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심판이 기업'으로...‘신속시범사업’에 깃든 전관예우 그림자 [K-방산, 그들만의 리그 上]

정진용 기자 2026. 4. 15.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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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지 달리 '재포장 창구' 로 변질
기존 무기 변형 수준 과제 다수
K-CEV 핵심인사 기업이동 논란
전력화땐 예산 10배 이상 뛰기도


민간의 혁신 기술을 군에 수혈하기 위해 도입된 ‘신속시범사업’이 당초 취지와 달리 기존 무기 체계의 플랫폼만 바꾼 ‘재포장 창구’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 공고 후 업체가 신청하면 시제품 납품과 6개월간 군 시범 운용을 거쳐 즉시 후속 구매로 이어지는 일종의 ‘국방 획득 패스트트랙’이다.
정부가 공고를 내면 사업참여를 희망하는 업체가 신청서를 제출한다. 선정된 업체가 이후 군에 시제품을 납품하고 소요군에서 약 6개월 시범 운용을 한다. 군사적 활용성을 확인한 뒤 전력화 등 후속 구매 사업 등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문제는 제도 취지와 실제 선정 과제 사이의 간극이다. 정작 선정 과제를 들여다보면 신기술의 실체가 모호한 사례가 적지 않다. 2023년 2차 신속시범사업에서 선정된 소형전술차량 탑재형 120㎜ 박격포 체계가 일례다. 방위사업청은 이를 해병대 상륙작전에 맞춘 경량형 체계라고 설명했지만, 군 안팎에서는 기존 장갑차에 탑재한 박격포를 소형전술차량에 장착한 ‘플랫폼 변경 수준’이라는 냉정한 평가가 나온다.

AI 기술 기반 유·무인 복합 ‘한국형 공병전투차량(K-CEV)’도 마찬가지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연구개발사다. 연구개발 및 시범 운용을 위한 제품 소량 획득에 예산 338억원이 투입됐다. 현재 육군 제11기동사단에서 시범 운용 중이다. 공병 병과 전문가들은 K-CEV가 신속시범사업의 취지에 부합하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K21 보병전투차량(IFV) 하부체계에 원격사격통제체계(RCWS)와 폭발물 탐지 로봇 등 기존 장비를 결합한 수준에 가깝다는 것이다. 공병의 본래 임무는 지뢰지대와 장애물, 폭발물 제거를 통한 기동로 확보다. 개별 폭발물 처리용 로봇과 적 탐지·교전 기능을 결합한 현재의 구성은 공병보다는 보병 전투 지원에 치우쳐 있다는 반응도 나왔다.

사업을 둘러싼 인사 이동도 뒷말을 낳는다. K-CEV 신속시범사업 선정 당시 병과 차원의 무기 소요를 제기하는 핵심 역할을 쥐고 있던 인사와 담당 실무자는 현재 모두 특정 기업 소속이다. 실무 담당자의 경우 방사청에서 파견을 나온 상태였는데 취업 제한 ‘사각지대’인 국방과학연구소 산하 국방신속획득기술연구원(신속원)에서 근무한 뒤 기업으로 이동했다. 사업 추진 과정에 참여했던 인사들이 훗날 개발사로 자리를 옮긴 점은 이해충돌 소지를 키우는 대목이다.

시범사업에서 정식 전력화가 결정되면 세금 투입 규모는 배로 커진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현대로템이 경합 중인 다목적무인차량 사업도 신속시범획득사업으로 시작해 전력화된 사례다. 처음 투입된 예산은 37억원으로 시작해 첫 양산 규모가 496억원으로 불어났다. 방사청은 K-CEV와 관련해 “원격주행 기술과 RCWS에 포함된 AI 기반 탐지·추적 기술이 유·무인 복합 운용을 가능하게 하는 신기술이라고 판단했다”고 답했다. 또 기개발된 요소를 단순히 결합한 체계가 아니며, 공병 기본임무를 충실히 달성할 수 있는 등 특정 기능에 치우치지 않도록 개발됐다고 부연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해당 인사들의 이동과 관련해서는 “개인 채용 경위를 밝히는 건 적절치 않다”면서 “직무 전문성과 경험을 기준으로 공정한 절차에 따라 채용을 진행하고 있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