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착카메라] 12년 '세월'…도망치고 자해했던 의인 "이겨낼 수 있어"

이상엽 기자 2026. 4. 15.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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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내일로 12년이 됩니다. 오늘 밀착카메라는 침몰하는 배에서 마지막까지 아이들을 구했던 '파란 바지의 의인' 김동수 씨를 다시 만났습니다. 그날의 기억들이 김 씨를 아프게 하지만, 이겨내기 위한 달리기를 멈추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상엽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진짜 침몰해요?"

"여기 구명조끼 없어요."

"엄마 사랑해."

"우리 반 아이들 잘 있겠죠?"

"이 정도로 기울었다. 오늘은 4월 16일."

이 60대 남성은 매일 아침 달립니다.

몸은 뛰는데 머릿속은 아이들 목소리가 가득합니다.

또 4월이 왔습니다.

[김동수/세월호 생존자 : 제주도에 사는 세월호 생존자 김동수라고 합니다.]

1988년 4월.

23살 김동수 씨는 고향 제주도에서 육상 코치로 일했습니다.

[김동수/세월호 생존자 : 제일 중요한 건 자기와의 싸움이… 끈기를 가르치는 정신력이 제일 중요하니까.]

달리는 게 좋았고 그게 직업이라 더 좋았습니다.

[김동수/세월호 생존자 : 어릴 때부터 우유 배달, 신문 배달을 해서 뛰는 것도 좋아했고. 어머니가 해녀니까 여름에는 바다에서 어머니하고 물질하는 것도 했었고.]

1994년 4월.

29살 김씨는 아내를 처음 만났습니다.

지켜야 할 것들이 생겼습니다.

[김동수/세월호 생존자 : {프러포즈는 하셨어요?} 프러포즈요? 못 했어요. 아내가 그때는 몸이 워낙 안 좋았고. 아내를 데려다가 편하게 지켜줘야겠다. 고생 안 시켜야겠다는 생각밖에…]

1997년 4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육상 코치를 그만두고 화물차 운전을 했습니다.

아내와 새로 태어난 두 딸에게 집을 사주고 싶었습니다.

[김동수/세월호 생존자 : {화물차 운전이 달리기와 비슷할까요?} 네. 한 번 나가면 거의 1000㎞에서 1400㎞를 하루에 타거든요. 최선을 다하려고 했어요. 자식들한테 좋은 아빠가 되겠다는…]

2014년 4월 16일.

화물차를 끌고 탄 배에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예뻤습니다.

[김동수/세월호 생존자 : 오전 7시 40분쯤 식당 가서 밥 먹으면서 세상에 이렇게 희한한 아이들이 다 있나? 몇 반 누구누구 빨리 와서 밥 먹으라는데. 조용히 있어. 줄 서고. 너무 착한 거예요.]

갑자기 배가 기울었고 그런 아이들이 눈에 밟혔습니다.

소방 호스를 몸에 감고 버틴 김씨, 마지막까지 20명 넘게 구했습니다.

하지만 어깨와 손가락 신경이 망가졌고 마음속 무언가도 무너졌습니다.

[김동수/세월호 생존자 : {지금의 삶은 어떤 것 같으세요?} 지금요? 지금 저 삶 없어요. 왜 혼자 살아나오지. 왜 이렇게 살아나와서 고통받느냐고 하는 어머니 말이…갈 때마다 제일 미안해요.]

지난 12년, 김씨는 도망치고 자해하고 숨었습니다.

김씨를 지켜보던 가족들은 오래 힘들었습니다.

[김형숙/김동수 씨 아내 : 저도 몇 번씩 그 생각해봤어요. 내가 만약 남편이랑 세월호를 같이 탔다면… 나는 남편을 막 끌고 나왔을 것 같아요.]

하지만 또 믿습니다.

[김형숙/김동수 씨 아내 : 아는 사람들은 '김동수라면 그랬을 것이다'라고. 그냥 지나치는 일이 없는 것 같아요. 동네에서 물에 빠진 사람도 구해주기도 하고.]

바라는 건 한 가지입니다.

[김형숙/김동수 씨 아내 : 그냥 내가 원래 알고 내가 좋아했던 김동수로…]

"사랑하는 동수 씨, 생일 축하합니다. 역시 폐활량."

[영상편집 김동준 VJ 김동규 작가 유승민 영상자막 조민서 취재지원 이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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