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오리 대명사 취안쥐더에서 20년… 하림 회장이 반한 '왕 셰프의 오리'

김나연 2026. 4. 15.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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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쉬안위안 '왕스덕' 총괄셰프]
"취안쥐더와 맛 같아" 김홍국 회장이 직접 낙점
대추나무 장작 '괘노식 화로'에 오리 걸어 구워
이명박 전 대통령·중국대사도 찾아… "큰 보람"
왕쉬안위안 셰프가 8일 서울 강남구 왕스덕 매장 주방에서 북경오리 조리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정다빈 기자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한국 최대 가금육 기업 하림그룹 사옥 지하에는 북경오리(베이징덕) 전문점이 있다. 이곳을 이끄는 총괄셰프는 한국인이 아니다. 정통 북경오리를 선보인다는 일념으로, 본고장 중국에서 김홍국 하림 회장이 스카우트한 중국인 요리사다. 162년 전통 중국 오리구이 전문점, 취안쥐더(全聚德·전취덕)에서 20년을 근무한 왕쉬안위안(51) 셰프다.

취안쥐더는 중국에서 북경오리의 상징으로 통하는 곳이다. 이곳 오리는 중국 정부의 국빈 만찬 단골 메뉴로, 1972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베이징의 취안쥐더 허핑먼점을 다녀갔을 땐 ‘오리 외교’라는 용어가 생기기도 했다. 취안쥐더의 오리 굽는 기술은 2008년 중국 비물질문화유산으로 지정됐을 정도다.

취안쥐더의 장쑤성 창저우 매장에서 주방장을 맡고 있던 왕 셰프는 2015년 새로운 경력을 쌓을 기회를 접했다. 하림이 북경오리 사업을 위해 취안쥐더 경력자를 모집하고 있었던 것. 선발 인원은 한 명, 경쟁자는 8명이었다. 김 회장이 직접 왕 셰프의 오리를 먹어보고 최종 결정을 내렸다. “취안쥐더와 똑같다”는 시식평과 함께였다. 한국의 가게 이름은 그렇게 ‘왕스덕’(왕 셰프의 오리)이 됐다.

타지에서 새 꿈을 펼치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터. 왕 셰프는 한국행을 결심한 이유에 대해 “취안쥐더에 근무하는 동안 많은 스승님들이 해외로 나가 기량을 펼치는 것을 보며 영광스러운 일이라 생각했다”며 “세계는 넓으니 나도 나와서 중국의 미식 문화를 전파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왕쉬안위안 셰프가 8일 서울 강남구 왕스덕 매장 주방에서 대추나무 장작을 화덕에 넣고 있다. 정다빈 기자

왕스덕은 2017년 3월에 문을 열었다. 모든 요리 과정은 왕 셰프의 손을 거쳐 취안쥐더와 같은 방식으로 설계됐다. 생후 45일 전후의 오리를 잡은 뒤 날개 아래에 칼집을 내고 내장을 제거한다. 바삭한 껍질을 위해 목 부분으로 공기를 주입해 껍질을 부풀리는데, 공기가 새지 않도록 칼집은 최소화한다. 껍질의 식감을 위해 빠르게 데쳐 바람에 건조시킨 뒤 급랭하고, 해동 후 다시 바람에 24시간 동안 건조시킨다. 먹음직스러운 색을 위해 시럽 등을 바르는 과정도 두 차례 거친다.

마지막으로 오리를 1시간가량 화로에 굽는다. 오리를 꼬챙이에 걸어 익히는 ‘괘노식 화로’를 쓴다. 문이 뚫려 있어 색깔을 관찰하며 골고루 구워지게끔 각도를 수시로 바꾼다. 장작은 대추나무를 고집한다. 단단해서 오랫동안 태울 수 있고 검은 연기가 나지 않는 좋은 땔감이다. 무엇보다 대추의 달착지근한 과실향을 은은하게 오리에 입힐 수 있다.

왕쉬안위안 셰프가 8일 서울 강남구 왕스덕 매장에서 북경오리를 카빙 하고 있다. 정다빈 기자

북경오리의 백미는 껍질이다. 가장 맛있는 껍질은 따로 카빙(carving·오리고기를 조각하듯 써는 것) 해서 내준다. 마리당 8점밖에 나오지 않는 귀한 부위다. 뜨거운 껍질에 설탕을 묻혀 입에 넣으면, 혀 위에서 사르르 녹듯 기름의 풍미가 퍼진다. 솜사탕을 연상시키는 특이한 식감이다. 바삭한 질감과 설탕의 단맛이 느끼하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준다.

화로에서 기름기가 쏙 빠져 담백해진 오리 가슴살은 따뜻할 때 전병에 올려 파채, 오이와 함께 싸 먹으면 된다. 왕 셰프는 전병은 아기를 포대기에 감싸듯 왼쪽, 아래쪽, 오른쪽 순서로 접으라고 권했다. 춘장에 꿀, 참기름 등을 넣어 만든 특제 소스가 오리쌈과 잘 어울린다.

카빙해 올린 오리 가슴살 외에 다리 등 뼈가 붙은 부위는 튀김으로 만든다. ‘뼈 튀김’은 산초소금과 후추에 버무린다. 짭짤한 풍미가 직관적으로 입맛을 돋운다. 고기 자체로 승부하는 메인 요리와 또 다른 별미다.

8일 서울 강남구 왕스덕에서 왕쉬안위안 셰프가 카빙 해 접시에 담아낸 북경오리. 정다빈 기자
8일 서울 강남구 왕스덕에서 카빙 후 남은 부위로 만드는 오리뼈 튀김. 정다빈 기자

왕 셰프는 자신의 음식을 인정받는 데에서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많은 분들이 찾아주시는 것은 물론이고 주한 중국 대사와는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며 “취안쥐더의 ‘유명인 벽’에 외국 손님들이 남긴 사진이 떠올라 꿈꿔왔던 것이 이뤄진 기분이었다”고 웃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최근까지 이곳을 즐겨 찾았다고. 왕 셰프는 “오리구이는 하나의 기술이다. 부단히 배우고 고통스럽게 연습해 경험이 풍부해져야 만들어낼 수 있다”며 “앞으로도 중국식 북경오리를 한국에 알리는 역할을 해나가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김나연 기자 is2n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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