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구도심 밝히는 책 문화공간 '나무들의 밤'

광주일보 2026. 4. 1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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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통영 출판사 ‘남해의봄날’ 주축
‘골목책방 서성이다’·‘심다’ 주주 참여
지난달 2층 규모 ‘나무들의 밤’ 개점
순천시 애니메이션·웹툰 클러스터 입주
7000여권…전문가들 참여한 큐레이션
예술·로컬·인문·라이프 스타일 등 다채
공간 디자인 눈길…독립출판물 특화
순천 원도심에 문을 연 ‘나무들의 밤’은 통영 ‘남해의봄날’과 순천 독립서점 ‘골목책방서성이다’, ‘심다’가 함께 꾸려가는 책문화공간이다.

경남 통영 전혁림미술관 옆 작은 책방은 늘 사람들로 북적였다. 동네 책방 붐이 일기 전 이 곳, ‘봄날의책방’은 책 좋아하는 이들의 소박한 성지였다. 서점에서 운영하는 ‘북스테이’는 ‘책방에서의 하룻밤’을 꿈꾸는 이들의 버킷리스트이기도 했다. 지난해 오랜만에 방문했을 땐 북스테이 공간이 서점으로 확장돼 있었지만, 넓어진 서가만큼 그 곳에선 또 다른 책 이야기가 흐르고 있었다.

서점을 운영하는 출판사 ‘남해의봄날’은 또 어떤가. 이미경 작가의 ‘구멍가게, 오늘도 문 열었습니다’, 뒤늦게 글과 그림을 배운 순천 할머니들이 참여한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 등 ‘남해의봄날’이 내놓은 책은 주제와 만듦새가 남달랐다. 무엇보다 로컬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발굴하고 책으로 엮어내는 실력이 발군이었다. ‘남해의봄날’이 내놓은 책은 언제나 믿음이 갔고, ‘다음 책’이 늘 궁금했다.

올 초 ‘남해의봄날’이 순천에 책 문화공간을 연다는 소식을 들었다. 15년 전 아무 연고도 없던 통영으로 내려가 ‘작은 기적’을 일군 ‘남해의봄날’ 정은영·강용상 부부는 ‘어디에도 없는 새로운 모델’을 구상중인듯했다. 그 중심은 순천 독립서점들과 함께 공간을 운영하는 것이었다.

‘나무들의 밤’의 강용상·정은영·김주은·조태양씨(왼쪽부터)

◇‘남해의봄날’과 지역서점의 콜라보

지난 3월 말 문을 연 ‘나무들의 밤’(순천시 황금 2길 14-1) 간판엔 ‘bookshop&stories’라는 명칭이 함께 붙어 있는데, ‘Every tree holds a story(나무들은 모두 각자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라는 문구까지 접하고 나면 ‘나무들의 밤’에서 어떤 책을 만나고 무슨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 기대가 커진다.

전면을 유리로 마감한 3층 건물에 자리한 ‘나무들의 밤’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넓었다. 카프카의 ‘책이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다’라는 문장이 적힌 건물 앞 화분에서 책의 기운을 느낀다.

‘나무들의 밤’은 순천 원도심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 역시 여느 도시처럼 공동화현상이 심각한 상황. 문화체육관광부 지원으로 ‘애니메이션·웹툰 클러스트’ 사업을 진행중인 순천시는 창·제작 기지를 조성키로 하고 문화콘텐츠 기업 유치에 나섰다. 현재 ‘나무들의 밤’을 비롯해 웹툰, 게임, 출판 등 문화콘텐츠 기업 29개소가 입주를 완료했고 향후 10개사가 추가로 들어올 예정이다. 몇년 전부너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하던 ‘남해의봄날’은 전라도 지역, 그 중에서도 순천을 수시로 찾아 공간을 모색하던 참이었다.(전남은 정대표 어머니의 고향이기도 하다)

서점 한켠에는 \'BTS를 둘러싼 세계\'를 주제로 관련 서적 컬렉션이 마련돼 있다.

“클러스트로 들어오면서 문화 공간들이 갖고 있는 부동산 부담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처음에 ‘남해의봄날’이 원도심 입 주를 결정하면서 책을 매개로 한 복합문화공간이 있어야하는 이유를 어필했습니다. 입주 기업들이 인사이트를 받고, 다양한 책을 통해 원천 소스를 발견하고 창작의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의 필요성이죠. 어디에나 있는 문과공간을 열 생각이었다면 그냥 ‘봄날의책방’ 2호점을 열었을 겁니다. 규모가 있으면서 큐레이션을 제대로 하는 책공간을 만들자 했죠. 무엇보다 순천의 서점들이 같은 우산 아래 모여 함께 만들어가는 공간을 기획했습니다. 지금까지 만들어놓은 네트워킹과 경험 등이 모두 발휘되는 판을 만들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무들의 밤’ 강용상 대표는 “오픈을 준비하는 데 넘어야할 첫 관문은 우리가 좋아하는 책방들인 ‘심다’와 ‘골목책방 서성이다’의 합류 여부였다”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제안했고 오케이를 받아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남해의봄날’ 순천지사가 먼저 둥지를 틀었고, 25년 6월부터 리모델링을 진행하며 새로운 시작을 준비했다. ‘나무들의 밤’은 주식회사로 ‘심다’의 김주은, ‘골목책방 서성이다’의 조태양 대표가 주주이자 이사로 참여하며 요일을 정해 활동중이다.

정은영 남해의봄날 대표는 순천이 생태 환경 도시라는 점을 감안, 서점 이름에 ‘나무’를 넣고 싶었고 직원의 아이디어로 ‘밤’이라는 단어가 연결돼 ‘나무들의 밤’이라는 근사한 이름이 탄생했다. 건축가 출신으로 공간 기획, 가구 디자이너인 강용상 나무들의 밤 대표의 실력이 발휘된 공간 구성과 가구 배치 등은 짜임새가 있고, 스토리가 담겼다. ‘밤’ 이미지에 맞게 천정에 작은 조명을 달았고, 동트기 직전의 검푸른 모습과 나무 컨셉을 이미지화해 공간을 구성했다. “책을 배치하는 것도 과학이고, 도시계획”이라는 그의 말처럼 직접 디자인한 책장과 매대, 그곳에 펼쳐진 책들의 세계가 모두 볼거리다.

◇전문성 발휘된 큐레이션 눈길

전문 책방지기들이 참여한 큐레이션은 단연 돋보인다. 장소의 협소함으로 큐레이션을 마음껏 보여주지 못했던 독립서점의 아쉬움과 특별한 큐레이션이 없는 중형서점의 단조로움을 제대로 보완했다. 통영의 서점이 3000권 정도였다면 ‘나무들의 밤’은 7000여권으로 시작해 점차 늘려갈 계획이다.

‘남해의봄날’이 큐레이션을 맡은 1층은 이야기가 피어나는 ‘봄밤’이다. 창작들에게 영감을 주는 아트북, 그래픽 노블을 비롯해 예술, 문화콘텐츠, 라이프 스타일(요리·정원 등), 로컬, 여행, 심리 관련 서적이 갖춰져 있다. ‘남해의봄날’ 출판 서적과 순천에서 좋은 책을 꾸준히 만들고 있는 ‘열매하나’ 등 지역 출판사, 순천 등 로컬의 가치를 담은 책들이 전시돼 있으며 갤러리 공간도 마련했다.

2층 ‘가을밤-이야기가 피어나는’은 ‘골목책방 서성이다’의 조태양 대표가 큐레이션했다. 지난 2018년부터 문학·예술·사회·생태의 가치를 중심에 둔 인문서점을 운영해왔던 조 대표의 안목이 돋보이는 공간이다. 푸른 나무를 연상시키는 초록색 인테리어가 인상적인 공간에는 소설과 시, 인문사회, 과학, 생태 등의 서적이 놓였고 필사를 할 수 있는 책상도 마련해 두었다. 문화의 거리에 있는 ‘골목책방서성이다’ 또한 조대표가 젊은 매니저와 함께 여전히 운영중이다.

‘남해의봄날’이 큐레이션한 1층에서는 그림 전시회도 열린다.

2층의 ‘여름밤-나무들의 노래, 경계를 넘어’는 독립출판물 전문서가다. ‘다양한 실험과 낯선 상상, 서로 다른 세계가 경계를 넘어 모인 곳’을 표방하고 있다. 큐레이터는 김주은 ‘심다’ 대표. 독립출판 씨앗학교를 운영하고 독립출판물을 소개하는 ‘순천아트북페어-자란다’를 4년 간 개최할 정도로 독립출판물에 진심인 그는 ‘심다’의 마음을 이어가고 싶어한다. 아이들이 다양한 장르를 접하며 자신의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웹툰 관련 서적, 어린이·청소년서적도 함께 펼쳐놓았다.

“올해가 ‘심다’가 만 1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당초 10년만 서점을 운영하겠다고 생각해 졸업을 생각했는데 ‘남해의봄날’의 제안을 받아 또 다른 출발을 꿈게 됐습니다. 새로운 형태의 책문화공간에서 다양한 큐레이션을 진행해보려합니다. 현재 독립출판물은 300여종 정도입니다. 독창적인 책의 만듦새, 사회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책, 기성 출판사에서는 절대 만들 수 없는 재기발랄함이 선별의 기준입니다. 앞으로 더 다양한 주제로 더 많은 독립출판물을 소개하는 게 저의 숙제입니다.”(김주은)

각 공간의 ‘기획 매대’와 전시는 ‘나무들의 밤’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오픈 기념 전시 ‘순천 소녀시대 할머니들과 김중석 작가가 함께 그린 꽃밭’(5월31일까지)은 순천할머니들의 작품까지 어우러졌다. 1층 기획 매대에서는 나무와 정원, 밤과 관련한 서적과 팝업북 등을 전시하고 있다. 2층의 ‘남쪽의 문장들-숲의 남쪽에서 쓰다’는 김승옥·이청준·한강·조정래·김남주 작가를 소개하고 있으며 한켠에는 ‘BTS를 둘러싼 세계’를 주제로 관련 서적을 컬렉션했다.

◇창작자에게 영감, 시민들에게 문화경험

강 대표는 미래 한국을 이끌 콘텐츠의 씨앗이 될 ‘독립출판물’에 방점을 두겠다고 했다. ‘준비된 전문가가’가 있기에 독립출판과 연관된 생태계를 만들고 관련 종류도 1000여점까지 늘려 독립출판의 메카를 만들어간다는 생각이다.

‘나무들의 밤’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계획중이다. ‘밤의 서점’은 밤이면 인적 끊기는 원도심에 ‘문화적인 것으로 불을 켜보자’는 마음으로 이주 콘텐츠 기업과 시민들이 함께하는 기획이다. 북토크도 작가 한명을 초대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여러명의 참여자가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 등을 고민중이다. 독립출판물 관련 북페어도 기획 중 하나다.

“많은 사람들이 유동인구도 없는 이곳에 왜 서점을 열었냐고 해요. ‘봄날의책방’도 처음에는 손님 한명 오지 않은 날도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줄을 서서 입장하는 서점이 됐어요. 급하게 마음 먹지 않고 서로가 갖고 있는 자원들을 나누며 잘 꾸려가 보겠습니다.”(강용상 대표)

서점에 발을 들이는 순간 ‘나무들의 밤’이 펼쳐놓은 ‘이야기의 숲’에서 ‘책들의 시간’이 펼쳐지고, 당신과 나의 시간. 우리의 이야기도 함께 흘러갈 것이다. ‘나무들의 밤에 우리는 한 그루의 숲이 된다’는 문구처럼. 서점은 화요일~일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 문을 연다.

/글·사진=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순천=김은종 기자 ej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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