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조 필요한데 35조 그쳐”...기후재정 ‘구멍’ 메우라는 지적들 

이한 기자 2026. 4. 15.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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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기후위기 대응 재정이 목표 수준에 크게 못 미치며 이를 위해 기후대응 재원 조달 방식 전반을 재설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단순히 예산 규모를 늘리는 것을 넘어 누가 어떤 방식으로 기후 대응 비용을 부담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재원 조달 방식을 재설계하고, 이를 위해 누가 어떤 방식으로 기후 대응 비용을 부담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뤄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사진 클립아트코리아)/뉴스펭귄

기후재정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국가·지자체가 예산·기금을 온실가스 감축·배출사업의 영향을 분석해 재정운영에 반영하고, 이를 집행·평가하는 재정정책·재원체계를 뜻한다. 

우리나라 기후재정은 연간 수십조 원 규모다. 하지만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필요한 규모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책협의체 '기후재정포럼'이 15일 발간한 보고서 <기후재정, 얼마나 필요하고 어떻게 조달해야 하는가>에 따르면 현재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투입하는 공공 기후재정은 연간 약 35조 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필요한 공공 재정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약 2% 수준인 연 54~58조 원으로 보고서는 전망했다. 현재 재정 수준과 비교하면 연간 최소 20조 원 이상 추가 재원이 필요한 셈이다.

"기후재정, 규모뿐 아니라 구조 측면에서도 문제" 

보고서는 한국의 기후재정이 규모뿐 아니라 구조 측면에서도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온실가스 감축인지예산, 탄소중립 국가기본계획, 기후적응 대책 등 여러 정책 틀이 존재하지만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지 않아 전체 재정 규모와 집행 성과를 종합적으로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같은 문제는 실제 예산 편성 과정에서도 확인된다. 탄소중립기본계획에 포함된 재정 투자 목표는 매년 예산 편성에서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으며, 편성률은 80% 이하 수준으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이러한 상황에서 추가 재정 수요 역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건물 그린리모델링 확대, 히트펌프 보급, 재생에너지 투자 지원, 탄소포집·저장 기술 도입 등 주요 정책 과제를 추진하려면 연간 19~23조 원 규모의 국비와 지방비가 추가로 필요하다고 보고서는 내다봤다. 
기후대응 관련 주요 정책 과제를 추진하려면 연간 추가 재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료 녹색전환연구소)/뉴스펭귄

이러한 재정 수요를 모두 반영하면 필요한 기후 공공재정 규모는 연 54~58조 원 수준으로 늘어난다. 여기에 정책금융을 통해 연 10조~21조 원, 에너지요금이나 공기업 부담 등을 통해 연 8조~13조 원의 재원이 추가적으로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보고서는 기후재원 조달의 기본 원칙으로 ▲충분성 ▲배출자 책임 ▲지불 능력 ▲발전권 보장 등 네 가지를 제시했다. 특히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주체가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배출자 책임 원칙'을 핵심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은 이러한 원칙과 거리가 있다는 평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비교에서 한국의 유효탄소가격은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며, 배출권거래제 역시 낮은 가격과 과잉 할당 문제로 인해 재원 조달 기능이 충분히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 기후재원의 상당 부분이 배출 책임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는 일반 재원에서 충당되고 있는 점도 구조적 한계로 지적됐다.

배출자 책임 강화, 지불 능력 고려한 재원 조달 등 제시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세 가지 축의 재원 조달 방안이 언급됐다. 첫째는 배출자 책임 강화다. 대표적인 수단으로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개혁이 언급됐다. 발전 부문의 배출권 유상할당 비율을 2030년까지 100%로 확대할 경우 연간 약 9조 원 규모의 재원 확보가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이 경우 가구당 전기요금 인상 부담은 월 평균 약 4,100원 수준으로 추산됐다. 보고서는 이를 가구 중위소득의 약 0.13% 수준으로 평가하며,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비교적 제한적일 것으로 분석했다.

또 다른 방안으로는 교통·에너지·환경세 체계를 개편해 탄소세 중심의 과세 구조를 구축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연료의 탄소배출량을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고, 탄소세 수입의 일부를 기후대응기금으로 활용하는 구상이다.

보고서는 탄소세 수입의 절반을 기후대응기금으로 전입할 경우 연간 2조6천억~5조5천억 원 규모의 추가 재원 확보가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나머지 절반은 '탄소배당' 형태로 국민에게 환급해 제도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을 높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화석연료 보조금 축소 역시 중요한 재원 확보 방안으로 제시됐다. 현재 시행 중인 유류세 인하 조치를 장기 정책으로 유지하기보다 위기 대응의 한시적 조치로 제한하고, 비효율적인 보조금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면 연간 최대 10조 원 규모의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둘째는 지불 능력에 기반한 재원 조달이다. 이를 두고 초고액 자산가를 대상으로 한 '기후부유세' 도입 가능성도 제시했다. 순자산 1억 달러 이상의 자산가 약 800명에게 2% 수준의 순자산세를 부과할 경우 연간 약 6조5천억 원의 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조세부담률을 OECD 평균 수준으로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 대상에 포함됐다. 세수 자연증가분 활용과 조세지출 구조조정을 병행할 경우 2030년까지 연 48조 원 이상의 추가 재정 여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셋째는 보완적 재원 조달 수단 활용이다. 보고서는 일부 사업성 기금의 여유 자금을 재구조화해 최대 20조 원 수준을 활용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아울러 독일과 일본 등 주요 국가들이 활용하고 있는 '기후 국채' 발행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GDP의 1% 수준인 연간 약 20조 원 규모의 국채를 발행해 기후 투자 재원을 확보하는 방안이다.
기후위기 대응 재정이 목표 수준에 크게 못 미치며 이를 위해 기후대응 재원 조달 방식 전반을 재설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자료 녹색전환연구소)/뉴스펭귄

"기후재정, 비용 증가 아닌 경제 구조 전환 위한 투자" 

이러한 수단들은 개별적으로 작동하기보다는 복합적으로 결합된 재정 전략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배출자 책임을 강화하면서도 조세 정책, 재정 구조조정, 공공 금융 등을 동시에 활용하는 다층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다만 재원 조달 과정에서 사회적 수용성을 확보하는 문제는 중요한 과제로 남는다. 시민들은 배출자 책임 원칙 자체에는 대체로 동의하지만, 에너지 요금 인상이나 세금 증가에는 상대적으로 민감하게 반응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기후재정 논의의 핵심은 단순한 예산 확대가 아니라 재정 구조와 부담 체계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에 있다는 지적이다. 보고서는 현재처럼 여러 계획이 분절적으로 운영되는 구조에서 벗어나, 재원 조달 방식과 투자 계획을 함께 제시하는 '국가기후재정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후재정 투입을 단순한 비용 증가로 보지 말고 경제 구조 전환을 위한 투자로 해석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배출권거래제에서 발생한 수입을 녹색 산업에 재투자할 경우 2030년 실질 GDP가 기존 대비 0.2~0.4%포인트 상승할 수 있다는 분석 결과도 제시됐다.

최기원 녹색전환연구소 경제전환팀 팀장은 "강화된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달성하려면 현재의 재정 투자 계획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사업 내용과 재원 조달 수단을 함께 담은 국가기후재정계획 수립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방비에 준하는 수준의 재정을 기후 대응에 투입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에 대한 국가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