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V 시대 성큼… 하만은 ‘레디’로 준비 완료

데이터와 소프트웨어 기반 사용자 경험이 기업들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떠오른 가운데 삼성전자도 지난 2017년부터 전장 사업 역량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자회사 하만 인터내셔널을 중심으로 오디오, 디스플레이, 통신 기술을 아우르는 통합 솔루션 구축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이 같은 전략은 지난 8일 하만 인터내셔널 코리아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인근에 마련한 기술 시연회를 통해 구체화됐다. 그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가전 IT 박람회(CES)에서 고객사와의 접점을 마련해왔지만, 한국에 별도 행사를 마련해 전장 사업을 소개한 건 처음이다.
이번에 하만이 선보인 ‘하만 로드 레디(HARMAN Road-Ready)’는 차량에 즉시 적용 가능한 수준의 전장 솔루션 포트폴리오다. 인포테인먼트는 물론, 커넥티비티와 오디오 기술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형태다. 별도 개발 부담을 줄이면서 즉각적으로 기술 활용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완성차업체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글로벌 완성차 ‘큰손’인 현대자동차그룹과의 협력 가능성에도 업계 이목이 쏠린다.

“소리·진동·조명이 결합된 하만 카돈 비전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시연차 뒷자리에 오르자 문소연 하만 인터내셔널 코리아 총괄이 클래식 음악을 켰다. 고음과 저음 영역대 다양한 악기가 혼재된 곡이라 실내에서 들려오는 음질을 고루 파악할 수 있는 곡이었다. 그 사이 중앙 모니터에는 AI 역할을 하는 아이콘이 요술봉에서 그라마폰으로 바뀌었다. 장르 옵티마이저 기본 기능이 실행된 것이다.
장르 옵티마이저는 전자음악에서 더욱 직관적으로 느껴졌다. 등받이에서 미세한 진동이 전달되기 시작하는데 ‘텍타일 스피커’라 불리는 소자가 저음에 맞춰 작동됐다. 마치 게임 상황에 따라 손끝으로 진동이 전해지던 플레이스테이션 조이스틱을 처음 접했을 때 감각이 떠올랐다. 시트가 음악 리듬에 맞춰 몸을 자극하면서 몰입감은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록 음악에서는 차량 내부 라이팅까지 비트에 맞춰 반응하며 시청각이 결합된 몰입감을 선사했다.
이 시스템의 또 다른 특징은 ‘개인화’다. AI 추천 설정 외에도 운전석, 조수석, 뒷좌석 각각의 서라운드와 진동 강도를 개별 조정할 수 있다. 동일한 공간 안에서도 탑승자마다 전혀 다른 청취 환경 구현이 가능해진 것이다.
‘무드’ 기능은 차라는 공간 개념을 한층 확장시킨다. 산속, 도심, 해변 등 특정 환경을 가상으로 구현해 배경음과 사운드를 결합한다. 바닷가 모드에서는 파도 소리와 바람 소리가 음악과 어우러지고, 사용자는 그 비중을 보다 세밀하게 조절할 수 있다. 하만 사운드 시스템은 귀를 즐겁게 하는 수준을 넘어, 오감으로 체감하는 경험으로 진화했음을 보여줬다.
하만 시연 공간에서는 자동차의 본질적 감성으로 여겨지던 사운드조차 소프트웨어로 재구성했다. 내연기관 시대에 기계적 결과물이었던 엔진음이 정교하게 설계된 ‘디지털 경험’으로 바뀌고 있었다.
현장에서 소개된 ‘인트루먼트’ 기술은 차량 사운드 개발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는다. 기존에는 특정 차량의 감성을 구현하기 위해 복잡한 물리 모델링과 장시간의 튜닝 작업이 필요했다. 반면 인트루먼트 기술은 벤치마킹 대상 차량의 소리를 직접 녹음한 뒤 이를 새로운 차량의 ‘베이스 사운드 레이어’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 이 과정에는 ‘주파 동기 합성’ 기술이 적용된다. 차량 파워트레인 특성에 맞게 실시간으로 재구성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 고성능 스포츠카의 사운드를 샘플링한 뒤, 이를 다른 차량의 출력 특성과 회전 영역에 맞춰 자연스럽게 이식하는 것이다.
이 기술의 강점은 개발 효율성에 있다. 기존 엔진 사운드 설계는 수개월 이상의 튜닝과 반복 검증이 필요했지만, 해당 방식은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다양한 사운드 콘셉트를 구현할 수 있다. 완성차 업체 입장에서는 브랜드 정체성을 반영한 사운드를 짧은 시간에 쉽게 적용할 수 있게 된다.
‘주파 지형 합성’ 기술도 적용됐다. 이는 음악 제작에 활용되는 신디사이저 개념을 확장한 것이다. 기존 1차원적 음색 제어를 넘어 3차원 공간에서 사운드를 설계한다. 음의 높낮이뿐 아니라 질감과 두께, 공간감까지 동시에 제어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음악적 완성도를 갖춘 차량 엔진 사운드 구현이 가능해졌다. 실제 시연에서는 다층적인 사운드 레이어가 겹겹이 쌓이며 극장용 오디오 시스템을 연상시키는 풍부한 음향이 구현됐다.

디스플레이에는 삼성전자 TV에 적용된 기술이 반영됐다. 삼성전자 네오 QLED 기술을 통해 일반 차량용 디스플레이와는 확연히 다른 선명도를 보여줬다. 밝은 야외 환경에서도 색감이 또렷하게 살아났다. 조도 변화 상황에서도 화면은 즉각적으로 밝기와 대비를 조정하며 안정적인 시인성을 유지하는 모습이었다. 업계 최초로 HDR10+ 자동차 인증을 받으며 경쟁력을 입증하기도 했다.

‘레디 비전 AR HUD’는 한층 진화한 형태였다. 전방 시야 위로 겹쳐지는 정보는 또렷하면서도 눈에 부담을 주지 않았고, 강한 햇빛 아래에서도 시인성이 유지됐다. 최대 1만5000니트 밝기를 구현해 직사광선 환경에서도 정보 식별을 가능하게 해준다. 제조사 입장에서는 UI를 직접 구성할 수 있다는 점도 차별화 요소로 보인다.
체험 공간을 지날 때마다 ‘차가 아니라 하나의 플랫폼’이라는 말이 계속 떠올랐다. 차량 경험의 중심에는 ‘하만 레디 업그레이드’가 자리하고 있었다. 차량 내 다양한 시스템을 하나로 묶고,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 진화하는 두뇌에 가까운 존재다. 소프트웨어 기반으로 기능을 확장하고 업데이트할 수 있는 구조 덕분에 차량은 출고 이후에도 계속해서 새로워진다.
안전 영역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하만 레디 케어’는 운전자 상태를 실시간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유럽 신차 안전성 평가 프로그램(유로 NCAP)을 충족하는 운전자 모니터링 기술에 삼성전자의 모바일 헬스 역량이 결합됐다. 카메라 기반 생체 신호 감지, 웰니스 데이터, 무드 인식 기능까지 동원돼 운전자의 컨디션을 끊임없이 읽어낸다. 피로와 긴장, 집중력 저하 같은 변화를 감지하면 차량은 즉각 반응하고, 이는 자연스럽게 더 안정적이고 편안한 주행으로 이어진다.
최신 버전에서는 정밀도가 한층 높아졌다. 단일 심박수 감지 기능을 통해 운전자 상태를 더욱 세밀하게 파악하고, 탑승자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해 에어백 전개 방식까지 달리한다. 같은 충돌 상황에서도 사람의 상태와 자세에 따라 에어백 전개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접근이 실제 기능으로 구현된 셈이다.
차량 외부와의 연결성은 ‘하만 레디 커넥트’가 책임진다. 삼성전자 통신 기술을 기반으로 한 TCU(통신제어장치)는 4G·5G는 물론 위성통신까지 지원한다. 이를 통해 차량을 외부 세계와 끊김 없이 연결한다. 도로 위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변수들이 실시간으로 수집·전달되고, 이 데이터는 다시 차량의 판단과 반응으로 이어진다.

SDV 분야에서도 하만은 강점을 보였다. 하만은 완성차 제조사가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빠르게 확보할 수 있도록 개발 환경 자체를 제공한다. 이날 선보인 ‘하만 레디 시퀀스 루프’는 클라우드 기반 가상 하드웨어와 테스트 환경을 통해 실제 차량 없이도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검증할 수 있다.
이 시스템은 대규모 가상 테스트를 가능하게 하면서 기존 물리적 테스트 플랫폼 의존도를 크게 낮춘다. 개발 속도는 빨라지고, 검증 범위는 넓어진다. 콕핏과 인포테인먼트는 물론 다양한 차량 도메인에 걸쳐 안드로이드, 리눅스,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스택까지 폭넓게 지원하는 점도 특징이다.
차량용 앱 생태계도 이미 구축 단계에 들어섰다. ‘하만 레디 링크 마켓플레이스’에는 190개 이상의 차량용 앱이 등록돼 있다. 차량이 확장 가능한 디지털 플랫폼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전 세계 8000만 대 이상의 차량에 적용된 하만의 OTA(무선 업데이트)와 스마트 델타 기술은 차량의 수명 주기 전반에 걸쳐 기능을 지속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 정진수 기자 brje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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