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세월' 흘렀지만…안전한사회 꿈꾸며 노란리본 고쳐 맵니다

최원정 2026. 4. 15.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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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세월호 참사 희생자 12주기…각자 방식으로 기억하는 시민들
"'지겹다' 비난에도 잊지 않으려…일상서도 추모와 기억 계속되길"
김원경·방희준 씨 부부가 만든 노란 리본 가죽 키링 [김원경 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최원정 기자 = 벌써 열두 번째 봄. 부산에 사는 공인중개사 남정아(60)씨의 차 뒤창에 붙은 '노란 리본'도 어느덧 색이 많이 바랬다.

"그냥 엄마 마음이죠. 엄마 마음…." 기자의 입에서 '세월호'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정아씨가 속절없이 울음을 터뜨렸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2년이 흘렀으나 아직도 노란 리본을 소중하게 간직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이도, 직업도, 사는 곳도 다르지만 뼈아픈 참사를 되새기고 안전한 사회를 꿈꾸는 마음은 하나였다.

자신을 '세월호 세대'라고 소개한 직장인 김지연(28)씨는 작년 여름쯤 가방에 달고 다니던 노란 리본을 이제는 뗄까 잠시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지연씨는 "세월호를 진짜 잊어버리게 되지는 않을까 겁이 나서 차마 떼지 못했다"며 "우리 세대에게 세월호는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 되는 트라우마"라고 말했다.

서울 강동구에 사는 김원경(45)·방희준(49)씨 부부는 올해도 어김없이 자비로 노란 리본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원경씨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며 "많은 분이 '그날'을 잊지 않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김원경·방희준 씨 부부가 만든 노란 리본 [김원경 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 해 잔인했던 봄날, 가라앉는 배를 그저 지켜만 보며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무력감과 죄의식을 쉽게 떨쳐낼 수는 없었다.

세월호 참사 당시 한 업체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다는 정아씨는 "50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탑승했다는 선박에서 그 정도의 인명피해가 나올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며 "'전원 구조' 뉴스만 믿고 있다가 집에 와서야 뒤늦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게 됐다"고 떠올렸다.

수학여행을 떠난 단원고 학생들이 미처 닿지 못한 제주에서 책방을 운영하는 정보배(55)씨는 "전 국민이 트라우마를 가질 수밖에 없는 사건 아니겠느냐"며 "참사 이후 1년간 쏟아지는 뉴스를 보면서 많이 울고 심리적 압박감도 느꼈다"고 했다.

세월호 탑승자들의 무사 귀환을 바라는 마음이 거대한 노란 물결을 이룬 것도 잠시, 얼마 가지 않아 '낯선' 시선이 이들의 노란 리본을 향했다.

지연씨는 "지하철에서 어떤 아저씨가 뒤에서 '빨갱이' 운운하며 구시렁대던 게 어쩌면 참사보다 더 아픈 기억"이라며 "대놓고 피해자들을 비난하는 이야기가 이곳저곳에서 들리니 내가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 건지 혼란스러웠다"고 전했다.

보배씨도 "세월호는 정치와 진영의 문제일 수 없다"며 "세월호를 기억하고 알리려는 사람들도, 부정하면서 그만하라고 하는 사람들도 모두 어떤 식으로 내면에 상처를 입은 것"이라고 말했다.

세월호 12주기, 이틀 앞으로 (서울=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 세월호 참사 12주기를 이틀 앞둔 14일 중구 서울시의회 앞 추모공간에 노란 리본이 놓여 있다. 2026.4.14 hama@yna.co.kr

시간이 흐르며 어느 새부턴가 노란 리본도 눈에 잘 안 띄기 시작했다. "아직도 세월호라니 지겹지도 않냐"고 대놓고 비아냥거리는 질문에 울컥한 것도 여러 번이다. 그래도 이들의 마음에서는 여전히 노란 리본이 나부끼고 있다.

정아씨는 기자와 통화하는 내내 북받친 듯 여러 차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젊은 꽃봉오리들이 피어보지도 못했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하는데 매번 깔끔하게 해결되지 못하니 계속 이런 일이 답습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원경씨는 올해 12주기를 앞두고 리본 5만개를 만들었다. 온라인으로 신청받은 뒤 재료비와 배송료 정도만 받고 학교에 4만개, 개인에게 1만개를 보냈다.

그는 "여전히 많은 분이 기억하고 계시구나 싶어 기분이 좋았다"면서도 "화도 났다"고 전했다. "10년이 넘도록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으니 여전히 수요가 있는 것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그새 원경 씨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기리는 보라색 리본을 새롭게 만들어 나눠주고 있다.

스텔라데이지호의 주황색, 오송의 초록색, 아리셀과 제주항공의 하늘색…. 보배 씨도 끊임없이 추가되는 각양각색의 리본들을 떠올리며 "기성세대의 안전 불감증은 여전한 것 같다"고 답답함을 감추지 못했다.

보배씨는 참사 10주기가 되는 해였던 2024년 책방 한편에 세월호를 기억하는 공간을 마련했다. 세월호 제주기억관이 일상에서 참사의 의미를 되새기는 '작은 기억터'를 제공할 상점을 찾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게 계기가 됐다.

노란색 벽의 기억터에는 세월호 관련 책들과 저마다 자유롭게 추모 글을 적을 수 있는 '기억 노트'가 놓였다. 매년 4월 16일을 즈음해 책방을 찾는다는 유족들도 한참 동안 기억 노트에 꾹꾹 눌러 담은 글들을 읽고 또 읽는다.

"사람들이 일상을 살아가다 의외의 장소에서 세월호를 마주치고 상기할 수 있다면 충분해요. 이제는 우리 사회가 세월호의 아이들만 말하고 감정 소비에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각자의 역할에서 세월호를 어떻게 생각하고 소화해야 할지 생각해봐야겠죠."(보배씨)

정보배 씨 책방에 마련된 세월호 기억 공간 [정보배 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away77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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