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환대 목회로 출교 후 돌아온 교회…은퇴식에서 돌아앉았다

나수진 2026. 4. 15.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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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들공동체교회 남재영 목사, 연회 은퇴 찬하식에서 '조용한 항의'
반동성애 광풍 여전하지만…"저항하는 후배들 그루터기로 남아 새순 돋을 것" 
4월 9일 정년 은퇴를 찬하하는 무대에 오른 남재영 목사는 뒤를 돌아 앉았다. 남재영 목사 페이스북 갈무리
[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남재영 목사(빈들공동체교회)는 4월 9일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회) 남부연회에서 열린 은퇴 찬하식 무대에 올랐다. 2026년 은퇴하는 목사들이 축하받기 위해 강단 위로 올라와 나란히 앉았다. 남 목사는 그대로 앉는 대신, 의자 뒤로 돌아앉았다. 

'내쫓아 놓고 이제 와서 칭찬하는 말을, 어떻게 앉아서 듣고 있나.'

찬하사를 맡은 감독은 그를 교단에서 출교하는 데 앞장섰던 전 감독이었다. 강단 위 은퇴 목사들과 나란히 앉아 있던 그는 감독이 찬하사를 읽어 내려가는 동안 등을 돌리고 있었다. 조용하지만 강력한 항의였다. 

남 목사는 이동환 목사에 이어 감리회에서 반동성애 조항으로 출교된 두 번째 목회자다. 2024년 남부연회는 남 목사가 서울 퀴어 문화 축제에 참여해 축복기도를 했다는 이유로 출교를 선고했다. 이후 함께 축복식에 자리한 차흥도·김형국·박경양·윤여군·홍보연 목사가 줄줄이 고발당하거나 재판에 넘겨졌다. 이 가운데 4명이 정직·출교 등 징계를 받았다. 남 목사의 출교는 법원이 막았다. 2025년, 법원은 남 목사가 평생 사회 선교에 헌신해 온 사람인 점, 1년 후 은퇴하는 점, 재판 절차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점 등을 지적하며 출교 효력 정지 가처분을 인용했다. 하지만 본안 재판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축복기도를 함께한 동료 목회자 중에는 은퇴식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이들도 있었다. 그래도 남 목사는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은퇴식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겠다고 생각했다. 교단이 자신을 내쳤어도, 목회자로서의 삶은 흔들리지 않았고 이렇게 건재하게 은퇴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 퍼포먼스를 미리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 순서지에서 자신을 출교시킨 감독 이름을 본 순간 무언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쫓김을 당했지만, 다시 돌아와서 은퇴 찬하식까지 마치고 아무 일 없이 은퇴한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나를 내쫓은 감독이 뻔뻔하게 찬하사를 하는 건 도저히 못 견디겠더라. 성소수자 목회를 했다는 이유로 이 사달을 일으켰는데도 단 한 번 미안하다거나 잘못했다는 이야기 한 번 없었다. 인격적이고 영적인 지도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개인의 탐욕 때문에 감독 된 사람들이 대단한 듯 나와서 말하는 모습을 보기 역겨웠다."

자리를 박차고 나갈까, 소리를 칠까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앉은 자리에서 몸을 돌렸다. 눈이 마주친 뒷자리 임원 몇몇은 씩 웃었다.

이후 페이스북에 게재한 사진에는 반응이 쏟아졌다. "목사님이 은퇴하신 날 저는 안수받았다. 감리회가 많이 답답하지만 앞서가신 여정에 용기 얻고 따라간다", "선배 목사님이 계셔서 든든하다"는 후배 사역자들의 댓글 수백 개가 달렸다. 남 목사는 그 반응을 보며 '그래도 한국교회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구나' 다시 확인했다. 자신은 은퇴하지만, 이 흩어져 있는 걱정이 모여 언젠가 커다란 시너지로 나타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남재영 목사는 은퇴 후 '새로운 교회' 운동을 모색하고 있다. 건강한 영성을 지닌 교회를 발굴하고 신학적 논의를 이어 가는 일이다. 지난해에는 <에큐메니안> 사장으로 취임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남 목사는 20여 년간 빈들공동체교회에서 목회했다. IMF 이후 노숙인 사역, <기독교타임즈> 재창간 등 목회보다는 사회 선교와 언론 활동에 전념하던 그가 2005년 담임 목회를 맡은 건 '또 하나의 교회가 아닌 새로운 교회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산동네 쪽방촌, 비정규직 철폐 투쟁 현장, 세월호 유가족 등 가장 낮은 자리에서 사람들을 만났다. 교회는 사회 운동을 하는 시민단체와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가서 곁을 지켰다. "민주노총과 가장 가까운 목사"도 듣고 살았다. 2022년에는 전광훈 사진과 함께 'OUT'이 적힌 교회 강좌 홍보 현수막을 내걸었다가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고,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동성애 문제에 관심을 가진 건 2016년 김조광수 감독을 만나면서였다. 사회적 약자, 참사 피해자들과 연대해 왔지만, 동성애에 대해서는 사실 "흔쾌하지 않았"다. 몰랐으니까. 당시 그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정의평화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기독교가 하도 동성애를 반대하는데, 왜 그러는지 당사자에게 이야기를 직접 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김조광수 감독을 초청해 강연을 열었다. 

강연 날 기독교회관은 난입한 반동성애 세력으로 난장판이 됐다. 2층 강당에서 열릴 계획이던 행사는 결국 7층 회의실에서 임원·기자 소수 인원만 참여한 채 비공개로 진행됐다. 반동성애 세력은 그 앞에서도 "사탄", "마귀"라고 소리치며 통성 기도를 했다. 폭력이었다. 기도가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된 순간이었다. 

그날의 일은 남 목사에게 전환점이었다. 책을 읽고 공부하며 그동안 동성애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다고 느꼈다. 성소수자의 얼굴이 구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했고 이들이 평범한 시민으로서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교회가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2018년 동료 목회자에게 '무지개 교회'가 되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무지개예수'가 성소수자를 환대하는 교회 명단을 만들던 시기였다. 교인 전원회의에서 가입을 제안했을 때, 교인들의 반응은 명쾌했다. 동성애자들도 영혼을 가진 존재라면, 교회는 당연히 이들을 환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앞으로 여선교회·남선교회 말고 레즈비언선교회·게이선교회 같은 것을 만들어야 할 수도 있겠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때부터 주보에 무지개를 그려 넣기 시작했다. 대전 대종로 도로변에 있는 빈들공동체교회는 지금도 대전 퀴어 문화 축제 퍼레이드 때마다 건물 외벽에 무지개 깃발을 단다. 
남재영 목사가 2024년 서울 퀴어 문화 축제에서 축복기도를 하는 모습. 뉴스앤조이 경소영

이후 남 목사는 교단 재판을 받던 이동환 목사 변호인으로 참여했고, 2024년에는 서울 퀴어 문화 축제 현장에서 동료 목회자들과 직접 축복기도를 했다. 그로 인해 출교 처분을 받았을 때는 평화 운동으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을 때보다 더 기뻤다. 그때는 목사가 세상으로부터 칭찬받는 것 같아 찝찝했지만, 출교됐을 때는 너무 시원했다. "구정물에 있다가 맑은 물에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열에 아홉이 "출교당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남 목사는 그때 사람들이 동성애에 '반대'해서 공개적으로 의견을 내지 않는 건 아니라는 걸 느꼈다. 

징계가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축복기도에 나선 것은 은퇴를 얼마 남기지 않아서만은 아니었다. 그가 겪은 교단 재판과 지난한 법정 다툼 과정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나서지 않았다면 편히 말년을 보내고 은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남 목사는 후회하지 않는다. "골백번 죽었다 깨도 그렇게 할 것"이었다. 목사로서 소신껏 해야 할 일을 하고 은퇴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정년 은퇴를 맞는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시니어 목사들이 이동환 목사를 지지하고 반동성애 조항 개정 운동을 펼쳤지만 가시적인 성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함께 징계받은 김형국 목사 등은 소속 연회가 경력 증명서를 발급해 주지 않는 등 계속 불이익을 겪고 있고, 지도자라 하는 감독과 임원들은 반동성애 광풍을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교회는 망할 수도 있다고 본다. 동성애에 반대하며 가짜 뉴스를 만들고 유포했던 세력은 광화문 집회, 세이브코리아, 거룩한방파제에도 참여해 극우 주장을 쏟아 낸다. 교단의 풍토는 더욱 황폐해지고, 지금으로서는 방향을 틀 수가 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꼭 암울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예전에는 교단 안에 '동성애=항문 성교=에이즈'라는 동성애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혐오·공포·선동만 있었다. 이를 이동환 목사가 드러내 보였고, 남 목사 같이 그를 따라 함께 목소리 내는 이들이 늘어났다. 구성원들이 동성애 문제를 이해하고 바라보는 분위기는 예전에 비해 많이 달라졌다. 출교 이후 지지한다, 자랑스럽다는 반응을 보이는 주변 목사들을 만나며, 그 층이 점차 두꺼워지고 있다고 느꼈다. 지금의 교회 지도자들이 문제일 뿐이고, 둥치가 쓰러지면 후배들의 남은 그루터기에 새순이 돋을 것이다. 

교단과 교계 현실을 바꿔 내려는 운동이 실패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지금은 성소수자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십수 년 전 남 목사는 비정규직 문제가 교회가 가장 관심을 가져야 할 어젠다라고 생각하고 '비정규직대책한국교회연대'를 만들었다. 그때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굴욕감, 차별, 저임금, 손쉬운 해고 등은 노동자들이 투쟁하고 기업이 나서서 해결해야 할 영역이었다. 남 목사는 그저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텐트를 치고 농성하는 거리 천막에 가서 같이 기도하고, 잠자고, 금식하는 일을 했다. 

"사람들이 '목사님, 우리가 악과 싸우다 보니 나도 모르게 악해지는데 목사님이 여기 계시니 영혼이 정화되는 것 같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을 때 정말 감동이 됐다. 그것 하나만을 위해서라도 뒤에서 함께하고 응원하는 일이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신앙인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자신의 권리를 찾아 싸우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응원하는 것 외엔 없더라." 

비정규직 철폐 운동은 20년을 지나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 일명 노란봉투법 제정으로 첫걸음을 옮겼다.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는데도 윤석열 정부가 두 차례 거부권을 쓰며 막을 때는 정말 '아무리 밀어도 꼼짝하지 않는 벽을 밀고 있는 느낌'이었지만, 윤석열은 탄핵됐고 이재명 정부에서 마침내 문이 열렸다. 남 목사는, 후배 목회자들이 바뀌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교계 현실에 부딪히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저항하기 바란다고 했다. 

"상류의 강물도 오래 흐를지언정 다 바다를 향해 가지 않나. 동성애 문제도 언젠가는 그렇게 된다고 본다. 얼마 안 갈 것이다. 절망보다는 저항할 때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수진 sjnah@newsnjo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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