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WA는 흥미로운 가능성을 가진 영역이지만, 당장 거대한 시장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기대는 현실과 거리가 있다. 기존 금융 시장의 문제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해결하는지가 성공적인 RWA 프로젝트를 가를 것이다.
[가상자산 따라잡기]
지난 2025년 12월 뉴욕타임즈 딜북 서밋에서 브라이언 암스트롱 코인베이스 CEO(왼쪽)와 대담하는 래리 핑크 블랙록 회장. 사진=연합AFP
요즘 제도권 기업이나 금융기관들이 가상자산에 관심을 보인다고 하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제가 바로 실물연계자산(RWA)이다. 블록체인 업계 행사나 금융권 세미나에 가보면 “RWA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반복된다. 그러나 정작 무엇을 어떻게 하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막연한 경우가 많다. RWA라는 단어가 마치 하나의 새로운 시장이나 사업모델처럼 소비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복잡하고 다양한 개념을 포괄한다.
먼저 분명히 해야 할 점이 있다. RWA는 새로운 자산군이 아니다. 그것은 자산의 한 형태라기보다는, 자산을 표현하고 거래하는 방식의 변화에 가깝다. 전통 금융자산을 블록체인 위에서 토큰 형태로 표현하고, 이를 보다 효율적으로 유통시키려는 시도다. 따라서 그 적용 범위 역시 매우 넓다. 누군가는 주식 토큰화나 금과 같은 원자재 토큰화를 이야기하고, 또 다른 곳에서는 미국 국채를 토큰화한 상품을 만들고 싶다고 한다. 실제로 블랙록이 출시한 토큰화 머니마켓펀드(MMF) BUIDL은 미국 국채를 기반으로 한 대표적인 사례다.
핵심은 거래 방식의 근본적 변화
문제는 같은 RWA라는 단어를 쓰면서도 서로 전혀 다른 자산군과 시장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기업은 주식 토큰화를 고민하다가, 다시 부동산 토큰화로 방향을 바꾸고, 또 다른 곳에서는 매출채권 유동화를 언급한다. RWA를 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어떤 시장을 겨냥하는지 명확히 정하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는 경우도 흔하다.
RWA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이 개념이 기존 금융 시스템을 완전히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시장을 확장하거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론이라는 점을 먼저 인식할 필요가 있다. 크게 보면 두 가지 기대가 존재한다.
첫째는 금융 시장 접근성 확대다. 각국의 금융 시스템은 여전히 국경과 규제에 의해 상당히 폐쇄적으로 운영된다. 그러나 자산이 토큰 형태로 표현되면 국경 간 거래가 훨씬 쉬워질 수 있다.
최근 브라이언 암스트롱 코인베이스 최고경영자(CEO)는 골드만삭스 CEO인 데이비드 솔로몬과의 대담에서 이러한 변화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테슬라나 엔비디아 같은 기업의 실제 주식은 기존 수탁기관에 보관하되, 그 소유권을 온체인 토큰으로 표현한다고 상상해보라. 그러면 전 세계 어디에서든 24시간 거래가 가능해지고, 소액 단위로 지분을 보유할 수 있다. 아르헨티나나 나이지리아처럼 미국 증권 계좌를 쉽게 개설하기 어려운 사람도 미국 기업에 투자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둘째는 기존 금융 시스템이 충분히 커버하지 못했던 영역의 효율성 개선이다. 전통 금융기관들은 일정 규모 이상의 거래만을 선호하기 때문에, 규모가 작은 프로젝트는 금융 접근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중소 규모 부동산 개발이나 인프라 프로젝트파이낸싱(PF) 또는 중소기업의 매출채권 유동화 같은 영역이다.
실제로 미국 핀테크 기업 센트리퓨지(Centrifuge)는 중소기업의 매출채권을 토큰화해 디파이(DeFi) 투자자들과 연결하는 모델을 실험해 왔다. 이러한 구조는 금융기관이 다루기 어려웠던 자산을 보다 유연하게 자본시장에 연결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미국 최대 가상화폐 거리소인 코인베이스 홈페이지. 사진=연합AFP
기술보다 ‘제도권 인프라’와 연결이 관건
그러나 이러한 기대가 곧바로 거대한 시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다소 낙관적일 수 있다. RWA의 가장 큰 난관은 자산을 토큰화하는 기술 자체가 아니라, 이를 어떻게 운영하고 제도권 시스템과 연결할 것인가라는 문제다.
전통 금융기관들은 절차와 규제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새로운 형태의 자산을 기존 금융 인프라에 어떻게 편입할 것인지가 가장 큰 과제다. 예를 들어 토큰화된 자산의 수탁은 누가 맡을 것인가, 유통 시장은 어디에서 형성될 것인가, 투자자 보호는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같은 질문들이 뒤따른다.
한국의 경우 이러한 인프라가 아직 충분히 마련돼 있지 않다. 국내 예탁결제원 역시 토큰화 자산을 위한 체계적인 인프라를 본격적으로 구축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글로벌 금융사들 또한 가상자산을 직접 보유하거나 취급하는 데 여전히 여러 규제 제약이 존재한다.
현재 현실적인 대안으로 거론되는 것은 가상자산 전문 수탁기관이나 브로커리지 인프라를 활용하는 방식이다. 미국에서는 이미 앵커리지(Anchorage), 빗고(BitGo) 같은 디지털 자산 수탁기관이 등장했고, 팔콘엑스(FalconX)나 갤럭시 디지털(Galaxy Digital) 같은 브로커리지 인프라도 형성돼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이러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기관이 아직 많지 않으며, 이를 제도적으로 인정하는 규제 체계 역시 확립 단계에 있다.
또 하나의 현실적인 문제는 자산의 가격 산정이다. 금융기관은 투자자 자산의 기준가를 산정하는 데 매우 민감하다. 그런데 RWA는 언제든 거래할 수 있다는 유동성이 장점으로 강조되지만, 실제로는 거래 시장 자체가 충분히 크지 않기 때문에 기준 가격을 산정하기가 쉽지 않다. 유동성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24시간 거래 시장을 만들면, 오히려 가격 왜곡 가능성이 커질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RWA 상품을 매매 가능 자산으로 둘 것인지, 아니면 폐쇄형 구조로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뒤따른다. 그러나 폐쇄형 구조를 택한다면 RWA가 내세우는 주요 장점 중 하나인 유동성 확대가 크게 약화될 수 있다.
금융기관 투자 제한이 수요 제약
결제 인프라도 중요한 문제다. 온체인 금융 상품이 작동하려면 결제를 위한 스테이블코인이 사실상 필수적인 기반이 된다. 현재 대부분의 RWA 거래는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달러를 제외한 통화의 스테이블코인은 아직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사례가 많지 않다. 한국 기업이나 금융기관이 국내 자산을 기반으로 RWA 상품을 만들고 싶어도 원화 스테이블코인 인프라가 없다면 현실적인 제약에 직면하게 된다.
무엇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시장 수요다. 온체인 금융 시장에는 아직 기관급 자금이 충분히 존재하지 않는다. 많은 국가에서 금융기관의 가상자산 직접투자나 보유가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결국 현재 온체인 시장은 리테일 투자자와 일부 기업이 중심이 되는 구조다.
예를 들어 글로벌에서 가장 성공적인 RWA 상품 사례로 자주 언급되는 블랙록의 BUIDL 펀드 규모는 약 25억 달러 수준이다. 가상자산 시장 기준에서는 언뜻 상당한 규모로 보이지만, 국내 일개 운용사의 MMF 관리 자산보다도 작은 규모다. 게다가 최근 가상자산 시장 전반의 유동성이 둔화되면서 이 시장으로 흘러 들어오는 자금도 기대만큼 빠르게 늘어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RWA 시장을 비관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다만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시장이 성장하는 데 시간이 걸리듯, 이를 준비하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RWA를 한다’는 막연한 구호가 아니라 어떤 자산을, 어떤 시장을 대상으로, 어떤 방식으로 토큰화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전략이다.
실질적 문제 해결에 집중할 때
규제 환경이 불확실하다고 해서 무작정 기다리는 것도 답은 아니다. 블록체인 기반 금융은 기존 금융보다 훨씬 자유도가 높은 구조이기 때문에 모든 세부 사항을 규제당국이 모두 정해줄 수는 없다. 결국 기업 스스로 합리적인 판단을 내려야 한다. 어떤 영역에서는 전통 금융의 규율을 엄격하게 따르고, 어떤 부분에서는 블록체인 네이티브 인프라를 활용할 것인지 전략적으로 선택해야 한다.
또한 국내에서 제도적 제약이 크다면, 해외에서 파일럿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전통 금융 인프라가 토큰화 자산을 수용하기 위한 준비를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나스닥은 토큰화 증권 거래를 허용하기 위한 제도 변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미국의 중앙예탁기관 역할을 하는 DTCC 역시 블록체인 기반 금융 인프라 프로젝트인 캔턴 네트워크(Canton Network)와 협력하며 토큰화 금융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RWA는 분명 흥미로운 가능성을 가진 영역이다. 그러나 그것이 당장 거대한 시장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기대는 현실과 거리가 있을 수 있다. 결국 성공적인 RWA 프로젝트는 ‘블록체인을 사용했다’는 기술적 특징이 아니라, 기존 금융 시장의 실제 문제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해결하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