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잡으려다 ‘내일’ 잃는 한화
승리조·추격조 구분 없는 기용에 혹사 우려…투수진 균열 확대
[충청투데이 권혁조 기자] 한화이글스가 시즌 초반부터 흔들리면서 김경문 감독의 이른바 '믿음의 야구'를 바라보는 팬들의 시선도 싸늘해지고 있다. 흔들리는 불펜을 끝까지 끌고 가는 운영, 선발로 키워야 할 유망주들을 잇달아 구원진으로 돌리는 기용이 이어지면서 성적과 육성 모두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분위기다.
불만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장면은 14일 삼성전이었다. 마무리 김서현은 극심한 제구 난조 속에 4사구 7개를 내주며 무너졌지만, 벤치는 역전이 허용될 때까지 교체하지 않았다. 팬들 사이에서는 사실상 '벌투'에 가까운 운용 아니었느냐는 비판까지 나왔다.
15일 현재 한화는 6승 8패로 1위 LG 트윈스에 4경기 뒤진 7위에 머물러 있다. 페라자와 문현빈, 강백호 등이 타선에서 분전하고 있지만, 마운드는 정반대다. 팀 사사구 99개로 리그 최다, 평균자책점은 6.38로 최하위다. 불펜 전체 평균자책점도 9.05, 이닝당 출루허용률(WHIP)은 2.31에 이를 정도로 마운드 붕괴가 심각하다.
우려는 단순한 투수 부진을 넘어 운용 방식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정우주와 황준서 같은 1라운드 지명 선수는 물론 조동욱, 박준영 등 장기적으로 선발 자원으로 키워야 할 투수들까지 팀 사정을 이유로 불펜에 끌어다 쓰고 있어서다. 당장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미래 자산을 소모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 때문에 한화가 결국 올해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할 경우 성적은 물론 미래까지 함께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도 커진다. 2010년대와 2020년대 초반 이어졌던 암흑기가 되풀이될 수 있다는 우려다.
젊은 불펜진을 둘러싼 혹사 논란도 짙어지고 있다. 김경문 감독은 지난 15일 SSG전을 앞두고 "우리나라 불펜투수들은 2~3년 하면 다 고장 난다. 감독이 보호를 안 해주면 선수들 수명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지는 경기에서 그렇게 욕심을 부리는 것은 아니라고 봤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실제 운용은 이 발언과 거리가 있다. 한화가 치른 14경기에서 정우주는 10경기, 조동욱은 9경기, 박상원은 8경기에 나섰다. 승리조와 추격조 구분 없이 사실상 거의 매 경기 등판한 셈이다. 정우주는 NC 김영규와 함께 KBO 최다 출장 기록도 안고 있다.
2025년 전체 2순위로 입단한 정우주는 지난해 고졸 신인임에도 51경기, 53과 3분의 2이닝에서 탈삼진 82개, 평균자책점 2.85를 기록하며 한화 불펜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올해는 10경기, 6과 3분의 2이닝에서 탈삼진 10개를 잡고도 볼넷 7개, 몸에 맞는 공 2개를 내주며 평균자책점 9.25로 흔들리고 있다.
더 아쉬운 대목은 정우주가 이미 선발 가능성도 보여준 투수라는 점이다. 그는 지난해 시즌 막판 LG전 대체선발로 3과 3분의 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고, 월드베이스볼클래식 일본과의 연습경기에서도 3이닝 퍼펙트를 선보였다. 한화를 넘어 한국 야구를 대표할 투수로 성장할 수 있다는 평가까지 받았지만, 올해는 불펜 소모 속에 지난해와 전혀 다른 모습이다.
조동욱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올 시즌 한화 불펜의 몇 안 되는 희망으로 꼽히지만, 아직 고졸 3년 차에 불과한 선발 육성 자원이다. 그럼에도 정우주와 함께 이른바 '애니콜'처럼 투입되고 있다. 황준서 역시 2024년 1차 지명 당시 손혁 단장이 "류현진의 후계자로 성장할 것"이라고 평가했던 선발 자원이지만, 지금은 대체선발과 불펜을 오가는 역할에 머물러 있다.
한화가 선발로 키워야 할 1라운드급 유망주들을 성장의 시간보다 당장의 성적에 맞춰 불펜으로 돌리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해 시속 160㎞ 강속구를 앞세워 기대를 모았던 김서현마저 14일 삼성전에서는 구속이 140㎞대 중반에 머문 채 7개의 사사구를 기록하며 무너졌다.
더 큰 걱정은 앞을 내다봤을 때다. 문동주와 류현진을 제외하면 내년 이후 토종 선발진의 윤곽도 뚜렷하지 않다. 특히 류현진은 내년이면 40대에 접어든다. 지금처럼 유망주를 불펜에서 소모하다 보면 한화가 또다시 선발 자원난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반면 한화에서 제대로 기회를 얻지 못했던 배동현은 키움으로 옮긴 뒤 올 시즌 벌써 3승, 평균자책점 1.65를 기록하며 다승 1위, 평균자책점 3위에 올라 있다. 내부 육성과 선수 활용 모두에서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성적과 육성 모두 실패하고 있다는 이글스 팬들의 비난이 커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당장의 한 경기, 한 경기를 붙잡으려다 팀의 몇 년 뒤까지 갉아먹는 선택이 반복된다면, 한화가 치러야 할 대가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권혁조 기자 oldboy@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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