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통해 삶을 묻다] 창문 안에 갇힌 자유의 꿈
말을 삼키는 침묵의 구조
복종 속에 길들여진 욕망

가슴이 뜨거우면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진다. 희망의 말, 바람의 말, 요구의 말, 저항의 말, 분노의 말이 안전장치 없이 밖으로 나오려고 한다. 그러나 그 하고 싶은 말들을 내뱉었을 때 돌아오는 것이 냉소와 폭력과 버려짐이라면 그 말들은 가라앉혀야 한다. 물속 깊숙이 가라앉혀야 안전하다. 가라앉지 않은 말은 둥둥 떠다니고 흘러간다. 증발해서 또다시 비가 돼 내릴지도 모른다. 그럼 어떻게 할까. 말에 무거운 추를 달아야 한다.
가야 하는 목적지가 있다. 훈련시키고, 습득시키고 복종시키고 해야 빨리 도달할 수 있다. 그 목적지에는 모든 이들을 사랑하며 목소리를 듣고 소통하고, 최대한의 의견을 반영해서는 목적지에 빨리 갈 수가 없다. 사실 가야 하는 목적지가 어디인지도 모른다. 그냥 가는 것이다. 막연한 목적을 가지고 간다. 이렇게 하는 것이 최선이라 믿으며 가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평가하고 줄을 세우고, 착함 안 착함을 구별하면서, 화상자국 같은 낙인을 찍는다. 낙인은 꽃처럼 아름답지 않다. 말하지 않음, 참음과 복종은 낙인을 피해 가게 하는 안전장치다. 최대한의 의사표시 없이 가만히 있어야 한다.
뜨거운 가슴은 뛰고 흥분한다. 그러나 흥분의 온도가 높을수록 필요한 것은 냉각이다. 저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뜨거움을 냉각시켜야 한다. 빛나는 졸업장을 위해서, 빛나는 내일의 보장된 인생을 위해서 말이다. 사실 그 빛남은 보장될지, 안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보장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창문이 많다. 창문에 아무런 장치도 없다. 문은 자유롭게 열린다. 그 문을 열고 뛰쳐나가면 안 된다고 교육을 받았다. 그러면 인증서를 받지 못한다. 이제는 물론 그 문을 열고 나가기도 한다. 문은 자유롭게 열 수 있다. 그 문을 자유롭게 열 수 있다는 것을 희미하게 알고 있을 뿐이다. 안전하게 살고 싶다. 안전하게 이 자리를 지키다가 남들이 나갈 때 나도 같이 나가고 싶다. 이곳에 어느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 견딤은 만만치 않다.
신용목 시인의 시 '종례'에서 시적화자는 '매일매일 같은 물속으로 더 무거운 추를 달고 뛰어드는 것처럼', '매일매일 더 무거운 인생이 뛰어드는 몸으로 창문 안에 있다'고 마음 상태를 고백한다. 그만큼 '종례(終禮)' 시간, 견딤의 힘듦을 풍부한 시적 상상력으로 말하고 있다.
말하고 싶은 것이 참으로 많다. 그러나 차마 그 말을 다 할 수는 없다. 하고 싶은 모든 말을 다 할 수 없다. 그 말들은 불편한 진실을 닮고 있기에 추를 달아서 물속에 영원히 가라앉히고 싶다. 아니면 땅을 파고 구덩이에 대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흙을 덮고 싶다.
종례
배에서부터 하고 싶은 말이 차오르면 입안에 얼음을 넣었다. 얼마나 뜨거웠으면…… 물은 영원히 흘러내리는 화상 자국 같다.
매일매일 같은 물속으로 더 무거운 추를 달고 뛰어드는 것처럼, 매일매일 더 무거운 인생이 뛰어드는 몸으로 창문 안에 있다.
-신용목 시집 「비에 도착하는 사람들은 모두 제시간에 온다」(2021, 문학동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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