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만들어낸 부는 알고리즘이 아니라 권력이 나눈다

한겨레 2026. 4. 15.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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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리포트 - 최한수의 경제와 정치의 경계에서
‘CES 2026’ 개막을 하루 앞둔 지난 1월5일(현지시각)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베이에서 열린 현대차그룹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차세대 전동식 아틀라스 시제품이 손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2년 챗GPT 출시 이후의 인공지능(AI) 발전 속도는 따라잡기가 벅찰 정도다. 필자도 초기에는 적응하려 노력했지만 어느 순간 길을 잃었다. 개인적으로 노동시장에 남아있는 기간을 10년 남짓으로 본다. 새로운 기술에 적응하다 스트레스를 받느니 “10년 동안 무슨 큰일이야 나겠냐”는 외면이 합리적 선택처럼 느껴진다. 그렇다면 경제는 어떻게 변할까. 올 3월 스탠퍼드·예일대 연구팀이 전문가와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은 흥미로운 예측결과를 보여준다.

응답자들은 AI 역량 자체가 ‘중간’ 또는 ‘빠른’ 속도로 발전할 확률을 61%로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그것이 경제 성장에 미치는 효과는 과거의 성장 추세보다 약간 높은 2.5% 수준으로 판단했다. 경제학자들은 AI 시스템이 여러 인지적·육체적 작업에서 인간을 능가하는 ‘빠른 발전 시나리오’ 아래서도, 경제 성장률(GDP)은 2050년까지 약 3.5% 정도일 것으로 내다봤다. 의미 있는 수준이지만, 일부가 말하는 ‘특이점 수준의 변화’와는 거리가 있다. 당분간 “컴퓨터 시대의 도래는 생산성 통계를 제외한 모든 곳에서 관측된다”는 솔로우의 역설이 AI에도 적용될 공산이 크다.

약한 고리의 법칙

왜 이럴까. 학자들은 그 이유를 세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는 병목의 문제다. 스탠퍼드대 경제학자 채드 존스가 지적하듯, 성장의 최종 속도는 가장 느리고 복잡한 과업이 결정한다. AI가 아이디어를 아무리 빠르게 내놓아도 인간의 노동이나 판단이 필수적인 ‘미자동화 영역’이 남아있는 한, 전체 공정은 지체된다. 가장 중요한 직무의 생산성은 개별 과제의 합이 아니라 곱으로 정해진다. 이 중 하나라도 0이라면 전체가 0이 되는 셈이다. 생산성의 속도는 가장 스마트한 AI가 아니라 가장 느린 인간 노동의 속도에 수렴한다.

둘째는 이식의 문제다. 강력한 AI가 발명되어도 이를 회사 내 어느 곳에 두어야 수익이 나는지 찾는 것은 별개의 과제다. 기술이 조직의 업무 흐름과 인적 자본에 완전히 섞이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전까지 생산성 향상은 쉽게 관측되지 않을 수 있다. 셋째는 창의성의 문제이다. AI가 실행의 한계 비용을 제로로 만들수록, 방향을 설정하는 인간의 판단력의 중요성은 더 커진다. 그저 그런 아이디어가 폭증하는 세계에서 창의적 발상은 더 귀해진다. 문제는 이러한 창의성을 갖춘 인재를 찾고 양성화하는 것이 갈수록 힘든 작업이 된다는 점이다.

인턴의 역설

이러한 이유로 AI로 인한 생산성 향상은 완만하게 이루어질 것이지만 노동시장에 미치는 충격은 즉각적이다. ‘인턴의 역설’이 그중 하나다. 경험을 쌓기 위해 인턴이 되려 하지만, 인턴 자격 조건에 경험이 필수적이다.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루프다. 그런데 최근 노동시장에서 실제로 이러한 루프가 관측되고 있다. AI가 노동시장에 갓 진입한 인력의 업무를 대체한다. 주니어 변호사가 작성하던 준비서면 초안, 초급 개발자가 담당하던 반복적 코드 작성이 그 예이다. 기업 입장에서 이들의 업무를 AI로 대체하는 것은 ‘합리적’이다. 그러나 개별 차원에서의 합리적 결정이 사회적 차원의 재앙이 되기도 한다. 주니어 변호사 채용이 줄면 10년 후 로펌의 중추가 될 시니어 변호사의 풀이 사라진다. 코드를 검증할 숙련된 개발자 또한 줄어든다. 숙련은 반복에서 나온다. 반복업무를 AI가 가져가면 경험 축적의 경로 자체가 막힌다. 이 패턴이 일상화될수록 젊은 세대의 노동시장 진입은 구조적으로 차단되고, 세대 간 지식 이전이라는 노동시장의 핵심 재생산 구조 자체가 흔들려 생산성이 하락한다.

AT&T의 교훈: 피해는 피할 수 없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미래의 상상에는 도움을 준다. 과거 기술 발전의 역사는 노동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보스턴대의 제임스 파이겐바움 교수팀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1920년대 미국 AT&T의 전화 교환원 자동화 사례를 살폈다. 당시 교환원은 16~20살의 젊은 여성 직업군 중 5위에 해당할 만큼 큰 일자리였다. 단순 반복 작업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고객 응대와 복잡한 수동 연결을 수행하는 ‘중간 숙련’ 직무였다. 고등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과 민첩성, 빠르고 정확한 계산 능력이 필수적이었다.

1920년대부터 자동 다이얼 기술이 본격화되면서 여성 교환원들은 그 충격에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기계화 도입 10년 뒤, 현직 교환원 상당수는 노동시장에서 밀려났다. 재취업에 성공한 이들조차 동년배보다 직업을 바꿀 확률이 40% 가까이 높았고, 밀려난 직종의 임금과 지위는 그전에 비해 보잘것없었다. 경제학자들이나 정책 결정자들이 선호했던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이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 ‘직업 특수적 인적 자본’은 하루아침에 무용지물이 됐다. 물론 전체 일자리가 줄어들지는 않았다. 비서직·서비스직 등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나며 미래 여성 세대의 노동력을 흡수했다. 기계 유지 보수라는 새 일자리의 편익은 남성 기술자들의 몫이었다. 기술 발전에서 촉발된 전환 비용은 숙련을 잃어버린 현직 여성 노동자들이 고스란히 감당했다. 오늘의 AI 전환 또한 이 패턴을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

로봇세는 일자리를 지키고 세수를 늘릴 것인가

AI는 국가도 잠식한다. 현재의 조세체계는 노동소득과 소비행위를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는데 생산의 주체가 인간에서 AI로 이동하는 순간, 이 모든 것이 흔들린다. 따라서 AI 시대의 재정의 핵심 질문은 ‘누구에게 과세할 것인가’로 바뀐다. 로봇이나 AI가 그 후보군이다.

2018년, 일부 외신은 한국이 ‘로봇세’를 도입했다고 보도했다. 정확하게는 ‘생산성 향상시설 투자세액공제’의 공제율 축소가 있었다. 그 시설이란 자동화 설비와 소프트웨어 투자였고 형식은 공제율 조정이었지만 세 부담이 늘었다는 점에서 ‘로봇세’라고 봐도 무방하다. 연세대 강동익 교수팀은 이후의 변화를 살펴보았다. 공제율 축소로 자본이 비싸지면 기업은 그 역할을 사람에게 넘긴다. 실제로 자동화 투자는 감소했고, 고용은 약 3~4% 증가했다. 로봇세는 불평등에도 영향을 미쳤다. 평균임금은 소폭 하락했는데, 그 하락은 주로 중상위 구간에서 나타났다. 5~7분위 임금이 약 3% 하락했지만 저임금층은 움직임이 없었다. 그 결과 불평등이 감소했다. 로봇세가 일자리를 보호하고 불평등을 완화할 것이라는 지지론자들의 예측과 일치한다. 하지만 로봇세는 로봇과 보완적인 고숙련 노동자의 일자리와 소득을 줄이는 문제점도 만들어냈다.

재정 효과는 기대와 달랐다. 세제 혜택을 줄였으니 법인세가 늘어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고용 증가로 근로소득세는 늘었지만, 자동화 투자 감소와 기업 이윤 축소가 법인세를 끌어내렸다. 결과적으로 로봇세를 통해 세수확대보다 고용안정이 지켜진 셈이다.

다시 기본소득을 고민한다

2021년 기본소득에 대한 한 비판 논문을 작성하면서 필자는 기본소득에 대해 유보적 입장을 취했다. 기본소득이 포용성이나 권리 측면에서 기존 복지제도보다 우월하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이 불가피해지는 조건은 오직 하나였다. 근로 연계 복지가 더 이상 작동할 수 없는 시대의 도래. 그리고 그 시점은 당시 판단으로 최소 한 세대 이상 걸릴 것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거대언어모델(LLM)의 상용화 이후 그 판단의 전제는 의문의 대상이 되었다.

AI는 노동시장에 미치는 파괴력의 범위와 속도에 있어 과거의 기술 혁신과 질적으로 다르다. 따라서 일자리의 존재를 전제로 설계된 복지 패러다임을 고수하는 것은 적절하지도, 실효적이지도 않다. 기본소득이 여러 대안 중 우월해서가 아니라 사실상 유일하게 작동 가능하기 때문에 받아들여야 할 시점인지도 모른다. 젠슨 황이나 샘 올트먼 등 실리콘밸리의 거물들은 AI의 과실이 기본소득의 형태로 만인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낙관론을 제시하며 AI에 대한 우려를 잠재우려 하지만, 인류 역사에서 생산성 향상이 분배의 문제를 자동으로 해결한 사례는 없다. AI가 만들어내는 부가 누구에게 귀속될 것인가는 알고리즘이 아니라 정치가 결정한다. 마르크스의 언어를 빌려 얘기한다면 이 문제의 핵심은 잉여가치를 둘러싼 계급투쟁의 문제이다. 기술 낙관론자들이 말하는 것은 유토피아적 ‘기술적 가능성’일 뿐이지만, 분배는 언제나 처절한 ‘정치적 현실’의 문제였다. 이를 시장의 자율에 맡기는 것은 무책임한 것이다. 정치가 나서야 한다.

최한수 경북대 교수(공정거래위원회 비상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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