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99%가 지자체 실업팀"…한국 육상, '기업팀 창단'이 답이다

[스포티비뉴스=정형근 기자] 한국 육상은 늘 가능성과 한계를 함께 이야기하는 종목이다. 스타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육상은 분명 인상적인 순간들을 남겼다. 그러나 그 성과는 오래도록 ‘개인의 분투’에 가까웠고, 종목 전체의 구조적 성장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이제 한국 육상이 다시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선수 개인의 노력만이 아니라, '기업팀 창단'과 민간 참여라는 구조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한체육회 선수위원장이자 한국 여자 육상 대표팀 코치인 김국영 위원장은 최근 한국 육상의 현실을 짚으며 기업팀의 필요성을 분명하게 언급했다. 김 위원장은 “현재 한국 육상 트랙앤필드는 거의 99%가 지자체 실업팀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마라톤을 제외하면 사기업 팀은 사실상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 한 문장에는 지금 한국 육상이 마주한 구조적 문제가 압축돼 있다. 종목의 저변은 존재하지만, 선수들이 국제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지속 가능하고 안정적인 훈련 생태계는 충분히 갖춰지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한국 육상의 올림픽 메달 역사는 화려하다기보다 선명한 몇 장면으로 요약된다. 대한민국 국적으로 집계되는 하계 올림픽 육상 메달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황영조의 금메달과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마라톤 이봉주의 은메달이 대표적이다. 그 이전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는 손기정이 마라톤 금메달, 남승룡이 동메달을 따냈지만, 당시 식민지 현실 때문에 공식 기록은 일본 소속으로 남아 있다. 한국 육상의 올림픽 서사는 오랫동안 마라톤에 크게 의존해 왔고, 트랙앤필드 전반의 두터운 메달 기반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아시안게임에서도 흐름은 비슷하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육상은 정혜림의 여자 100m 허들 금메달, 우상혁의 남자 높이뛰기 은메달 등을 포함해 총 6개의 메달을 기록했다. 그러나 2023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총 3개 메달에 그쳤다. 메달 수 자체도 줄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상위권 경쟁이 일부 종목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종목 전반에서 꾸준히 메달권 선수를 배출하는 구조라기보다, 특정 유망주와 특정 이벤트에 기대는 흐름이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김국영 위원장이 지적한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지금 구조에서는 선수들이 결국 국내 대회, 특히 전국체전 중심 경쟁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시도 대항격인 전국체전에서 성적을 내야만 예산과 연봉 협상이 이루어지는 구조다 보니 선수들이 전국체전 성적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육상 선수들에게 가장 중요한 대회는 올림픽,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 같은 국제무대인데, 실제 현장에서는 국제대회가 끝난 뒤 곧바로 전국체전을 준비해야 하는 일정 부담이 반복된다. 국제무대 경험을 넓혀야 할 시기에 국내 일정과 소속팀 성과 압박이 겹치는 현실은, 선수 개인에게도 종목 전체에도 분명한 제약이 될 수 있다.

이 대목에서 자주 비교되는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은 육상을 단지 학교 체육이나 지방 체육의 영역으로 두지 않고, 기업이 선수 육성과 스포츠 문화를 함께 떠받치는 구조를 오래 발전시켜 왔다. 후지쓰는 1990년 창단한 육상부를 통해 트랙앤필드, 마라톤, 경보 등 다양한 종목의 정상급 선수를 육성해 왔고, 세계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는 선수 지원을 팀 운영 목표로 명시하고 있다. 토요타 역시 장거리 달리기 등 여러 스포츠 클럽을 운영하며 기업 스포츠를 장기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일본항공(JAL) 역시 선수 고용 제도를 통해 안정적인 환경을 제공한다.
일본 사례의 핵심은 단순히 “기업이 돈을 낸다”는 데 있지 않다. 선수가 생활 불안 없이 훈련과 회복, 국제대회 준비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드는 구조가 있다는 점이다. 대학 졸업 이후에도 커리어가 끊기지 않고, 종목을 바꾸지 않아도 되며, 기업팀 성적만이 아니라 국제무대 성과를 중심으로 장기 육성이 가능해진다. 이는 자연스럽게 지도자, 의무, 과학훈련, 재활, 미디어 노출까지 연결된다. 기업팀 창단은 한 개 팀이 추가되는 것이 아니라, 한 종목의 생태계가 두꺼워지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한국 육상도 변화의 조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상혁이 세계무대에서 꾸준히 경쟁했고, 2023 아시아육상선수권에서는 남자 400m 계주가 38년 만에 메달을 따냈다. 선수들의 기록 수준이 전반적으로 올라오고 있다는 현장 평가도 있다. 관심과 노출이 예전보다 나아진 것도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이 흐름을 어떻게 이어가느냐이다. 개인의 스타성에만 맡겨둘 것이 아니라, 기업팀 창단과 민간 투자로 구조화할 시점이라는 점이다.
"메달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한 명의 스타 뒤에는 수년간 축적된 훈련 환경과 경쟁 시스템, 안정적인 소속 구조가 필요하다. 한국 육상이 도약하기 위해서는 결국 선수의 노력과 지도자의 열정, 기업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 육상은 앞의 두 가지(선수와 지도자)로 버텨 왔다. 이제 남은 과제는 마지막 한 축을 채우는 일이다.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의 메달 수는 현재의 구조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국 육상이 더 이상 ‘가능성 있는 종목’에 머물지 않고, 국제무대에서 지속적으로 결과를 내는 종목이 되기 위해서는 기업팀 창단이 선택이 아닌 필수 과제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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