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헌법불합치’ 7년…“시스템 없으면 ‘36주 산모’ 반복된다” [플랫]

플랫팀 기자 2026. 4. 15.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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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형법상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기 전인 2016년 10월 23일 오후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앞에서 ‘다음 카페 워마드 및 여성커뮤니티 연합’ 소속 여성들이 임신중단 전면 합법화를 촉구하는 집회을 갖고 있다. 서성일 기자

헌법재판소가 형법상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지 7년이 됐다. 헌재는 2019년 4월11일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중시해야 한다고 판단하며 해당 조항이 위헌적이라고 결정했으나, 법을 개정해야 할 국회는 수년째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그 사이 임신중지가 가능한 시기나 사유 등 법적 근거는 여전히 모호한 영역으로 남았고, 현장의 혼란은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36주 임신중지’ 산모가 살인죄로 기소돼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문과 ‘36주 산모’의 판결문 등을 분석해 제도적 공백의 현실을 짚어 봤다.

헌재 “임신중지는 여성 자기결정권 영역”…국회는 감감무소식

헌재는 2019년 임신중지를 형사처벌 대상이 아닌, 헌법이 보호해야 할 기본권의 문제로 판단했다. 결정문을 보면 헌재는 “자기결정권에는 여성이 자신의 존엄한 인격권을 바탕으로 자율적으로 생활영역을 형성할 권리가 포함된다”며 “임신한 여성이 자신의 신체를 임신 상태로 유지해 출산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할 권리 역시 이에 포함된다”고 명시했다. 임신·출산·육아가 여성의 삶에 근본적이고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여성이 임신을 유지할지 말지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판단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법과 제도는 마련되지 않고 있다. 헌재는 헌법불합치 결정 후 2년 안에 대체 법안을 마련하도록 주문했다. 그러나 21대 국회(2020~2024년)에서는 정부안을 포함해 형법과 모자보건법 개정안이 각각 6건과 7건 발의됐으나 모두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22대 국회에서도 현재까지 관련 법안이 4건 발의됐지만,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발의 후 8개월이 지나서야 겨우 법안심사소위원회에 상정했다. 그나마도 논의는 전혀 진행되지 않았다. 여성이 임신중지를 할 수 있는 주수, 약물을 사용한 임신중지 방식, 의료인의 시술 거부권 인정, 건강보험 적용 등 핵심 쟁점이 모두 물음표로 남아 있다.

‘36주 임신중지’ 산모에 법원“충분한 정보 있었다면 다른 결과”
2025년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보장네트워크’ 활동가들이 23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9.28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를 위한 국제행동의 날’ 맞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입법 공백은 여성들의 현실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금도 많은 의료기관은 임신중지 시술을 거부한다. 관련 정보 역시 여성들에게 체계적으로 제공되지 않는다. 이렇다보니 온라인 비밀 게시글이나 비공식 상담에 의존해 부정확한 정보를 접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안전하게 시술받을 수 있는 시기를 놓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런 제도 공백은 최근 법원 판결에서도 드러났다. 2024년 유튜브에 ‘36주 낙태 후기 영상’을 올린 20대 여성 권모씨는 최근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1심 법원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재판장 이진관)의 판결문을 보면 권씨는 2024년 3월 생리가 석달 가량 멈췄다며 산부인과를 찾았으나, 당시 병원은 다낭성 난소 증후군이라는 진단만 내놨다.

그로부터 3개월 뒤 “배가 계속 불러온다”며 내과를 방문한 권씨는 그제야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 이미 임신 34주 정도로 고주차에 접어든 때였다. 적절한 상담이나 안내를 받지 못한 권씨는 결국 브로커를 통해 불법적인 경로로 임신중지를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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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법원은 권씨가 태아가 죽을 것을 알면서도 범행을 저질렀다며 질책하면서도, 권씨를 도울 국가 시스템이 없었다는 점을 들어 집행유예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만약 자신의 임신 사실을 초기에 인지하고 전문가로부터 정신적 지지와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으면서 숙고할 수 있었다면, 또 국가가 임신·출산·육아에 장애가 되는 사회적·경제적 조건을 적극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면 이 사건과는 충분히 다른 결과에 이를 수 있었다”고 판시했다.

의료 현장 혼란…“병원 거절·정보 부족 여전”

전문가들은 명확한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사법부가 개별 사건의 판단을 내리는 상황에 대해 우려한다.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의 나영 대표는 기자와 통화하면서 “ 정확한 책임 소재나 수술의 안전한 방법이 없으니 의료진은 수술 자체를 거부하게 된다. 그러면 위기 임신부는 브로커를 통해 안전하지 않은 방식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권씨 사례처럼 적절한 시기에 필요한 도움을 받지 못해 살인죄 등으로 처벌받는 일이 앞으로도 일어날 수 있다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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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 대표는 “임신중지 허용 주수를 14주, 24주 식으로 정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임신중지 시스템 전반에 대해 의료인에게 명확한 가이드를 안내하는 것부터가 필요하다”며 “여성과 의료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지 말고, 인프라 구축과 제도 지원을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셰어를 포함한 시민단체들이 모인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보장 네트워크(모임넷)’는 헌법불합치 결정 7주년을 맞아 11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보건복지부는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보건의료체계를 구축해야 했으나 현황 조사, 유산유도제 도입, 건강보험 보장, 의료 체계 구축, 정보 제공 등 어느 것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 김정화 기자 clean@khan.kr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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