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서 밀려난 지 4년6개월…노란 봄 슬픈 이들이 지켜나가는 기억

조해영 기자 2026. 4. 15.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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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12주기, 서울시의회 앞 기억공간 기억과 빛’ 들러보니
세월호 참사 12주기를 이틀 앞둔 14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앞 세월호 기억공간 ‘기억과 빛’ 앞에서 최헌국 4·16연대 운영위원(오른쪽) 등이 기억공간 존치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나무로 지은 다섯평 남짓(18.73㎡) 세월호 기억공간 ‘기억과 빛’에는 양옆을 에워싼 서울시의회 건물 그림자가 늘 드리워져 있다. 본래 자리는 아니다. 노란 모자를 쓴 세월호 희생자 김동영 아버지 김재만(62)씨가 참사 12주기를 앞둔 지난 8일, 기억공간을 가리켜 말했다. “우리를 자꾸 구석으로 보낸 거죠.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넓은 곳에 있었다면 시민들이 참사를 기억하고 아직 남은 과제가 있다는 것도 알릴 수 있을 텐데….” 기억과 빛은 2021년 8월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공사 과정에서 광장에서 ‘밀려난’ 뒤, 석 달 지나 옮겨 온 서울시의회 앞에 4년6개월째 ‘임시’ 상태로 서 있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지 16일로 꼭 12년이 된다. 그 시간 서울 도심, 특히 광화문광장은 참사 피해자와 시민이 만나 집요하게 참사의 교훈을 되새긴 상징적 장소였다. 참사 12주기를 일주일여 앞둔 지난 8일, 지금은 광장이 아닌 건물 사이 구석에 놓인 기억과 빛을 여전히 찾는 이들을 만났다.

4·16연대 활동가 성기봉(60)씨는 기억과 빛 세부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 중 하나다. 일주일에 세 번 집이 있는 강원도 원주와 서울을 오가며 오전 11시부터 저녁 8시까지 기억공간을 지킨 지 3년째다. 입구에 들어서면 보이는 세월호 선체의 모형과 그날의 타임라인이 적힌 벽, 가장 안쪽에 걸려 있는 희생자들의 사진까지 성씨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방문한 시민에게 공간을 소개하고 “앞에다가 오줌을 누려는” 극우 집회 참가자를 쫓아내다 보면 그의 하루가 훌쩍 간다. 성씨는 “아무래도 광화문 광장보다 오가는 사람들에게 많이 노출된 곳이 아니라 아쉽다”면서도 “작년에는 탄핵 집회에 온 젊은 친구들이 많이 찾아줘 고마웠다”고 말했다.

참사 석 달 뒤인 2014년 7월, 광화문광장에 처음 유가족 천막이 세워졌다. 광장에서 시민을 만나며 세월호 참사는 끔찍한 사고를 넘어 ‘생명과 안전’을 내건 사회 운동의 상징이 됐다. 천막을 기지 삼아 진상규명을 요청하는 유가족 단식과 시민 동조 단식(2024년 8월)이 이어졌고, 경찰 1만6천여명과 최루액이 투입된 강경 진압 속에 유가족과 시민 100여명이 연행되는 참혹한 순간(참사 1주기 추모집회)도 겪었다.

세월호 참사 12주기를 이틀 앞둔 14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앞 세월호 기억공간 ‘기억과 빛’ 내부 모습.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2019년 4월 천막 시절을 끝내고 건물 ‘기억과 빛’이 광화문광장에 들어섰다. 일상을 살던 시민들이 잠시 생각에 잠기는 곳, 또 다른 참사 피해자들이 위로받는 장소였다. 그 시절은 채 3년을 채우지 못했다. 광화문광장 공사 과정에서 강제철거를 막아보려 다시 시민과 유가족이 막아섰지만, 더한 충돌과 훼손을 막기 위해 결국 임시 이전을 받아들였다. 공사 완료 뒤 재설치를 논의하기로 한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시의회 앞 임시 공간 사용 기한마저 2022년 6월 끝났다. 기억과 빛은 현재 ‘무단’ 점용에 대한 변상금을 내며 버티고 있다.

위태로운 처지인 기억과 빛으로, 그래도 시민 발걸음은 이어진다. 유가족과 시민들은 매달 기억과 빛의 원래 자리였던 광화문 광장까지 나가 진상규명과 기억공간 존치를 요구하는 손팻말 시위를 한다. 이날 저녁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권고한 진상규명 추가 조치, 재발방지대책 이행하라’는 손팻말을 들고 광화문광장에 선 직장인 서경민(27)씨는 “청소년을 위한 책을 만드는 출판사에서 일하는데, 아이들에게 이런 어른들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나왔다”며 “다들 봄이 올 때, 노란색을 볼 때 마음 한구석에서 저와 비슷한 슬픔과 애도를 느낄 거라고 생각한다. 세월호참사를 ‘불편한 얘기’로 생각해 피하지 않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10·29 이태원참사 희생자 신애진씨 어머니 김남희(52)씨도 손팻말을 들었다. 김씨는 “우리 사회가 정말 생명을 최우선 가치로 둔다면 가장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 번화한 곳에 추모 공간에 있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추모와 기억, 다짐이 문턱 없는 일상적인 공간에서 이뤄지길 바란다. 김씨는 “장기적으로는 이태원 참사도 세월호 참사도 누구나 편안한 마음으로 올 수 있는, 너무 슬프지만은 않은 공간에서 기억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직무감사인 김재만(62)씨가 8일 오후 서울 중구 세월호 기억공간 앞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12년 전에 멈춘 아이들 모습과 닮은, 다만 다른 세상을 살아 야 할 청소년들도 기억공간을 찾는다. 이날 서울 강북중학교 동아리 학생들을 데리고 온 인솔 교사 이서원(47)씨는 “세월호참사가 학생들이 아주 어렸을 때 일어난 일이지만 수학여행에서 일어난 일이라 그런지 아이들이 아픔에 공감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노란 리본 한 개씩을 집어 들고 기억과 빛을 나서는 청소년들을 보며 성기봉씨가 말했다. “제가 힘이 닿는 한은 이 공간을 지킬 거예요.”

조해영 기자 hy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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