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환대 목회로 출교 후 돌아온 교회…은퇴식에서 돌아앉았다
반동성애 광풍 여전하지만…"저항하는 후배들 그루터기로 남아 새순 돋을 것"

'내쫓아 놓고 이제 와서 칭찬하는 말을, 어떻게 앉아서 듣고 있나.'
찬하사를 맡은 감독은 그를 교단에서 출교하는 데 앞장섰던 전 감독이었다. 강단 위 은퇴 목사들과 나란히 앉아 있던 그는 감독이 찬하사를 읽어 내려가는 동안 등을 돌리고 있었다. 조용하지만 강력한 항의였다.
남 목사는 이동환 목사에 이어 감리회에서 반동성애 조항으로 출교된 두 번째 목회자다. 2024년 남부연회는 남 목사가 서울 퀴어 문화 축제에 참여해 축복기도를 했다는 이유로 출교를 선고했다. 이후 함께 축복식에 자리한 차흥도·김형국·박경양·윤여군·홍보연 목사가 줄줄이 고발당하거나 재판에 넘겨졌다. 이 가운데 4명이 정직·출교 등 징계를 받았다. 남 목사의 출교는 법원이 막았다. 2025년, 법원은 남 목사가 평생 사회 선교에 헌신해 온 사람인 점, 1년 후 은퇴하는 점, 재판 절차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점 등을 지적하며 출교 효력 정지 가처분을 인용했다. 하지만 본안 재판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나는 내쫓김을 당했지만, 다시 돌아와서 은퇴 찬하식까지 마치고 아무 일 없이 은퇴한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나를 내쫓은 감독이 뻔뻔하게 찬하사를 하는 건 도저히 못 견디겠더라. 성소수자 목회를 했다는 이유로 이 사달을 일으켰는데도 단 한 번 미안하다거나 잘못했다는 이야기 한 번 없었다. 인격적이고 영적인 지도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개인의 탐욕 때문에 감독 된 사람들이 대단한 듯 나와서 말하는 모습을 보기 역겨웠다."
자리를 박차고 나갈까, 소리를 칠까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앉은 자리에서 몸을 돌렸다. 눈이 마주친 뒷자리 임원 몇몇은 씩 웃었다.

남 목사는 20여 년간 빈들공동체교회에서 목회했다. IMF 이후 노숙인 사역, <기독교타임즈> 재창간 등 목회보다는 사회 선교와 언론 활동에 전념하던 그가 2005년 담임 목회를 맡은 건 '또 하나의 교회가 아닌 새로운 교회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산동네 쪽방촌, 비정규직 철폐 투쟁 현장, 세월호 유가족 등 가장 낮은 자리에서 사람들을 만났다. 교회는 사회 운동을 하는 시민단체와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가서 곁을 지켰다. "민주노총과 가장 가까운 목사"도 듣고 살았다. 2022년에는 전광훈 사진과 함께 'OUT'이 적힌 교회 강좌 홍보 현수막을 내걸었다가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고,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동성애 문제에 관심을 가진 건 2016년 김조광수 감독을 만나면서였다. 사회적 약자, 참사 피해자들과 연대해 왔지만, 동성애에 대해서는 사실 "흔쾌하지 않았"다. 몰랐으니까. 당시 그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정의평화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기독교가 하도 동성애를 반대하는데, 왜 그러는지 당사자에게 이야기를 직접 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김조광수 감독을 초청해 강연을 열었다.
강연 날 기독교회관은 난입한 반동성애 세력으로 난장판이 됐다. 2층 강당에서 열릴 계획이던 행사는 결국 7층 회의실에서 임원·기자 소수 인원만 참여한 채 비공개로 진행됐다. 반동성애 세력은 그 앞에서도 "사탄", "마귀"라고 소리치며 통성 기도를 했다. 폭력이었다. 기도가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된 순간이었다.

이후 남 목사는 교단 재판을 받던 이동환 목사 변호인으로 참여했고, 2024년에는 서울 퀴어 문화 축제 현장에서 동료 목회자들과 직접 축복기도를 했다. 그로 인해 출교 처분을 받았을 때는 평화 운동으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을 때보다 더 기뻤다. 그때는 목사가 세상으로부터 칭찬받는 것 같아 찝찝했지만, 출교됐을 때는 너무 시원했다. "구정물에 있다가 맑은 물에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열에 아홉이 "출교당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남 목사는 그때 사람들이 동성애에 '반대'해서 공개적으로 의견을 내지 않는 건 아니라는 걸 느꼈다.
징계가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축복기도에 나선 것은 은퇴를 얼마 남기지 않아서만은 아니었다. 그가 겪은 교단 재판과 지난한 법정 다툼 과정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나서지 않았다면 편히 말년을 보내고 은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남 목사는 후회하지 않는다. "골백번 죽었다 깨도 그렇게 할 것"이었다. 목사로서 소신껏 해야 할 일을 하고 은퇴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정년 은퇴를 맞는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시니어 목사들이 이동환 목사를 지지하고 반동성애 조항 개정 운동을 펼쳤지만 가시적인 성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함께 징계받은 김형국 목사 등은 소속 연회가 경력 증명서를 발급해 주지 않는 등 계속 불이익을 겪고 있고, 지도자라 하는 감독과 임원들은 반동성애 광풍을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교회는 망할 수도 있다고 본다. 동성애에 반대하며 가짜 뉴스를 만들고 유포했던 세력은 광화문 집회, 세이브코리아, 거룩한방파제에도 참여해 극우 주장을 쏟아 낸다. 교단의 풍토는 더욱 황폐해지고, 지금으로서는 방향을 틀 수가 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꼭 암울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예전에는 교단 안에 '동성애=항문 성교=에이즈'라는 동성애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혐오·공포·선동만 있었다. 이를 이동환 목사가 드러내 보였고, 남 목사 같이 그를 따라 함께 목소리 내는 이들이 늘어났다. 구성원들이 동성애 문제를 이해하고 바라보는 분위기는 예전에 비해 많이 달라졌다. 출교 이후 지지한다, 자랑스럽다는 반응을 보이는 주변 목사들을 만나며, 그 층이 점차 두꺼워지고 있다고 느꼈다. 지금의 교회 지도자들이 문제일 뿐이고, 둥치가 쓰러지면 후배들의 남은 그루터기에 새순이 돋을 것이다.
"사람들이 '목사님, 우리가 악과 싸우다 보니 나도 모르게 악해지는데 목사님이 여기 계시니 영혼이 정화되는 것 같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을 때 정말 감동이 됐다. 그것 하나만을 위해서라도 뒤에서 함께하고 응원하는 일이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신앙인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자신의 권리를 찾아 싸우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응원하는 것 외엔 없더라."
"상류의 강물도 오래 흐를지언정 다 바다를 향해 가지 않나. 동성애 문제도 언젠가는 그렇게 된다고 본다. 얼마 안 갈 것이다. 절망보다는 저항할 때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수진 sjnah@newsnjo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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