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미운 정 고운 정

노란 수선화, 노랑 나비, 인생은 누리끼리 하다만 파릇파릇 새싹과 함께 노랑의 뿜뿜이다. 이쪽 동네 대덕면에서 레지던시 중인 임동확 시인을 잠깐 뵀는데, 고수와 상추, 쑥갓을 무지하게 뜯어 저녁 만찬. 샘이 잠을 포기하고 봄밤을 즐기자며 핸드드립 커피를 내리고, 후식으로 읽어주신 몇 소절 시를 들었다.
시는 읽으면 읽을수록 익어가지. 참 이상한 노릇이야. 숨을 고르고 침묵 속에서 시를 나눈다는 건 민간인(?)들이 볼 때 기이한 풍경이겠다. 별도 달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새들조차 숨 죽이며 잠잠해져.
지난달 꼬맹이였던 조카 남주가 경향신문에 시인으로 등단을 했는데, 그 아이 친구들을 어디서 같이 만났다. 그 친구들이 뭉쳐 여행을 가면 시를 짓고 시를 나눈다덩만. 같은 장소에서 쓴 시를 두런두런 나눈다니, 참 노는 것도 독특하고 귀엽덩만. 귀여울 나이는 좀 지난 듯싶더라만, 훗~.
나는 시와 ‘미운 정’이 살짝 든 거 같아. 시를 쓰려고 하면 시가 한 발짝 잽싸게 달아나. 포기하고 지내면 뜬금없이 또 찾아와. 그땐 종이도 안 보이고 연필도 어디 없어. 시를 휴대폰에 문자로 쓴다는 건 시에 대한 무례인 것 같아서 나는 아직도 원고지를 쌓아 놓고 살아. “각방 쓴 지 오래되었다. 갈라서자며 가슴에 도장을 품고 다니기도 했으나 기침소리가 나면 이마 머릴 한번 짚어 보려고 문 앞을 자박자박 서성거린다” 조성국 시인의 ‘미운 정’이란 시. 미운 정도 정이라서 언젠가 좋은 시 하나 찾아올 테지. 노래처럼 ‘소원을 말해봐~’ 하면 시밖에 그래도 없다. 아프지 않고 살며, 고운 정을 나누면서 다시 잘 지냈으면 싶어.
임의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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