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지갑이 비어간다... 괜찮을까?
편리함 뒤에 숨은 소외…고령·저소득층의 위기
결제망 붕괴 위험... 재난 시 경제 마비 우려
포용적 무현금화 등 균형 잡힌 미래 설계 필요
[지데일리] 요즘 거리를 걷다 보면 지갑 속 현금이 점점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스마트폰 하나로 커피 한 잔, 택시 요금까지 해결되는 일상이 익숙해지면서 현금의 역할이 희미해지고 있다. 한국 사회는 빠르게 현금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이는 결제 방식 변화에서 나아가 경제와 생활 전반을 재편하는 큰 흐름이다.

한국에서 현금 사용은 최근 몇 년간 급격히 줄어들었다. 한국은행의 2025년 경제주체별 화폐사용 현황 조사에 따르면 개인 월평균 현금 지출액은 32만4000원으로, 2021년 50만6000원 대비 36% 감소했다. 전체 지출에서 현금 비중도 21.6%에서 17.4%로 떨어졌다.
이는 2015년 38.8%에서 시작된 장기 하락 추세의 연장선으로,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결제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데 기인한다. 기업 부문에서도 현금 지출 비중은 1.2%에 불과해 계좌이체와 카드가 주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모바일 결제 앱(카카오페이, 토스 등)의 보급과 NFC 기술 발전이 배경이다. 정부의 공공기관 무현금 결제 의무화 정책도 가속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 현상의 배경에는 편리함과 효율성 추구가 자리 잡고 있다. 현금은 운반·보관의 불편함이 크고, 세금 누락이나 범죄 피해 위험이 따르는 반면 디지털 결제는 실시간 거래, 포인트 적립, 데이터 분석 기반 맞춤 서비스를 제공한다.
한국은행 자료처럼 20대 현금 지출 비중은 14.7%에 그치지만, 고소득층(15.1%)에서도 낮아 젊은 층과 부유층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글로벌 비교에서도 한국 현금 사용률 20%대는 미국·영국 10%대 초반과 비슷한 수준으로, 스웨덴처럼 현금 거래가 1% 미만인 '현금 없는 사회'로의 전진을 예고한다.
이는 경제 활성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비현금 거래 증가로 소비 데이터가 축적되며 마케팅 정교화와 금융 포용성이 높아지고, 현금 인쇄·관리 비용도 절감된다.
이 전환의 의미는 양면성을 띤다. 편리함이 사회 전체 효율을 높이는 한편, 디지털 인프라 의존이 새로운 취약점을 낳는다. 한국은행 조사에서 국민 46%가 현금 없는 사회에 반대했는데, 그 이유는 노인·어린이 등 금융 약자의 소외다.
70대 이상 현금 지출 비중은 32.4%, 저소득층(월소득 100만원 미만)은 59.4%로 여전히 높아 디지털 문맹층이 거래에서 배제될 위험이 크다. 실제로 현금 결제 거부 매장이 늘며 지방 고령자들의 불편이 심화되고, ATM 감소로 현금 접근성마저 떨어진다.
문제점은 결제망 마비나 사이버 공격 시 경제 활동이 정지될 수 있다. 재난 상황(정전, 자연재해)에서 현금이 비상수단 역할을 하지 못하면 사회 혼란이 가중된다. 소상공인에게는 단말기 설치·수수료 부담(14.1%가 주요 우려)이 증가하며, 현금 선호 고객 유실 위험이 있다.
또한 경제 불확실성 확대 시 현금 보유 수요가 늘어나는 경향(42.8% 응답)이 관찰되는데, 금리 상승기(42.9% 현금 줄임 응답)와 대비되는 이중성이 정책 설계의 난제를 제기한다. 이러한 부작용은 현금 없는 사회가 '포용적 디지털화'로 나아가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이처럼 현금 감소는 불가피한 추세지만, 완전 무현금화는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금융 교육 강화와 저소득층 지원, 결제망 안정화 대책을 병행해야 하며, 기업은 다중 결제 옵션을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현금은 여전히 사회 안전망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이 균형 잡힌 전환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미래를 담보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