설 쓰기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과연 치버보다 나을까. 나는 고작 단편소설 한 편을 발표했을 뿐이고, 치버는 머릿속으로 열네 권의 소설을 완성했다. 대부분의 등단 작가처럼 나 또한 열네 권의 장편소설을 완성하지 못할 확률이 높고 순문학을 읽어줄 독자가 훌쩍 늘어나는 미래도 그려지지 않는다. 치버는 자신이 걸작을 썼다는 믿음으로 평안하게 눈을 감았다. 소설의 내용도 모른 채 남편의 창작을 위해 헌신한 그의 아내 루이스 또한 같은 믿음으로 죽기 전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내게는 그런 믿음도 없다.
애초에 소설이란 소설가와 독자 사이에 공유된 하나의 믿음 체계다. 그 믿음 체계는 반드시 소설의 내용이나 기록 양식에 달려 있지 않다. 제도권의 인정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치버의 ‘쓰기’처럼, 그 창작 행위만으로도 믿음은 공유될 수 있다. 순문학의 소비층이 더 얇아지더라도, 등단이라는 문턱을 넘지 못하더라도, 독자가 소설가 자신 한 명뿐이라 할지라도, 그렇다.
/김선준·2026 조선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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