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프리즘] 우리는 정말 ‘미생물 덩어리’일까
잘못된 주장, 검증 없이 굳어져
과학은 완성 아닌 끊임없는 수정
숫자보다 중요한 건 이해의 노력
“인간의 몸에는 사람 세포보다 미생물 세포가 열 배나 더 많다.”

이 주장의 출발은 1970년대의 대략적인 계산이다. 당시 미국 미생물학자 토머스 러키는 장 속에 있는 세균의 수를 약 100조개, 인간의 세포 수를 약 10조개로 추정했다. 그래서 열 배라는 비율이 만들어졌다. 문제는 이 계산이 매우 거칠었다는 점이다. 장의 부피를 정확히 측정하지 않았고, 세균의 밀도 역시 평균값으로 처리했다. 인간 세포 수 역시 크게 과소평가하였다.
하지만, 이 숫자는 이후 수십 년 동안 거의 수정되지 않은 채 반복되었다. 교과서에 실리고 대중서에 인용되고 강연에서 소개되었다. 숫자는 점점 더 사실처럼 굳어졌다. 출처와 계산 과정은 사라지고 결론만 남았다. 이 단순화가 오해를 낳았다. 사람들은 더 이상 그 숫자가 어떻게 나왔는지 묻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 숫자가 전달하는 메시지였다.
이 과정은 과학도 일종의 ‘밈’처럼 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틀렸다기보다 검증되지 않은 채 반복된 것이다. 교과서, 강연, 대중교양서, 언론으로 한 번 등장한 숫자는 끊임없이 재생산되었다. 기억하기 쉽고 메시지가 강하며 설명이 편한 내용은 유전자처럼 살아남는다. “나는 인간이 아니라 미생물 덩어리다”라는 문장은 그 자체로 강력한 이야기였다. 결국 정확성보다 전파력이 앞서게 된다.
여기에 한 가지가 더해진다. 좋은 이야기는 사실을 압도한다는 점이다. ‘미생물이 열 배 많다’는 말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세계관을 바꾸는 이야기였다. 인간 중심주의를 흔들고 우리에게 겸손을 요구하며 생명을 더 넓게 바라보게 만든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숫자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문제는 좋은 이야기는 쉽게 의심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2016년 이스라엘 시스템생물학자 론 밀로 연구팀은 이 문제를 다시 계산했다. 최신 데이터를 바탕으로 인간 세포와 미생물 세포의 수를 정밀하게 추정한 결과 인간 세포 약 37조개, 미생물 세포 약 39조개로 두 숫자는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더 이상 열 배 차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상황에 따라 비율은 조금씩 달라질 수 있지만 대략 1대 1에 가깝다는 것이 현재의 이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동안 틀린 것을 믿고 있었던 것일까? 그렇다고 단순하게 말하기는 어렵다. 이 사례는 과학이 틀렸다는 증거라기보다 과학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에 가깝다. 과학은 완성된 진리가 아니라 끊임없이 수정되는 과정이다. 더 좋은 데이터와 더 정확한 방법이 등장하면 기존의 결론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틀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틀림을 줄여가는 능력이다.
이 사례에서 배울 게 하나 있다. 숫자를 들으면 그 자체를 믿기보다 그 숫자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물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흥미로운 이야기일수록 한 번 더 의심해야 한다는 점이다. 과학은 이야기의 형태로 전달되지만, 그 기반은 언제나 측정과 계산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이야기가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비율이 1대 10이든, 1대 1이든 인간이 미생물과 긴밀하게 얽혀 있는 존재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우리의 소화, 면역, 심지어 기분까지도 미생물과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하나의 개체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생태계다. 특히 주목할 점은 유전자 수다. 인간의 유전자는 약 2만개 수준이지만 우리 몸속 미생물의 유전자는 그보다 훨씬 많다. 우리는 세포 수가 아니라 기능의 총합으로 존재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다. 우리가 누구인가에 대한 이해다. 우리는 미생물보다 많지도 적지도 않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존재한다.
이정모 전 국립과천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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