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현장에 드리우는 5월 셧다운 위기

황규락 기자 2026. 4. 16.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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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여파로 자재 공급 끊길판
이달 초 경기 안양시의 한 레미콘 공장에 레미콘을 운반하는 믹서트럭이 서 있는 모습. 미국·이란 전쟁 여파로 다음 달 중소 레미콘 업체들이 연쇄적으로 콘크리트 생산을 중단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뉴시스

15일 건설 업계에 따르면 ‘이달 말 국내 혼화제 생산이 중단될 것’이란 소식이 업계에 확산하고 있다. 혼화제는 콘크리트 강도와 유동성을 조절하는 필수 첨가제로, 혼화제 없이는 레미콘 생산이 불가능하다. 레미콘이 끊기면 골조 공사는 올스톱이다. 패닉 바잉(공포 구매) 사태를 우려한 국내 최대 혼화제 원료 제조사 롯데케미칼은 “정상 생산 중”이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중소 레미콘사부터 연쇄적으로 생산이 중단될 가능성에 대비해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전했다.

경남 거제의 한 플라스틱 성형업체는 최근 견적서에 ‘가격은 출고 날짜 기준’이라는 문구를 넣기 시작했다. 언제 생산이 가능할지 알 수 없으니 식당 메뉴판의 ‘시가(時價)’처럼 가격을 매기는 고육지책이다. 원료인 PET(폴리에스터) 수급이 끊기자, 원자재가 들어오는 날에만 2~3일씩 공장을 돌리고 다시 세우기를 반복하면서 생산량은 평소의 10분의 1로 급감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하면서 국내 건설·제조 현장의 공급망 경색이 ‘경고’를 넘어 ‘초읽기’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나프타(Naphtha) 비축 재고 소진 시점과 맞물리면서, 업종을 가리지 않고 ‘5월 셧다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나프타는 ‘산업의 쌀’로 불릴 만큼 대부분 석유화학 제품의 출발 원료”라며 “재고 여력이 적고 공급망이 좁은 중소 업체부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래픽=양인성

◇‘5월 셧다운’ 위기감 팽배

가장 먼저 임계점에 도달한 곳은 중소 제조업체들이다. 원자재 가격 폭등을 넘어 ‘물량 확보 불능’이라는 벽에 부딪혔다.

전북에서 50년 넘게 쌀·시멘트 포대를 만들어온 한 업체 관계자는 “걸프 전쟁, IMF 위기, 코로나 사태까지 다 겪었지만 원자재 가격 급등과 공급 중단이 동시에 닥친 건 처음”이라고 했다. 이 업체가 쓰는 LDPE(저밀도 폴리에틸렌)는 3월 초 이후 한 달 새 세 차례 인상을 거쳐 ㎏당 가격이 40% 가까이 뛰었다.

대구의 한 식빵 포장지 제조업체는 기존 원료인 CPP(캐스트 폴리프로필렌) 수급이 막히자 물성이 다른 대체 원료 PE(폴리에틸렌)로 시험 생산에 돌입했다. 이 업체 관계자는 “중소기업은 원가 상승분을 판매가에 전가할 힘이 없다”며 “4월 말이 지나면 가동을 멈추는 중소기업이 급증할 것”이라고 했다.

◇중소기업 “더 이상 못 버틴다”

중소 제조업체에서 시작된 충격은 5~6월 건설 현장으로 본격 전이될 전망이다. 혼화제뿐 아니라 페인트·파이프·창호 등 나프타 기반의 전 건설 자재 가격이 전쟁 이전 대비 최대 50% 이상 치솟았다. 나프타 가격 급등에다 고유가에 따른 운송비 상승까지 겹친 결과다. 아파트 창호로 쓰이는 PL(PVC) 창호는 이르면 5~6월부터 수급 자체가 어려워질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특히 중소·중견 건설사의 타격이 크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따르면, 건설공사비지수는 이미 올해 2월 133.69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러·우 전쟁 이후 수년간 공사비가 이미 오를 만큼 오른 상황에서 이번 충격이 덮친 것이다.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대형사와 달리 중소 건설사는 자재 수급 조건이 구조적으로 불리하다”며 “전쟁이 이어질수록 공사 중단에 내몰리는 현장이 늘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재고를 비교적 넉넉히 쌓아둔 대형 건설사들도 6월 이후를 장담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한 대형 건설사는 최근 토건재·파이프 업체로부터 단가 인상 공문을 받고 조정 협의에 들어갔다. 도료 원료 업체들도 잇따라 가격 인상 통보를 발송하고 있다. 이 건설사 관계자는 “비축 재고 덕에 상반기까지는 버틸 수 있지만, 6월 이후부터는 공사를 멈춰야 하는 현장이 속출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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