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쉰들러 잇따라 승소…韓정부의 공정한 규제 인정받았죠” [이사람]

“연이은 국제투자분쟁(ISDS) 승소는 대한민국 정부가 외국 투자자들을 차별하지 않고 규제 권한을 공정하고 적절하게 행사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받았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쌓인 신뢰는 외국인 투자 유치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러한 판결이 나오는 데 일조할 수 있어 행운이었습니다.”
김준우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사법연수원 34기)는 15일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지난달 한국 정부가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의 ISDS에 이어 스위스 승강기 업체 쉰들러홀딩AG와의 소송에서도 승소한 데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한국 정부의 규제 권한 행사가 적법하게 이뤄졌다는 시장의 신뢰를 얻게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2012년부터 약 10년간 론스타 사건을 맡아 론스타 측 청구 모두를 기각시키는 결과를 이끌어낸 데 이어 이번 쉰들러 사건에서도 한국 정부를 대리해 승소 판정을 받아냈다. 두 사건의 승소를 통해 막아낸 국고 유출액만 7조 원이 넘는다.
정부와 원팀 꾸려 10여년간 국가 대리
외국자본 차별 깨고 규제 정당성 확보
7조 국고유출 막고 소송비까지 환수
韓 신뢰 높이며 외국인 투자유치 도움
쉰들러 사건은 현대엘리베이터의 유상증자와 콜옵션 양도 등을 둘러싼 현대엘리베이터와 2대 주주 쉰들러 간 경영권 분쟁에서 비롯됐다. 쉰들러는 2013~2015년께 진행된 현대엘리베이터의 각종 재무·지배구조상 조치로 자사 지분 가치가 훼손됐다고 보고 공정거래위원회·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등 한국 정부 기관이 이를 제대로 규제하거나 조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현대엘리베이터 지배주주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유상증자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쉰들러 지분율이 35%에서 약 15%로 희석되고 주가도 하락하는 등 투자 가치가 훼손됐다는 취지다.
쉰들러는 2018년 한국 정부를 상대로 ISDS를 제기했다. 초기에는 약 5000억 원 규모의 손해를 주장했지만 최종 청구액은 약 3200억 원으로 조정했다. 그러나 이번 판정에서 중재판정부는 이 청구를 전부 기각했고 한국 정부가 소송비용 96억 원을 돌려받도록 했다. 법무부는 이날 비용 전부를 환수했다. 통상적인 ISDS 사건에서는 패소한 투자자가 국가에 소송비용 지급을 미루거나 거부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 사건에서는 소송비용 전액을 변제받아 국익을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었다.
김 변호사는 승소 전략과 관련해 “쉰들러 측은 대한민국 정부가 정치적 동기에 따라 외국 자본과 국내 자본이 대립할 경우 국내 자본 편을 든다는 프레임을 짜서 공격했다”며 “이 프레임을 깨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정부의 의사 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제시하며 중재인들을 설득하는 전략을 폈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변호인단은 균형을 지키는 데 특히 신경을 썼다. 쉰들러 측 주장에 반박하면서도 현대엘리베이터 등 특정 기업이나 자본에 편향되지 않은 논리를 구성해야 했기 때문이다. 김 변호사는 “한국 정부가 현대엘리베이터 유상증자와 관련해 행사한 재량권이 실제 재량 범위 안에 있었고 합리적인 판단이었다는 점을 입증해야 했다”며 “이를 염두에 두고 내부 문서와 규제 논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8년간 맡아온 쉰들러 사건의 판정문이 나온 지난달 14일 새벽 2시, 밤을 지새우다 받아든 승소 결과에 김 변호사는 나라의 대리인 역할을 성공적으로 해냈다는 뿌듯함과 함께 지난한 소송 과정이 떠올랐다고 했다.

그는 “유럽 시차에 맞춰 서류를 제출해야 하다 보니 야근은 물론 새벽까지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기초 작업을 미리 끝내놓았더라도 마지막까지 한 글자라도 더 보고, 오탈자가 없는지 확인하고, 더 나은 증거를 찾아 반영하다 보니 후배 변호사들은 물론 스태프들도 격무에 시달렸다”고 돌아봤다. 이어 “2020년에는 출근길에 사고로 고관절이 부러진 적이 있었다”며 “걷기조차 힘든 상황이었지만 집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후배들이 보내온 소송 서면을 검토하던 때가 기억에 남는다”고 밝혔다.
변호사는 스피커, 양질의 자료는 음악
협업 즐거움 아는 후배 양성 이어갈 것
이번 승소에는 한국 정부와 법무부가 론스타·엘리엇·쉰들러 등 ISDS 사건을 연이어 겪으며 대응 역량을 축적한 점도 주효했다. 과거에는 법무부 국제법무과가 ISDS를 국제 업무의 일부로 담당했지만 한국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이 잇따르자 국제법무국 내에 국제법무정책과·국제법무지원과·국제투자분쟁과 등 세분화된 조직이 만들어졌고 대응 체계도 보다 정교하게 정비됐다.
김 변호사는 “론스타 사건 초기 때만 해도 담당 공무원들은 변론에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직접 증언에 나서는 데 상당히 조심스러워했다”며 “여러 건의 ISDS를 거치면서 ‘투명하게 대응하는 것이 맞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고 소관 부처의 협조를 얻어내는 일도 훨씬 수월해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ISDS 소송을 오디오에 비유했다. 그는 “변호사가 스피커라면 양질의 자료는 음악”이라며 “오디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기기도 중요하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환경에서 녹음된 음악’이라는 말이 있다. ISDS도 마찬가지로 중재인에게 사건의 전후 맥락을 보여줄 수 있는 논리적 자료가 무엇보다 중요했고 그런 점에서 이번 승소의 공은 정부에 돌리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국제중재가 사실상 불모지였던 시절부터 길을 닦아온 1세대 국제중재 변호사들의 역할도 컸다. 지금은 태평양을 비롯한 국내 대형 로펌 상당수가 국제중재 전담팀을 운영하고 있지만 팀이 처음 꾸려질 당시만 해도 한국 법조계에서 국제중재의 입지는 크지 않았다. 해외를 상대로 한 분쟁에 대한 이해도가 낮았던 탓에 국내 시장도 외국 로펌이 주도하던 시기였다.

김 변호사가 ISDS 전문가가 된 것도 우연한 계기였다. 변호사 생활 4년 차였던 2008년 론스타가 외환은행 지분 매각이 지연되며 손해를 입었다며 국제 소송 가능성을 한국 정부에 경고했고 김 변호사는 이 사건 자문에 참여하면서 국제중재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이후 2012년 론스타가 실제로 ISDS를 제기했을 때부터 본격적으로 소송에 합류했다.
그는 “당시 론스타는 금융위가 매수자가 아니라 매도자의 적격성을 문제 삼는 바람에 매각이 무산됐고 자신들이 차별적 대우를 받았다며 국제 소송 가능성을 시사했다”며 “말로만 듣던 ISDS가 한국에서 현실이 되는 과정을 직접 보게 된 셈”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전까지는 주로 민간기업 간 분쟁을 다뤘는데 국가의 대리인이 된다는 것은 매우 가슴 뛰는 일이었다”며 “당시 이듬해 유학을 갈 예정이었지만 사건이 본격화된다면 유학을 미루고서라도 꼭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김 변호사는 앞으로의 목표로 국제중재를 꿈꾸는 후배 법조인들에게 ‘협업의 즐거움’을 전하는 일을 꼽았다. 그가 몸담고 있는 태평양 국제중재팀은 24년 동안 고난도 국제분쟁에서 경쟁력을 입증해왔다.
그는 “20년 넘는 변호사 생활 동안 가장 큰 즐거움은 협업이었다”며 “일반 소송은 시니어 한 명에 주니어 한두 명이 붙는 경우가 많지만 국제중재 사건은 많게는 20명 가까이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논리를 구성한다. 그 과정에서 서로의 호흡이 착착 맞아떨어지는 재미가 저를 여기까지 끌고 온 동력”이라고 밝혔다. 이어 “후배들도 함께 일하는 즐거움을 계속 누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며 “단순히 후배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스스로 팀을 이끌며 또 다른 후배들에게 협업의 재미를 전할 수 있도록 멘토링하고 싶다”고 말했다.
노우리 기자 we1228@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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