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에 익숙해진 사람들… 스스로 선택한다는 건 착각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쥐고 산다. 별생각 없이 소셜미디어와 동영상 사이트를 휙휙 넘긴다. 맞춤형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뉴스를 읽다가, 검색했거나 이야기한 상품이 광고로 뜨면 살짝 무섭다. 그래도 금세 잊어버린다. 편하니까. 욕망과 선택을 빅테크 손에 맡겨버린 지 오래인데, 스스로 선택하며 산다고 착각하는 건 아닐까.

25일까지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하는 서울시극단의 연극 ‘빅 마더’(Big Mother)는 그 공포를 무대 위로 끌어올린 정치 스릴러다. 조지 오웰의 ‘1984’(1949) 같은 디스토피아 소설 속 독재 체제는 ‘빅 브라더’가 폭력으로 개인을 감시하고 통제한다. 연극 ‘빅 마더’ 속 현대 사회의 방식은 정반대다. 효율을 신앙하고 쾌락을 숭배하는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1932) 속 테크노크라시(기술관료주의) 지배에 더 가깝다. 원하는 걸 더 많이 줄수록, 사람들은 중독된 꼭두각시처럼 점점 더 자발적으로 시스템의 조종에 몸과 생각을 맡긴다. 쾌락과 착각에 길들여져 믿고 싶은 것만 믿는 데 이르면, 더 이상 벗어날 수 없다.
◇선거판 뒤흔든 ‘대통령 동영상’의 배후

대선 국면의 미국, 익명의 해커가 집권 민주당 대통령의 은밀한 동영상을 온라인에 터뜨린다. ‘엡스타인 파일’을 닮았다. 재선이 유력했던 대통령 지지율이 곤두박질치고, 탐사 보도 전문 매체 ‘뉴욕 탐사’의 기자들이 배후를 파고든다. 공화당원이 만든 조작 동영상인 줄 알았는데, 캘수록 뜻밖의 인물과 사건이 줄줄이 딸려 나온다. 커지는 정치 혐오 속에 ‘국회 해산’과 ‘빅데이터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신생 정당의 인기가 치솟는다.
참과 거짓을 뒤섞어 조작한 사실도 대중이 믿으면 진실이 되어버리는 연극 속 세계는 어디서 많이 본 듯하다. 여론은 편견과 선입견, 감정적 호소에 속절없이 휘둘린다. 관련된 사람들이 하나둘 죽어 나가고, 이야기는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눈덩이처럼 몸집을 키우며 굴러간다.

음모를 폭로하려는 언론의 노력은 ‘마녀사냥’으로 폄훼당하고, 기자들은 전통적 저널리즘의 한계 앞에 처절하게 좌절한다.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세상에선 명백한 사실이 밝혀져도 여론의 쏠림 현상을 막을 수 없다. 집권을 위한 정치 술수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 가공할 스케일의 음모가 유유히 모습을 드러낸다.
◇조작된 진실…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여론
극 중 ‘100몽키’라는 기업도 흥미롭다. 그럴듯한 가짜 ‘바이럴’로 악명과 명성을 함께 쌓은 홍보 회사가 빅데이터 알고리즘 기술을 정치에 활용해, 진짜 같은 가짜를 쏟아내기 시작하며 벌어지는 일은 공포스럽다.
무대 위에서 극 중 방송 등 미디어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실시간 중계 카메라로 무대 위 스크린에 동시에 비춰진다. 관객은 배우의 실제 연기와 스크린에 비치는 편집된 영상을 동시에 목격한다. 범람하는 영상 콘텐츠가 어떤 의도와 과정을 통과하며 가공돼 우리의 무의식을 조종하려 드는지, 그 이면을 폭로하는 방식이다.

원작은 프랑스에서 호평받은 연극. 이준우 서울시극단장은 취임 뒤 첫 연출작인 이 작품에서 60개의 짧고 강렬한 장면을 빠르게 연결하고 물 흐르듯 전환한다. 공연 시간 110분간 한 장면에 평균 1~2분뿐인 셈. OTT에 익숙해진 관객도 혀를 내두를 영화적 속도감이다.
소셜 미디어 알고리즘은 개인의 취향과 성향을 읽어 비슷한 생각이 담긴 콘텐츠를 반복해 공급한다. 그렇게 강화된 ‘확증 편향’의 감옥에 갇히면 세상엔 생각이 다른 사람이 있단 걸 쉽게 잊고, 쉽게 나와 다른 사람을 증오하게 되고 만다. 어쩌면 연극은 묻고 있다. 만약 누군가 마음먹고 딥페이크 기술과 빅데이터 알고리즘을 악용한 여론 조작으로 권력을 쥐려 한다면, 우리는 정말 그 거대한 기만을 간파할 수 있을까. 이 모든 건 정말 연극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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