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패·관상·곡성·왕사남까지…한국 영화의 '얼굴'을 디자인하는 박시영
한국영화 대표 포스터 디자이너
'빛나는 스튜디오' 박시영
'극장의 시대'에 사람들이 신작을 가장 먼저 만나는 형태는 영화 포스터를 통해서였다. 영화의 예고편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사람은 길거리와 담벼락, 그리고 단골 식당에 붙어 있던 포스터들로 갓 탄생한 영화를 만날 수 있었다. 당시의 이러한 영화 포스터들은 지역마다, 극장마다 달랐다. 극장에 상주하는 ‘선전부장’ 내지는 ‘홍보부장’들이 개봉하는 작품의 포스터 디자인과 카피 문구를 직접 제작했기 때문이다.
90년대 들어 영화의 배급과 마케팅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회사들이 생겨나면서 영화 포스터는 이들의 영역이 되었다. 영화 포스터 전문 디자이너, 업체가 생겨난 것도 이즈음부터다. <접속>(장윤현), <8월의 크리스마스>(허진호), <조용한 가족>(김지운) 등을 포함한 영화의 포스터가 이 시기에 탄생한, 1세대 포스터 작가들에 의한 작품들이다. 이후로 한국영화의 포스터는 엄청난 발전을 거쳤다. 오늘 인터뷰의 주인공 박시영 작가는 2세대 포스터 작가이자 현재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포스터 디자이너다. 그는 류승완 감독의 2013년 작품 <짝패>를 시작으로 <관상>(한재림), <곡성>(나홍진), <베테랑 1,2>(류승완), <군체>(연상호, 곧 개봉) 등 대작들과 <윤희에게>, <꿈의 제인>, <세계의 주인>을 포함한 독립영화의 포스터까지 현재 제작되고 있는 한국영화들의 ‘얼굴’을 만들어 오고 있다. 박시영 디자이너를 만나 과거부터 현재까지 한국영화 포스터의 경향과 그가 최근에 참여한 한일 커뮤니티 시네마 토크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디자인 전공, 혹은 영화 포스터에 대한 특별한 트레이닝을 거치지 않고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포스터 디자이너가 되지 않았나. 어떠한 계기로 터닝 포인트를 맞았는지 궁금하다.
"고등학교때 집안 문제, 그리고 가족 문제로 긴 시간 방황했다. 그때 생활비를 벌어야 했어서 가스 배달을 했는데 공교롭게도 배달을 간 곳이 사당에 위치했던 ‘문화학교 서울’이었다. 당시 문화학교 서울에 상주했던 변영주 감독, 조영각 위원장(전 서울독립영화제 위원장), 곽용수 대표(인디스토리) 등이 예술 영화를 보고 토론하는 걸 보면서 굉장히 멋지다고 생각했고 나도 그 무리에 끼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후로 문화학교 서울에 줄곧 들락거렸다. 그들도 완전히 다른 출신의 나를 내치진 않았다. 오히려 늘 환영해주었고, 시간이 흐르면서는 술자리의 요원으로 낄 수 있었다. 어느 날, 오토바이에 그려 놓은 디자인을 보고 곽용수 대표가 상영회의 홍보물 디자인을 해 볼 것을 제안했다. 포스터도 아닌 그냥 손바닥만한 전단이었지만 매번 반응이 좋았다. 이후 인디포럼 (영화제)의 포스터, 그리고 리얼판타스틱영화제(2004)의 포스터 디자인까지 의뢰받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영화 관련 포스터를 시작했다."
▶ 영화를 좋아하지도 않았던 청년이 문화학교 서울로 가스 배달을 갔다는 이야기는 실로 영화 같은 이야기다. 이후로 셀 수도 없이 많은 한국영화들의 포스터 작업을 해오지 않았나. 대표작이라고 할만한 영화들을 언급해 주신다면.
"사람들이 가장 좋아해 줬던 포스터는 <관상>이었다. 아무래도 천만에 가까운 관객을 동원한 영화다 보니 포스터 역시 반응이 좋았던 것 같다. 이외에 <하녀>(임상수), <우리들>(윤가은), <짝패>(류승완), <박쥐>(박찬욱) 등이 지금 떠오르는 작품들이다."

▶ 가장 첫 작품인 <짝패>는 어떻게 만나게 된 작품인가. 반응은 어땠나.
"리얼판타스틱영화제의 포스터 작업을 하고 공개석상에서 ‘나 좀 써달라’고 외친 적이 있었다. 그때 류승완 감독님이 언젠가는 꼭 의뢰하겠다고 하셨는데 진짜로 <짝패>로 찾아 주신 것이다. <짝패>를 통해 처음으로 한국영화 시스템 내에서, 다시 말해 배급사와 마케팅 담당 등 전문가들과 소통하며 작업을 했다. 나에게 있어서는 모든 것이 처음이라 엄청나게 싸우고 고집을 부렸다. 나는 류승완 감독님의 야망과 정체성이 두드러지는 뜨거운 이미지를 원했고, 그들은 배우를 강조하는 전통적인 방식을 원했다. 결국은 끝까지 내 의견을 고수했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길에 붙여 놓으면 몇 분도 안 돼서 떼어갔다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으니까."

▶ 2000년대 포스터의 경향이 있다면.
"당시에는 장르적인 특성을 살린다거나 하는 개념이 없었다. 장르와 영화의 특징 상관없이 무조건 배우 위주의 포스터가 주류였다. 주연 배우가 많으면 어떻게든 ‘널어서’ 다 보여주는 식이었다(웃음). 그런 전통을 바꾸고 싶어서 초반에는 참 많이도 싸웠다(웃음)."
▶ 현재까지 한국영화의 포스터는 말씀하신 스타일 면, 그래픽 면에서 역시 엄청나게 발전했고, 작품 수만큼이나 많은 포스터들이 만들어졌지만 생각보다 전문 업체들이 많이 존재하지는 않는 느낌이다.
"그렇다.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스푸트닉(<친절한 금자씨>의 포스터 제작), 프로파간다, 그리고 스테디라는 신생회사 등 몇 개의 회사들이 국내 영화들을 전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유는 이 일이 매우 어렵고 고되기 때문이다. 가령 영화 포스터 디자인은 미적인 감각도 있어야 하지만 영화에 대한 해석 능력 그리고 직감 역시 갖춰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응용할 디자인적인 감각, 마지막으로 이것을 (배급사와) 잘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는 소통 능력까지 필요하다. 그것을 모두 갖추고 잘 만들어내는 재능과 기술을 갖추는 인력을 찾기가 쉽지 않다."
▶ 최근 도쿄에서 열린 커뮤니티 시네마 영화제에서 열린 포럼에 참여했다. 일본의 포스터와 한국의 포스터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는데 양국 간에 어떤 차이가 있나.
"일본은 여전히 활자 위주의 전통적인 방식의 포스터를 고수한다는 것이 매우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시각적인 요소의 맥락에서는 미니멀한 바우하우스 같은 유럽의 전통적인 미학, 이미지 등에 아직도 존경과 애정을 가지고 있더라. 어찌 보면 한국과는 반대의 스타일을 고수한다고 할 수 있다. 함께 토크를 했던 일본 디자이너와 관객들은 내가 만든 포스터가 굉장히 강렬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포스터(다른 나라, 작가의)가 있다면.
"개인적으로는…. 내가 한 포스터가 가장 멋지다(웃음). 굳이 골라야 한다면 란티모스 감독의 <부고니아> 포스터가 좋았다. 같은 디자이너가 란티모스의 <랍스터> 등 전작을 담당했는데 늘 강렬하고 영화의 정체성을 그대로 담아낸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 한 작품의 포스터를 구상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포스터의 장점은 그것이 가진 강제성이다. 영화는 자발적으로 찾아가서 보는 매체지만 포스터는 싫어도 봐야 하는, 어딜 가나 걸려있는 매체라는 의미다. 그렇기에 포스터는 그 장점을 최대한 활용해서 두시간짜리 영화가 가진 인상을 품고 있어야 한다. 예고편으로 관객을 끌어모을 수 있다면, ‘못난 포스터’로는 잠재적 관객을 잃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 미디어의 지형이 바뀌면서 포스터의 정체성도 바뀌었을 것 같은 생각이다. 현재 한국영화 산업에서 포스터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굉장한 과도기라고 할 수 있다. 일단 과거처럼 전봇대나 거리에 포스터를 붙이는 시대는 지났고, 현재는 굿즈의 형태로 배부되거나 판매되는 형태가 더 흔하다. 특히 이러한 경향이 팬데믹 이후, 즉 팬데믹 기간에도 꾸준히 극장을 찾았던 마니아층을 위해 제작되었던 포스터나 이미지를 이용한 굿즈 생산이 활성화되면서부터 강해졌다. 최근에 제작했던 <왕과 사는 남자>(장항준)의 포스터도 그런 경향을 반영해 제작한 경우다."

▶ 앞으로의 한국 영화 포스터를 전망한다면.
"현재 한국영화의 정체기가 만들어 낸 산업적 경향, 즉 대작들이 줄어들고 30~50억 사이의 저예산 영화들이 급증한 것처럼, 포스터 역시 비슷한 경향을 띨 것이다. 가령 AI를 이용한 저단가의 포스터들이 급증할 것이고,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굿즈 형태의 포스터들이 만연할 것이다."
▶ 현재의 회사, ‘빛나는’이 20주년을 맞았다고 들었다. ‘박시영/빛나는’이 만드는 영화 포스터와 다른 포스터의 다른 점이 있다면.
"정말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빛나는’의 포스터는 밀도가 높다는 것이다. 비록 한 장이지만 ‘꽉’ 채운다는 것이 우리의 모토다. 물론 채운다는 말이 단순히 무언가를 많이 넣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미지의 밀도, 영화의 해석에 대한 밀도, 그리고 완성도의 밀도가 우리가 목표하는 바다."
유년기에 방황하던 시절, 가스 배달을 갔다가 문화학교 서울을 만나고, 그곳의 사람들에 의해 재능을 발견했다는 박시영 디자이너의 이야기는 실로 영화보다 더 처절하고 뭉클했다. 그가 만들어 내는 이미지가 (일본의 관객들이 평가했던 것처럼) 유독 강렬한 이유, 그리고 그가 강조하듯 해석의 밀도가 높은 이유는 분명 그의 삶과 우연이 빚어낸 기적 같은 전환과 사건들의 연속이 존재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삶은 진정, 그의 포스터만큼이나 ‘빛나는’ 중이다. 지금도, 앞으로도 긴 시간 동안 그럴 것이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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