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명작 한자리에…겸재정선미술관 ‘소나무, 늘 푸르른’ 특별전
6월 21일까지 개최…정선 3점 포함 37점 전시

사시사철 푸르른 소나무는 오랜 세월 우리 곁에 머물며 예술 속에서 인간의 삶과 이상을 비춰왔다. 오늘날 소나무는 장수나 절개 같은 상징을 넘어 살아 움직이는 생명력과 시간의 흐름을 품은 존재로 다시 읽힌다.
조선시대부터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작품 속 소나무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전시가 문을 열었다. 서울 강서구 마곡동 겸재정선미술관은 겸재 탄생 350주년을 맞아 6월 21일까지 특별기획전 ‘소나무, 늘 푸르른’을 개최한다.
전시는 정선의 작품 3점을 포함해 모두 37점을 선보인다. 제1기획전시실에서는 ‘장생, 기개, 은일’을 주제로 조선 후기 화가들이 그린 소나무를 통해 상징의 의미를 짚는다. 제2기획전시실은 주제 ‘상징에서 풍경으로’에 맞게 근현대 작품을 중심으로 변화한 시선을 보여준다.

조선의 대표 화가 겸재 정선(1676~1759)은 조선 후기, 중국 화풍에서 벗어나 한국만의 산수화 형식과 흐름을 세운 인물로 꼽힌다. 이날 전시 개막을 맞아 ‘겸재 작품세계의 변천 과정’을 강의한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겸재의 그림은 눈에 보이는 풍경을 그대로 옮기기보다 회화적 완성도를 중시해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풍경의 본질을 드러낸다”고 설명했다.
겸재정선미술관이 특별기획전에서 ‘소나무’를 중심으로 구성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겸재가 금강산을 여러 차례 답사하며 수많은 작품을 남겼듯이 소나무의 면면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강조하거나 불필요한 요소를 덜어내는 방식으로 묘사했다.


전시의 첫 작품인 겸재의 ‘사직노송도’에서 그가 포착한 소나무의 대표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서울 종로구 사직단에 있는 수백 년 된 늙은 소나무를 보고 그린 그림이다. 소나무의 뒤틀린 가지가 먹으로 굵게 칠해진 모습은 역동적인 용의 기개가 떠오른다. 종이 가득 뻗어간 소나무의 형상과 늙은 소나무의 수염 같은 솔잎을 섬세하게 재현했다. 이 밖에도 ‘다람쥐’, ‘무고송이반환’과 같이 전시된 작품에서 겸재가 자연 속 지조와 은일의 삶을 상징하는 요소로써 표현한 소나무를 만나볼 수 있다.

이후 김홍도의 ‘송하선인취생도’, 이인문의 ‘송하담소도’에선 조선시대 소나무가 상징하는 장수와 절개, 은일의 뜻을 확인할 수 있다. 인물들은 나무 아래에서 책을 읽거나 잠시 잠에 들고 벗과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눈다. 화면에 담긴 여유는 당시 민중이 그리던 삶의 모습과 투영한다. 영지버섯과 함께 등장해 장수를 기원하는 뜻을 더하기도 하고 권력에서 벗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의지를 암시하기도 한다.

2부에서는 20세기 초 근대로 넘어오며 소나무를 담은 작품의 변화가 나타난다. 전통적 상징은 이어지지만 화면 구성과 소재는 한층 다양해졌다. 채용신의 ‘십장생’에서는 소나무가 중심을 잡은 십장생도에 원숭이나 앵무새가 등장한다. 정찬영의 ‘공작’에서는 화려한 깃털의 공작새를 지탱하는 소나무에서 장식성과 안정성이라는 상반된 미감을 감각적으로 표출한다.

현대에 이르면서 소나무의 의미는 다시 달라진다. 상징은 옅어지고 풍경 속 요소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박노수의 ‘장생’과 ‘향운’처럼 강한 색채와 과감한 구성을 택하거나 이숙자의 ‘1999-3’처럼 사진에 가까운 세밀한 묘사로 형태를 도드라지게 하는 작업이 눈에 띈다. 김종규의 ‘빛으로부터-나무형상’처럼 빛과 대비를 활용해 나무의 질감을 강조하는 시도도 생경하다. 전통 기법을 바탕에 두면서도 재료와 표현은 훨씬 자유로워졌다.
조환의 ‘무제’도 눈길을 끈다. 소나무 가지의 긴장과 비틀림을 철로 풀어낸 작품이다. 단단하고 차가운 금속은 전통 회화 속 소나무가 지녀온 상징과 맞물리며 묘한 대조를 이룬다. 자연의 생명력은 산업 재료로 옮겨지면서도 꺾이지 않는 기세를 뽐낸다.
변함없는 푸름 속에서 소나무는 시대마다 다른 의미를 입으며 지금도 새로운 풍경으로 탈바꿈한다. 전시에서는 곳곳에 흩어져 있던 소나무 배경의 명작을 한곳에서 감상할 수 있다. 대표작을 중심으로 한국 회화 역사 속 소나무의 표현 양식을 톺아볼 기회다. 관람료는 성인 기준 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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