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비판은 못 참아…‘트럼프 핵심 우군’ 멜로니 등 돌렸다
미국 향한 부정적 여론·에너지 가격 급등도 압박 요인으로 작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유럽 내 핵심 우군으로 꼽혀온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사진)가 사실상 ‘탈트럼프’ 행보를 보이고 있다. 몇달 전까지만 해도 밀착 관계를 과시했던 두 정상은 미·이란 전쟁을 계기로 공개적인 비난전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14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일간지 코리에레델라세라 인터뷰에서 “멜로니에게 충격받았다.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틀렸다”고 말했다. 그는 이탈리아가 미국의 이란 공격에 동참하지 않은 점을 겨냥해 “멜로니는 이 전쟁을 돕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란이 핵무기를 갖게 되면 이탈리아가 2분 안에 날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도 관심이 없다”고 위협성 발언까지 쏟아냈다.
양측 갈등의 도화선은 종교 문제였다. 지난 12일 트럼프 대통령은 미 시카고 출신인 레오 14세 교황을 향해 “극좌에 영합하고 있다”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공개 비판했다.
이에 멜로니 총리는 “용납할 수 없다”고 즉각 반발했다. 멜로니 총리는 같은 날 미국을 “최우선 동맹”으로 규정하면서도 “전략적 동맹일수록 의견이 다를 때 이를 말할 용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멜로니 총리는 지난해 1월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유일한 유럽 정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를 “경이로운 여성” “위대한 지도자”라고 치켜세웠던 점을 고려하면 양측 관계 변화는 더욱 두드러진다.
멜로니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의 교황 언급을 비판한 것은 가톨릭 전통이 강한 이탈리아에서 교황은 종교 지도자 이상의 상징적 존재이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탈리아 내에서는 멜로니 총리의 대응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크다. 안토니오 타야니 부총리 겸 외교장관은 “교황 문제에 대한 총리의 발언은 이탈리아 국민 다수의 생각을 대변한 것”이라고 밝혔다. 구이도 크로세토 국방장관도 “멜로니 총리는 원칙과 정체성이 걸린 문제에서 자신의 소신을 분명히 하는 지도자”라고 옹호했다.
국내 정치 상황도 멜로니 총리의 태도 변화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폴리티코 유럽판에 따르면 지난달 사법개혁을 둘러싼 국민투표에서 멜로니 총리 진영이 패배했는데 멜로니 총리 측은 이를 트럼프 대통령과의 지나친 밀착에 대한 반감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과 거리를 두기로 했다는 것이다.
여론도 우호적이지 않다. BBC에 따르면 지난 1월 조사에서 이탈리아 유권자의 63%가 미국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에너지 공급망이 흔들리면서 디젤 가격이 급등하는 등 경제적 부담이 커진 점도 멜로니 정부에 압박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로렌초 카스텔라니 이탈리아 루이스대 교수는 로이터통신에 “멜로니는 중도우파 유권자들 사이에서도 트럼프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미·이란 전쟁의 경제적 파장에 대한 비판 여론이 확산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시민 수십만명이 대이스라엘 무기 수출 중단을 요구하며 거리 시위에 나선 점도 무시하기 어려운 변수다. 과거에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밀착이 멜로니 총리의 정치적 자산이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폴리티코 유럽판은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에서 사실상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가장 확고한 우군마저 잃을 수 있게 됐다”고 진단했다.
박은경 기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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