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로 줄어드는 전남 농어촌 ‘공중보건의’…의료 취약지엔 ‘춘래불사춘’?
전남도 공보의 411명 배치…작년보다 65명 감소, 역대 최저 수준
도내 보건지소 절반이상 ‘의사 無’…전남도, 의료 공백 막기 고심
(시사저널=정성환·배윤영 호남본부 기자)
전남 의과 공중보건의사(공보의) 충원율이 15%대까지 떨어지면서 농어촌과 도서 지역 의료 공백이 현실화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전남은 전국 최고 수준의 고령 인구 비율을 가지고 있다. 최근 의료 인력이 급감하면서 주민들의 건강권에 대한 우려 역시 커지고 있다. 공보의 제도는 의사·치과의사·한의사를 군복무 대신 농어촌 등 보건의료 취약지역에서 3년간 근무하게 한 병역대체복무제도 중 하나다. 이들은 농어촌 의료 사각지대를 지탱하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해왔다.

"공보의 없으니까 참 답답"…공보의 전역으로 진료 멈춘 보건지소
13일 오전 전남 담양군 A보건지소. 출입문에 '공중보건의 미배정으로 4월 내과 진료를 휴진한다' 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1200명 주민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A보건지소는 평일 낮인데도 오가는 환자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공보의가 3곳의 면단위 진료소를 순회 진료하면서 근근이 버텨왔지만, 이달 9일 의과 공보의가 전역하면서 내과 진료를 멈춘 것이다. 병원은커녕 하루아침에 의사마저 빼앗긴 시골 보건지소 앞 마당엔 '의료 취약지에도 봄은 왔지만 봄이 온 것 같지 않다(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찬바람이 불었다.
같은 날 찾은 담양군 B보건지소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주민 3300여명이 살고 있는 B면은 인구 절반에 달하는 1500여명이 65세 이상이어서 고령층의 방문이 잦았다. 하지만 이곳도 1주일에 두번씩 순회진료하던 공보의가 최근 전역하면서 내과 진료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환절기 큰 일교차로 감기에 걸린 어르신은 보건지소를 찾았다가 허탕을 쳤다. 혈압약이나 당뇨약 등 매일 복용해야 하는 약이 떨어진 환자도 발길을 돌려야 했다. 운전면허 적성검사와 예방주사 처방도 중단됐다.
농어촌 지역인 전남 17개 군은 공보의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하지만 필수 의료를 책임지는 공보의들이 대거 현장을 떠나게 돼 상황은 꽤 심각하다. 공보의 공백으로 주민들은 의사 한 번 만나려면 10km 넘는 인근 지역 면소재지나 승용차로 30분 이상 걸리는 광주까지 나가야 한다. 공보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의료공백까지 장기화되면 약 처방조차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농어촌지역 의료 공백은 지난 2월 중순부터 이미 시작됐다는 얘기도 나온다. 보건지소(읍·면 단위에 있는 작은 보건기관)에 근무하는 복무 만료 예정자들이 이때부터 잔여 연가를 순차적으로 사용하면서 실질적인 진료 업무가 이미 차질을 빚었다. 이들의 업무를 대신할 신규 공중보건의 배치는 이달 20일 쯤으로 예정돼 두 달 이상 공보의 복무 만료와 신규 배치간 진료 공백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당장 이달 중순부터가 더 걱정이다. 농어촌 의료 공백에 따른 피해는 오롯이 주민 몫이다. 80대 주민 최 아무개씨는 "필요한 약을 그때그때 청구하면 갖다 줬는데 처방할 공중보건의가 곧 전역한다면서 지난 진료 때 6개월 치 혈압 약을 (미리) 줬다"고 말했다.
전남 농어촌은 고령화가 심해지니까 이곳을 찾는 주민들은 대부분 고혈압과 당뇨 등 만성 질환을 앓고 있다. 올해 73세 박철수(화순군 춘풍면)씨는 혈압 약을 처방받기 위해 매달 이양면 보건지소를 찾는다. 처방전 받으려고 병원 가려면 돈을 줘야 하는데 보건지소는 65세 이상 어르신들은 무료로 해주기 때문이다.
박 씨는 "보건지소에 가서 '아프다'고 하소연하는 것만으로도 심리적인 안정감을 찾을 수 있었다"며 "공보의가 없으니까 불안하고 참 답답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전남은 고령화와 지리적 특성상 공보의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지난해 7월 기준 전남 인구 178만여 명 가운데 65세 이상 고령층은 49만7000여 명이다. 비율로는 27.9%에 달했다. 교통망이 불편한 섬이나 산간 지역 주민들은 작은 질환조차 병원을 제때 찾지 못해 중증으로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심근경색·뇌졸중 같은 응급 상황 발생 시 골든타임을 놓치기도 쉽다.
이뿐만 아니다. 전남은 전국 광역자치단체 중 유일하게 의과대학이 없는 곳으로 매년 70만 명의 도민이 수도권 등 타 시·도 병원으로 원정치료를 떠나면서 연간 1조5000억원 상당의 의료비 유출이 발생하고 있다.

'의사 없는' 보건지소…216곳 중 절반도 못 채울 판
엎친데 덮친 격으로 파수꾼 역할을 하던 공보의들이 4월 초 대거 전역하면서 농어촌 지역 의료공백이 현실화하고 있다. 15일 전남도에 따르면 올해 의료취약지 공중보건의사 업무에 종사할 신규 공보의 173명 등 총 411명을 배치했다. 이들은 전남도 내 보건소·보건지소 238곳, 지방의료원 3곳, 취약지 병원 응급실 17곳, 병원선 2척 등 총 274곳에서 근무한다.
분과별로는 의과 128명, 치과 108명, 한의과 175명이다. 올해 공보의 배정 규모는 지난해보다 65명 줄어든 역대 최저 수준이다. 감소 폭은 의과 51명, 치과 1명 증가, 한의과 15명 감소로 집계됐다.
문제는 전남지역은 농어촌과 도서 지역 비중이 매우 커서 의과 공보의 수요가 높지만 공급이 급감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남에서 올해 활동 중인 의과 공보의는 총 179명으로 2010년 474명의 3분의1 수준에 그친다. 그나마 올해 4월 전남은 60명(33.5%)이 전역한 반면 신규 편입은 9명에 그쳐 의료 취약지에 비상이 걸렸다.
본지 취재결과, 도내 보건소와 보건지소에서 근무 중인 공보의(의학과) 179명 중 60명(34%)이 4월9일 복무 만료로 전역했다. 반면 이달 신규 편입인원은 9명에 불과해 전체 128명으로, 전년보다 51명이 감소했다. 충원율 15%다. 지난해 배치 인원 71명에 비해 턱없이 미치지 못한 수준이다.
이에 따라 전남 도내 보건지소 절반 이상이 공중보건의사(공보의)를 단 1명도 배치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 3월 기준 전남지역 보건지소 공보의 배치율은 41.6%(90명)에 그쳤다. 지난 2024년 배치율 61.3%(133명)와 비교하면 2년 사이 19.6%포인트 감소했다. 지침에 따라 공보의를 배치해야 하는 도내 보건지소 수는 216곳이다. 이 가운데 126곳이 미배치 상태다. 미배치율 21.4%다.
전남은 충북과 함께 공보의를 배치하지 않은 보건지소 수가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의료 취약지'라는 고질적인 멍에를 짊어진 전남도의 보건지소들이 말 그대로 '의사 없는 보건지소'이라는 전대미문의 직격탄을 맞게 된 것이다.
공보의가 배치되지 않은 보건지소는 순회진료를 통해 의과를 운영 중이다. 보건지소 18곳은 인력난 가중으로 인해 순회진료마저도 운영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올해 충원율이 15% 수준에 머물면서 85%는 공석으로 남아 한동안 사라졌던 무의촌이 속출할 것으로 보인다. 전남도는 16일쯤 신규 배치 공보의를 조만간 각 시·군에 통보할 예정이다.
전남도 관계자는 "전남 지역 보건지소 216곳 중 공보의가 없어 이미 순환 진료 등에 의존하는 곳이 126곳(58%)에 달한다"면서 "상급 종합병원 부재와 공보의 급감이 맞물리며 필수의료 체계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공보의가 배치된 전남이지만 최근 들어서는 감소세가 뚜렷하다. 2025년 기준 전남의 전체 공보의 근무인원은 276개소 476명(의과 179, 치과 107, 한의과 190)이다. 이 가운데 신규 공중보건의사는 194명이다. 이는 전년보다 57명(감소 의과 50명·한의과 9명·증가 치과 2명) 줄어든 규모다. 특히 지난해 전남에 배치된 의과 공보의는 지자체 요청 인원 204명의 3분의 1 수준인 71명에 그쳤다. 충원율은 34.8%에 불과했다.
전남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충원율 100%를 넘겼다. 2020년에는 요청 인원 108명보다 많은 137명이 배정돼 126.9%를 기록했고, 2021년과 2022년에도 충원율 153.2%, 113.4%를 기록했다. 올해는 달랑 9명이다. 전남지역 의과 공보의는 지난 2010년 474명에서 368명(2015년)→331명(2020년)→179명(2025년) 등으로 지난 15년간 62.2%가 감소했다.
특히 2023년부터는 3년 연속 하락세가 가팔랐다. 그해 요청 인원 122명 중 109명만 배치돼 89.3%에 그쳤고, 2024년엔 166명 요청에 84명(50.6%)이 배치됐다. 지난해 전남 지역 의과 공보의 충원율은 34.8%로 역대 최저 수준까지 추락했다. 전남 일선 지자체는 의과 공보의 204명을 요청했지만, 실제 배치는 71명에 그쳤다.
일선 읍면 단위 보건소·보건지소에 배치되는 '공보의'가 줄면서 지역 보건의료기관에 의지하는 의료 취약지는 비상이 걸렸다. 가장 심각한 곳은 민간의료기관이 없이 보건지소만 있는 면 단위 농어촌 지역이다. 군 복무 대신 의료 취약지에 배치되는 공보의 마저 매년 줄고 있어서다. 전남 보성군의 보건지소 10곳 중 7곳은 2023년부터 공보의가 결원됐다.
득량 보건지소 의과 공보의는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24㎞ 떨어진 벌교 보건지소로 순회 진료를 가야 한다. 공중보건의 한 명이 1만3600여 명을 맡고 있는 것이다. 섬이나 오지에서의 의료공백도 심각하다. 신안 압해도의 보건지소. 인구가 8000여 명이 살지만 내과 진료실은 1년 넘게 비어있다. 간단한 감기 진료조차 민간 의원기관이나 목포 시내 병원을 찾아야 한다.
형편이 나은 시 단위도 예외가 아니다. 광양시의 경우 지난 9일 이후 시 전체 보건기관에 배치된 공보의는 1명뿐이다. 관내 6개 면 보건지소 가운데 봉강·옥룡·진월·다압면은 지역 내 민간의료기관 조차 없다. 옥과면과 진상면은 의과 진료가 중단된 상태다. 시는 중마통합보건지소 관리의사 채용공고를 진행 중이지만 충원 때까지 공중보건의 1명이 광양보건소와 중마통합보건지소를 요일별로 나눠 순회 진료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공보의 기피 현상의 배경으로 '과도한 복무 부담'을 꼽는다. 공보의의 의무 복무기간은 기본 3년에 군사훈련까지 합쳐 37개월로, 일반 병사 복무기간(18개월)의 두 배 이상이다. 이 때문에 젊은 의사들 사이에서는 차라리 현역 복무가 낫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2024~2025년 의정갈등으로 인한 전공의 수련 공백, 의대생 교육 공백과 저출산으로 병역 자원 감소, 의대 여학생 비율 증가 등도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농어촌 등 지역 의료를 책임지는 공보의 지원자가 급감하자 지역사회와 정치권은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나섰다. 전남도의회는 지난해 7월 전남도의회는 '공중보건의 제도 개선과 지역의사제 도입 및 국립의대 신설 촉구 건의안'을 국회·대통령실·복지부·국방부 등에 전달했다. 공보의 단체를 비롯한 의료계 당사자들은 꾸준히 복무기간 단축을 요구해왔지만 지역 정치인들이 나서서 이를 요청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공보의 의존도가 높은 지역의 의료공백이 큰 것으로 해석된다.
더불어민주당 김윤 (비례대표) 의원도 "공보의 충원율 급락은 지역 의료 위기의 본격적인 신호"라며 "정부와 국회가 복무기간 단축 문제를 비롯해 인력 확충 방안을 조속히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남도 '안간힘'…도서·벽지 우선 등 대책 마련
전남도는 농어촌 의료 공백 최소화를 위한 관련 대책 마련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도는 지역 1차 의료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보건기관 운영체계 개편과 인력 활용 다각화 등의 대응책을 마련했다. 우선 공보의는 민간의료기관이 없는 도서·벽지 보건기관에 우선 배치한다는 방침이다. 미배치 보건지소에 대해서는 진료 기능 유지를 위한 기능 개편을 추진한다.
의과 공보의가 없는 보건지소 65곳에는 진료행위가 가능한 보건진료 전담공무원을 배치해 의과 진료를 상시 제공한다. 또 139개 보건지소는 보건소 공보의를 활용한 순회진료를 하고, 민간 의료기관이 있는 12곳은 건강증진형 보건지소로 전환해 주민 밀착형 건강증진사업을 중점 추진한다.
필수의료 유지 대책도 병행한다. 총 17억 원을 들여 전문의 24명에게 월 400만 원의 지역근무수당과 주거·연수·연구 지원을 제공해 장기 근무를 유도할 계획이다. 비대면 진료와 원격 협진체계 구축을 위한 시군 공무원 전산 교육도 추진 중이다. 시니어 의사 등 관리의사 채용 역시 지역 의사회와 협력해 진행한다.
정광선 전남도 보건복지국장은 "지역 의료공백 방지는 더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며 "의료 취약지 도민이 어디서든 안심하고 진료 받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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