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민 출신 인재 쟁탈전…플랫폼 기업들이 '우아한 DNA' 탐내는 이유
배민은 삼성·토스·우버 출신으로 경영진 물갈이
배달의민족(배민)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 출신 인재들이 국내 주요 플랫폼 기업과 스타트업으로 대거 이동하는 가운데 우아한형제들 도 삼성그룹, 토스, 우버 등 이질적인 배경을 가진 외부 인사를 공격적으로 수혈하며 체질 개선에 나섰다.

네이버웹툰부터 카카오까지, 배민 출신이 가는 곳
네이버웹툰의 미국 본사 웹툰 엔터테인먼트는 14일 대규모 임원진 개편을 발표하며 최고사업책임자(CBO) 직책을 신설, 신임 CBO로 우아한형제들에서 최고성장마케팅책임자(CGMO)를 지낸 연고은 전 임원을 영입했다.
연 CBO는 하버드 경영대학원(MBA) 출신으로 삼성전자와 맥킨지를 거쳐 딜리버리히어로 코리아 최고마케팅책임자(CMO), 스타트업 심플리오 창업자 겸 CEO 등을 역임한 인물이다.
우아한형제들에서는 배민의 구독 서비스인 '배민클럽'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것으로 평가받는다.
웹툰 엔터테인먼트가 연 CBO에게 맡긴 역할은 일본을 제외한 글로벌 및 한국 사업의 콘텐츠, 창작자 지원, 마케팅 등 플랫폼 전반으로 알려졌다. 책임이 막중하다는 뜻이다.
웹툰 엔터테인먼트의 전체 매출 중 해외 비중은 2023년 55.8%에서 지난해 62.2%로 꾸준히 늘고 있다. 국내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해외 성장이 전체 수익을 이끄는 구조인 가운데 배민에서 구독 모델과 성장 마케팅을 동시에 경험한 인재가 글로벌 확장의 적임자로 판단된 셈이다.
김용수 웹툰 엔터테인먼트 프레지던트는 "시장 경쟁 심화에 따른 위기 상황에서 통합된 글로벌 조직과 강력한 실행력을 바탕으로 과감한 변화를 단행할 것"이라며 "사업 가속화와 혁신에 집중하며 성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동력을 빠르게 확보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배민 출신의 이동은 웹툰에 그치지 않는다.

송 CTO는 엔씨소프트, SK플래닛, 야놀자를 거쳐 우아한형제들에서 대규모 트래픽을 처리하는 기술 인프라와 운영 체계를 관리한 경험이 있다.
이런 가운데 2022년 10월 카카오 데이터센터 화재로 국민 메신저가 먹통이 된 사태 이후 카카오가 플랫폼 안정성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상황에서 배민이라는 초대형 트래픽 환경에서 시스템을 운영해본 경험이 결정적 영입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한편 신세계그룹 계열 벤처캐피탈(VC)인 시그나이트는 지난해 10월 배민 투자팀장 출신인 주종호 전략담당(상무)을 영입하기도 했다.
주 상무는 2018년부터 약 4년간 배민에서 신사업 투자를 지휘했고 배민 창업자 김봉진 전 대표가 설립한 투자사 그란데클립파트너스 대표를 역임하기도 했다. 비록 그란데클립파트너스는 사실상 식물기업이 됐으나 주 상무는 재직 당시 회사의 전략적 판단을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런 가운데 시그나이트가 2020년 설립 이후 뚜렷한 트랙레코드를 쌓지 못한 상태에서 배민이라는 초고속 성장 플랫폼에서 투자 실무를 이끈 인물을 영입, 투자 역량을 끌어올리려는 의도라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스타트업도 우아한 DNA가 퍼지고 있다. 실제로 팀스파르타는 14일 우아한형제들 피플팀에서 10년 이상 실장으로 재직한 나하나 리드를 영입했다고 밝혔다.
나 리드는 배민의 기업문화와 내·외부 커뮤니케이션을 총괄하며 일하는 방식을 제도화하고 현장에 구현하는 시스템 구축 전문가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B2G 교육 사업을 토대로 일본까지 사업을 확장하고 있는 팀스파르타로서는, 급격한 조직 확장 과정에서 창업 초기 특유의 몰입도와 실행 밀도를 유지하기 위해 조직문화 전문가가 필요했다는 설명이다.

배민이 원하는 인재, 삼성·토스·우버에서 찾다
우아한형제들 출신 인재가 밖으로 나가는 동시에 배민 안에서는 전혀 다른 색깔의 외부 인사들이 경영진을 채우고 있어 눈길을 끈다.
지난해 1월 2일 우아한형제들은 우버 튀르키예 법인 설립을 주도하고 글로보, 트렌디욜 고 등 해외 온디맨드 플랫폼을 경영한 김범석 대표이사를 선임한 것이 대표적이다. 김봉진 전 의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 연이어 벌어지던 CEO 잔혹사가 진정국면에 접어드는 순간이다.
김범석 대표 취임 이후 외부 수혈은 빠르게 이어졌다. 토스플레이스에서 프로덕트오너(PO)를 맡았던 백인범 전 임원을 지난해 9월 10일 최고제품책임자(CPO) 겸 서비스플랫폼센터장으로 선임한 것이 대표적이다. 다. 미투데이 창립 초기 멤버이자 네이버 밴드 등 다양한 서비스를 개발해온 백 CPO는 배민의 테이블오더 등 신규 사업 확장에 투입됐다는 설명이다.
같은 해 9월 18일에는 삼성그룹 제일기획에서 국내 비즈니스 총괄 부사장을 역임한 윤석준 전 임원을 브랜드·커뮤니케이션 전략 총괄사장으로 영입하며 해당 부문을 신설했다고 밝혔다. 윤 사장은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대통령비서실에서 국가 및 기업 브랜드 전략을 총괄한 경험을 갖고 있다. 배민의 브랜딩·홍보·사회공헌·이해관계자와의 소통 및 동반성장 등을 담당한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10월에는 무신사 자회사 에스엘디티(솔드아웃 운영사) 대표를 역임한 김지훈 임원을 그로스부문장으로 영입했다. 위메프에서 패션사업실장과 운영본부장 등을 거친 현장형 리더로, 플랫폼 성장과 고객 확보 전략을 총괄하는 핵심 보직이다.
올해 3월 13일에는 물류·라이더 사업을 담당하는 자회사 우아한청년들의 신임 대표로 권오중 전 세종특별자치시 정무부시장을 '픽'했다. 대통령비서실과 국무총리비서실, 지방자치단체에서 근무한 행정 전문가를 배치한 것은 라이더 산업재해와 노동환경 이슈가 정치적·법적 리스크로 부상한 상황에 대한 대응으로 풀이된다.

플랫폼 2세대 경쟁, 인재 이동이 말하는 것
네이버웹툰은 우아한 DNA를 통해 구독 모델과 글로벌 성장 마케팅 역량을, 카카오는 대규모 트래픽 환경의 시스템 안정성을, 시그나이트는 플랫폼 생태계에 대한 투자 안목을, 팀스파르타는 급성장 조직의 문화 설계 능력을 각각 필요로 했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이들이 공통적으로 탐낸 것은 월간 활성 이용자 수천만명 규모의 생활 밀착형 플랫폼을 빠르게 키워본 실전 경험이다.
반대로 배민이 외부에서 데려온 인재들의 면면을 보면 배민 스스로가 인식하는 약점과 과제가 드러난다. 글로벌 시장 개척 경험(김범석 대표), 서비스 프로덕트 혁신(백인범 CPO), 대기업 수준의 브랜드 전략(윤석준 사장), 현장형 성장 관리(김지훈 부문장), 정부·정치권 소통(권오중 우아한청년들 대표)까지 영입 인사의 배경이 곧 배민이 채우려는 빈칸의 목록으로 보인다.
배민이라는 하나의 플랫폼에서 길러진 인재들이 국내 IT 산업 전반으로 퍼져나가는 현상은 2010년대 네이버와 카카오 출신이 스타트업 생태계의 핵심 인력풀을 형성했던 흐름과 닮아 있다. 배민이 축적한 초고속 성장기의 조직 운영 노하우와 기술 역량이 플랫폼 업계 전체의 공유 자산처럼 기능하기 시작한 셈이다.
배민 안팎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인적 재편이 국내 플랫폼 산업의 다음 판도를 어떻게 바꿔놓을지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