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아름다운 것은 엎드려 바라보아야 한다”, 김봉찬 [크리틱]

한겨레 2026. 4. 15.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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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 정원"이라고 했다.

무너져 내린 콘크리트 담과 드러난 붉은 쇠골조 너머로 은방울 수선화와 그라스, 하얀 튤립들이 바람에 흔들린다.

제주 서귀포 효돈 마을, 조경가 김봉찬의 생태 실험장 '베케 정원'의 입구에서 마주한 풍경이다.

검은 돌담을 녹색 이불처럼 뒤덮은 이끼의 풍경은 훗날 '이끼정원'의 모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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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케 정원’ 입구에 있는 ‘폐허 정원’의 일부. 제미란 제공

제미란 | 디자이너·아트 워크샵 리더

“폐허 정원”이라고 했다. 무너져 내린 콘크리트 담과 드러난 붉은 쇠골조 너머로 은방울 수선화와 그라스, 하얀 튤립들이 바람에 흔들린다. 사라지는 것과 움트는 것들이 서로에게 박수를 보내듯 봄 햇살에 눈부시다. 제주 서귀포 효돈 마을, 조경가 김봉찬의 생태 실험장 ‘베케 정원’의 입구에서 마주한 풍경이다. 그는 아모레 성수, 한남 모노하, 평강식물원, 비오토피아 등 굵직한 프로젝트를 맡아온 조경가다. 그러나 완성된 공간은 늘 그의 손을 떠났고, 식물이 자라나는 과정을 끝까지 지켜볼 수 없었다. 스스로의 정원을 꿈꾸기 시작했고, 선친이 일구던 귤 농장을 자연주의 생태정원으로 바꾸어 놓았다.

가난했던 유년 시절, 새로 닦인 신작로가 집보다 좋아서, 고무신을 안고 맨발로 가로등 켜진 아스팔트를 걷곤 했다. 그즈음 시작된 귤 농사는 훗날 그에게 나이키 운동화를 신겨주었지만, 부모의 고된 노동은 마음 깊은 곳에 새겨졌다. 40년 된 감귤 과수원을 걷어내고 만병초와 목련, 양치식물을 심었을 때 마을은 술렁였다. “생계수단을 베어버리고 만병초에 고사리가 웬 말이냐”. 그렇게 생계를 위한 땅은, 생명을 위한 땅으로 변모했다. 선친을 기억하며 귤 창고의 잔해를 남겼고, 그 폐허 위에 꽃들의 정원을 일구었다.

정원 이름 ‘베케’는 밭을 일구며 나온 크고 작은 돌을 쌓아둔 더미를 뜻한다. 2015년 겨울, 귤밭에 가려져 있던 돌무더기가 처음 햇빛에 드러났다. 검은 돌담을 녹색 이불처럼 뒤덮은 이끼의 풍경은 훗날 ‘이끼정원’의 모태가 된다. 땅보다 깊게 지어진 반지하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거대한 통창 너머로 ‘원시 자연림’의 신비가 펼쳐진다. 몸을 낮춰 눈높이로 바라보는 깃털이끼와 꼭 쥔 주먹을 펴 보이며 올라오는 아기 손 같은 고사리, 그 생명의 안간힘 앞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가장 아름다운 것은 엎드려 바라보아야 한다”는 그의 말처럼, 낮은 것들에 대한 경외로 숨죽이게 한다.

비로소 알 것 같다. 그의 정원은 돌담처럼 ‘엉성한 듯 치밀하게’ 설계된 공간이다. 밝은 입구에서 시작된 크고 작은 숲의 여정은 마침내 어둠을 지나 이끼정원으로 이어진다. 빛과 어둠, 개방과 차단이 교차하도록 연출된 시퀀스. 이 치밀한 변주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풍경을 대상으로 바라보기를 멈추고 천천히 스며들어 순하게 정화된다.

그에게 정원은 인간을 위한 장식이 아니라, 생명이 깃들어 사는 야생의 집이다. “숲의 목표는 아름다움입니다.” 그 아름다움은 서로를 밀어내지 않으면서 각자의 몫을 지극하게 살아내는 질서에서 비롯된다. 한정된 에너지와 자원을 나누며 스스로를 조직하는 숲은 ‘공존을 위한 가장 혁명적인 민주주의’를 보여준다. 그는 이것을 ‘숲의 집단지성’이라 불렀다. 조경가의 역할은 숲의 ‘사춘기’를 무사히 건너게 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혼돈의 시기에 충돌을 낮추고 균형을 조율하는 일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되돌아 나오는 길, 그의 말처럼 “비가 와서 보고 싶고 바람이 불어서 가고 싶은 정원, 십자가 없이도 기도하게 하는 그런 정원”을 나도 지나왔다. 은방울수선화가 오래 손을 흔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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