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755] 왜 ‘모래판’이라 말할까

김학수 2026. 4. 15.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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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씨름 경기가 벌어지는 장소를 '모래판'이라고 말한다.

모래판은 씨름이 하는 장소 말고도 모래가 많이 깔려 있는 곳을 의미하기도 한다.

모래판이라는 말이 지금처럼 널리 쓰이게 된 건 단순한 씨름 용어를 넘어 비유 표현으로 확장되면서이다.

우리나라 언론은 모래판이라는 말을 씨름 경기장 용어로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이후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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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위더스제약 2025 민속씨름 문경오미자 장사씨름대회 모습 [문경시 게종]
보통 씨름 경기가 벌어지는 장소를 ‘모래판’이라고 말한다. 모래판은 씨름이 하는 장소 말고도 모래가 많이 깔려 있는 곳을 의미하기도 한다.

모래판은 잘게 부스러진 돌 부스러기를 뜻하는 ‘모래’와 어떤 행위가 벌어지는 ‘자리’ 또는 ‘무대’를 뜻하는 ‘판’의 합성어이다. 말 그대로 모래를 깔아 놓은 마당, 공간이라는 의미이다. 판이 붙는 말들은 한국어에서 꽤 중요한 의미망을 이룬다. 단순히 ‘바닥’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 어떤 일이 벌어지는 ‘장(場)’이라는 개념이다. 씨름판, 모래판, 노름판, 싸움판에 판자를 붙인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 전통 스포츠인 씨름은 경기를 할 때 바닥에 흙이나 모래를 깔아 만든 공간에서 진행된다. 이 공간이 바로 모래판이다. 이는 선수들이 넘어져도 다치지 않도록 완충 역할과 동시에 경계가 명확한 경기장 역할을 한다. 그래서 “모래판에 오른다”는 말은 단순히 장소를 넘어 승부의 장에 나선다는 의미로 쓰인다.

모래판이라는 말의 시작 시점을 딱 특정 연도로 찍기는 어렵지만, 흐름은 비교적 분명하다. 핵심은 전통 씨름 문화와 함께 자연스럽게 형성된 생활어라는 점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표현이 아주 오래된 고문헌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조선시대 문헌에서는 ‘각력(角力)’ 같은 표현이 더 많이 쓰였고, 모래판은 구어로 먼저 자리 잡았을 가능성이 크다.

모래판이라는 말이 지금처럼 널리 쓰이게 된 건 단순한 씨름 용어를 넘어 비유 표현으로 확장되면서이다. (본 코너 1751회 ‘왜 '씨름'이라 말할까’ 참조)

우리나라 언론은 모래판이라는 말을 씨름 경기장 용어로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이후로 추정된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따르면 동아일보 1972년 2월21일자 ‘韓國(한국)체육 72年(년)의 座標(좌표) (11) 씨름協(협)’ 기사는 ‘직경 7m의 모래판과 二(이) 三(삼) 미터의 광목샅바만 있으면 누구나 몸을 단련하고 기량을 닦을 수 있는 씨름’이라고 소개했다.

모래판은 모래를 고르게 깔아 넘어져도 다치지 않도록 만든 자리이다. 그 위에서 두 사람이 서로를 넘어뜨리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순간. 모래판은 안전을 위한 장치이면서 동시에 가장 거친 충돌이 벌어지는 공간이다. 부드러운 바닥 위에서 가장 단단한 승부가 펼쳐진다는 역설이, 이 단어의 깊이를 만든다.

하지만 우리가 이 말을 사용할 때 더 이상 모래를 떠올리지 않는다. ‘정치의 모래판’, ‘권력의 모래판’, 혹은 ‘경쟁의 모래판’이라는 표현 속에서 모래는 사라지고, 오직 ‘뒤엉킴’과 ‘변수’만 남는다. 이는 모래라는 물질이 가진 성질과도 닮아 있다. 단단히 고정되지 않고, 쉽게 무너지고, 한순간에 형태가 바뀌는 바닥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모래판이 주는 또 하나의 감각은 ‘불안정함’이다. 단단한 땅 위에서는 버티는 힘이 중요하지만, 모래 위에서는 균형과 순간적인 대응이 더 중요하다. 조금만 중심을 잃어도 쉽게 무너지고, 상대의 힘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모래판 위의 승부는 단순한 힘의 문제가 아니라, 흐름을 읽고 타이밍을 잡는 감각의 문제이기도 하다.

모래판이라는 말이 오랫동안 살아남은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씨름의 흔적이 아니라, 인간이 겪는 수많은 경쟁과 갈등의 본질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판 위에 올라서고, 각자의 방식으로 버티고, 결국에는 넘어지거나 다시 일어난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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