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기덕 쿵 더러러러”…입술로 쪼갠 굿거리, “내가 사이보그” [인터뷰]
16일 서울시국악관현악단과 초연
초 단위로 해체하고 재조립한 리듬
계면조와 덥스텝, 테크노와 정악 공명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심장 박동 소리가 메트로놈이 된다. 입술이 닿았다 떨어지며 만들어낸 리듬. “둠, 치, 카, 툭.” 혀끝에서 터진 파열음이 정적을 찢는다. 그 틈새로 아득한 기억의 소리가 들려온다. DNA처럼 새겨진 한국의 소리. 굳이 기억하지 않아도 불현듯 떠오르는 기본 중의 기본. “덩기덕 쿵 더러러러” 그 위로 전통 악기가 발을 디딜 듯 말듯 장단을 건드리며 장르의 경계를 허문다.
2017년 ‘엘렌 드제너러스 쇼(The Ellen DeGeneres Show)’에 출연해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소년 비트박서 빅맨(Bigman, 본명 윤대웅)이 9년이 지나 ‘최초’의 주인공이 됐다. “사실 국악관현악이라는 건 이번에 처음 들었어요.”
자신을 주인공 삼은 15분짜리 신작이 세상에 나오고서야 ‘국악관현악’의 맛을 봤다. 한국의 전통악기를 서양식 오케스트라 편성으로 재해석한 이 음악은 어지간해서는 만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빅맨에게 ‘국악관현악의 세계’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그는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멋이 압권”이라며 “변칙적이고 신선했다”며 눈을 빛냈다.
그 위로 얹어야할 자신의 소리를 만들기 위해 빅맨은 뼛속 깊이 잠들던 바로 그 장단을 꺼냈다. 김영상 작곡가는 “빅맨이 굿거리장단을 먼저 제안했다”며 “그 장단을 굉장히 세련되게 풀어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기묘한 만남이다. 이전까진 단 한 번도 시도된 적 없던 ‘최초’의 협업. 비트박스와 국악관현악이 만났다.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이 해마다 선보이는 대작 공연 ‘믹스드 오케스트라’를 통해서다. 이번 무대에선 국악관현악단 사상 최초로 비트박서 빅맨을 ‘독주 악기’로 세워 작곡가 김영상에게 곡을 위촉했다.
전혀 다른 세계로 보였던 두 음악이 한 무대에서 만나자 충돌과 흐름 속에서 또 하나의 언어를 만들었다. 인간의 성대를 시퀀서(sequencer, 음악 제작 도구) 삼아 ‘전통의 질감’을 재설계한 ‘오가닉 사이보그(Organic Cyborg)’의 탄생이다. 작곡가 김영상과 비트박서 빅맨. 이질적인 두 세계가 만나 빚어낸 15분간의 소동은 국악관현악의 문법을 새로 썼다. 전에 없던 희귀한 장르 융합적 실험이다.

제목이 흥미롭다. 김영상 작곡가는 ‘오가닉 사이보그’라는 제목에 대해 “두 개의 생명체가 공존하는 하나의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의미는 두 가지다. 드럼, 베이스, 신디사이저와 같은 기계적 소리를 인간의 성대와 호흡으로 내는 ‘기계화된 인간’ 비트박서, 그리고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 조타수·시스템)’와 ‘오가니즘(Organism, 생명체)’의 합성어인 사이보그의 어원 등이다. 특정 시스템을 조절하는 생명체가 비트박스라면 국악관현악은 살아있는 또 다른 생명체다. 빅맨은 제목을 듣자마자 “아, 내가 사이보그구나 싶었다”며 웃었다.
‘오가닉 사이보그’에선 각기 다른 두 장르가 서로의 요소를 가져와 재해석해 공존한다. 공연명처럼 ‘믹스 매치’의 결정체이나, ‘섞는다’는 표현만으론 부족하다. 김영상 작곡가는 “‘믹스드(Mixed, 섞인)’의 진정한 의미를 고민했다”고 했다. ‘믹스드’의 중심엔 비트박스가 있다. 인간의 입으로 만들어내는 ‘기계적 리듬’이 골격을 이루고, 그 위를 국악관현악이 교차하며 흐른다. 역할은 고정돼 있지 않다. 때론 악단이 리듬을 주도하고 비트박스가 그것을 해체한다. 감싸고, 비집고, 끌어당겨 음악은 생생한 운동성을 갖는다.
낯설어 보이는 조합은 ‘오래된 공통점’에서 출발했다. 김영상 작곡가는 “비트박스와 국악관현악은 본질적으로 닮은 점이 많다”고 했다.
“둘 다 살아있는 인간의 신체가 악기예요. 국악은 구전으로 이어졌고, 비트박스도 입으로 전수되죠. 시나위가 정해진 재료 안에서 즉흥으로 다름의 조화를 만들어내듯, 비트박스 배틀도 같은 구조라고 봤어요.” (김영상)
국악의 ‘유동하는 음’과 비트박스의 실시간 변주는 상당히 유사하다. 김영상은 “전통 음악은 음이 직선적이지 않다. 하강하거나 상행하거나 떨면서 생명력을 갖고 움직인다”며 “비트박스도 틀에 박힌 게 아니라 매 순간 살아 숨쉬며 변화한다”고 말했다. 빅맨도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빅맨은 “비트박스를 시퀀서라고 생각하는데, 국악도 악보대로만 하지 않고 연주자마다 다르게 표현하는 자유로움이 닮았다”고 했다.

‘오가닉 사이보그’는 독특한 구성을 갖췄다. 일종의 3악장 협주곡 형태다. “빅맨이 비트박스를 하는 모든 영상을 섭렵했다”는 김영상은 비트박스의 하우스, 테크노, 덥스텝 장르와 국악관현악의 특징들을 1대1로 매칭시켜 진정한 교집합을 찾았다.
하우스(House) 장르에선 음의 유동성을 강조했다. 일정한 리듬 위로 해금과 대금이 유연하게 음을 흔들어 살아 움직이는 생명력을 그렸다. 테크노(Techno)는 정악(풍류)과 만났다. 차갑고 반복적인 테크노 비트 위로 궁중 음악인 정악의 유장한 선율이 레이어처럼 쌓인다. 가장 오래된 음악과 가장 현대적인 리듬이 ‘서정성’이라는 교차점에서 만난다. 덥스텝(Dubstep, 일렉트로닉 음악의 한 분파)은 남도 계면조와 만났다. 입술의 진동으로 긁어내는 육중한 워블 베이스(Wobble Bass)는 우리 음악 중 가장 농밀한 ‘남도 계면조’의 비장미와 공명한다. 귀를 때리는 에너지의 밀도가 흡사하다.
비트박서 빅맨은 이 시스템 안에서 ‘조타수’가 된다. 그는 “화성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드럼으로서 참여하되, 솔로 파트(카덴차)에서는 나의 스타일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전통악기를 해치거나 방해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협연자인 내가 돋보이기보다는 국악관현악 속의 또 하나의 악기로 존재하고자 했다”고 강조했다. 빅맨의 이야기를 듣던 김영상은 “비트박스를 하나의 악기로 생각해 줘서 너무나 고맙다”며 “비트박스와 국악관현악이 최대한 동등하고 균형 있게 가는 것이 목표였다”고 말했다.
빅맨의 작업과정이 꼼꼼하고 치밀하다. ‘오가닉 사이보그’의 데모 음원을 받고 빅맨은 15분 분량의 대곡을 ‘초’ 단위로 해체하고 재조립했다.

“몇 초부터 몇 초까지는 아르페지오 A파트, 몇 초부터 몇 초까지는 테크노, 이런 식으로 쫙 나눴어요. 평소 듣던 화성과 달라서 어떻게 맞출지 고민이 컸어요.” (빅맨)
가장 어려웠던 건 박자 변화였다. 비트박서는 보통 4분의 4박으로 작업하나, 국악관현악은 변칙이 많다. 김영상은 “4분의 4에서 8분의 12박으로 전환하는 등 리듬의 운동성을 조율했다”며 “안정성과 불안정성을 활용해야 리듬이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작품의 백미는 비트박스형 굿거리장단과 빅맨의 카덴차다. 학창시절 음악시간에 배운 굿거리장단이 클럽 비트로 치환될 때 관객은 전통의 현대적 진화를 청각적으로 목격하게 된다. 카덴차에선 빅맨의 장기가 발현된다. 유려한 아르페지오의 비트박스가 국악관현악이 멈춘 솔로 파트에서 3000석 공연장을 메울 것으로 보인다. 김영상 작곡가는 “빅맨의 강점은 3옥타브를 오가는 아르페지오와 싱잉·베이스·드럼을 통합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이라며 기대를 당부했다.
빅맨과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은 오선지 위에 그려진 ‘오가닉 사이보그’를 마주하며 수차례의 리허설을 이어가고 있다. 빅맨은 그러나 “공연이 시작되면 디테일을 비롯해 상당 부분이 달라질 수 있다”며 “어떻게 될지는 나도 모른다”고 웃었다.
김영상은 이번 공연의 관전 포인트로 “시나위적으로 들리는 순간과 비트가 만났을 때”를 꼽았다. 시나위는 어느 정도 정해진 재료 안에서 서로 다른 악기들이 다름의 조화를 만들어내는 즉흥 음악이다. 안일한 ‘이어 붙이기’에서 벗어나 서로의 장르를 존중하며 세련된 결합으로 비트박스와 국악기가 어우러질 때 하나의 거대한 에너지가 만들어진다.
“미디는 메트로놈처럼 정교하지만, 라이브는 흔들려요. 기계는 하지 못하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불완전함 속에서 음악의 감동이 발생한다고 생각해요. 기계를 닮기 위한 정확함이 아니라 섬세함 끝에 드러나는 미세한 흔들림, 인간다운 떨림과 불완전함을 15분 안에 담았어요.” (김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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