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2주기]"안전한 사회 꿈꾸며 잊지 않겠다"
녹슨 선체·빛바랜 노란 리본
‘세월의 흔적’ 고스란히 남아
12주기 맞아 전국서 추모 행렬
"국가책임 인정·공식 사과"

"304명이 하늘의 별이 된 그날을 어떻게 잊겠습니까.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세월호 12주기를 앞둔 15일 전남 목포신항 입구. 경기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의 증명사진이 빼곡한 대형 판넬은 들이치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빛이 바랬다. 사진 속 얼굴만 12년 전 그날의 시간에 머물러 있었다.
안으로 300m가량 걷자 6천825t급 세월호가 흉측한 몰골을 드러낸다. 강산이 변한다는 시간 동안 선체는 부식되다 못해 본래의 색을 잃은 고철 덩어리로 변했다. 흘러내린 녹물은 마치 닦이지 않은 피눈물처럼 선체 곳곳에 얼룩져 현장의 서늘함을 더했다.
세월을 그대로 맞은 것은 선체뿐만이 아니었다. 안전과 증거 보존을 위해 쳐진 2m 높이의 초록색 펜스에 매달린 수백 개의 노란 리본은 비바람에 삭아 문구조차 읽기 힘들다. 잉크가 날아간 리본 위에는 "잊지 않겠습니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흐릿한 자국만 남았다.
현장에서 만난 권성수(45) 씨는 "두 아이의 부모로서 바라본 세월호는 느낌이 다르다"며 "내 새끼가 안전한 사회 하나 바라고 12년을 기다렸는데, 녹슬어가는 배를 보니 국가가 무얼 했는지 묻고 싶다"고 토로했다.
세월호 참사는 2014년 4월 16일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중 진도 해상에서 침몰하며 시작됐다. 탑승자 476명 중 승객 304명이 사망·실종됐고, 이 중 단원고 학생과 교사 261명이 포함됐다. 이 숫자는 12년이 흐른 지금도 개인의 비극을 넘어 사회 전체의 상처로 남아 있다.
권 씨처럼 많은 이들이 여전히 목포신항을 찾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국 각지에서 이어진 발걸음은 기억을 증명하고 있었다. 평일인 이날 찾아온 추모객만 해도 20여 명. 주말엔 200~300명까지 늘어난다고 한다. 현장지원사무소 관계자는 "매년 비슷한 규모의 추모객이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진상 규명을 바라는 유가족들의 마음도 녹슨 세월호 선체만큼이나 깊게 파였다. 진상 조사와 책임 규명이 겉도는 사이, 유가족들의 삶은 통계로도 증명되지 않는 고통 속에 침몰하고 있다.
이원영 중앙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 연구팀이 2011년부터 2022년까지 유가족 388명의 진료 이력을 일반인과 비교한 결과, 참사 7년 차인 2020년부터 2년간 유가족의 평균 외래진료 횟수는 일반인보다 5.71회 많았다. 정신과 외래진료 역시 1.56회 더 잦았다. 심리적 외상은 신체 질환으로도 이어졌다. 연구팀은 재난의 책임 소재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과 피해자를 향한 비난이 유가족들의 고통을 심화시켰다고 짚었다.
그럼에도 유족들은 멈추지 않는다. 4·16연대는 세월호 12주기 ▲국가책임 인정과 공식 사과 ▲생명안전기본법 제정과 국가 재난대응체계 전면 개편 ▲비공개 기록 전면 공개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권고 이행 등을 요구하고 있다. 슬로건은 '진실과 생명안전은 기본이지'로 정했다.
4·16재단 관계자는 "참사가 날 때마다 특별법을 만들고 임시 조사기구를 꾸리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독립적인 상설 조사체계와 기본 법이 없으면 같은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며 "생명안전기본법은 선택이 아니라 안전사회를 위한 최소한의 출발선"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빠르면 2028년께 세월호 선체를 인근 고하도로 옮겨 '국립세월호생명기억관'을 건립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이들은 입을 모았다. 12년 전 그날의 질문에 국가가 이제는 '미완의 진실'을 채울 제대로 된 증거로 답하는 일이라고.
목포/임지섭 기자 ljs@namd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